‘섬진강 시인’ 김용택 “나이듦? 시인은 나이 생각하면 끝이에요”
‘섬진강 시인’ 김용택 “나이듦? 시인은 나이 생각하면 끝이에요”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6.10.07 13:29
  • 호수 5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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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농촌에 남아 詩作… 새 시집 ‘울고 들어온 너에게’ 독자 호응 커
노인은 생각 바꿔야 대접 받아… 동시 읽고, 글 쓰다보면 나이 따위 잊어

“나는/어느날이라는 말이 좋다. //어느날 나는 태어났고/어느날 당신도 만났으니까. //그리고/오늘도 어느날이니까. //나의 시는/어느날의 일이고/어느날에 썼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12번째 신작 시집 ‘울고 들어온 너에게’(창비)에 들어있는 시 ‘어느날’의 전문이다. 시에 문외한인 이들까지도 이 시를 좋아해 스마트폰에 옮겨 담을 정도다. 김용택(68) 시인이 고향을 떠난 지 20여년만에 전북 임실군 덕치면 진메마을로 돌아와 새로 둥지를 틀었다. 그 사이에 모친의 병구완을 위해 전북 전주로 나가 있었다.

-고향에 돌아오니 어떤가.
“내 고향이 12가구 정도가 사는 작은 마을이에요. 들어오기 전 마을사람들과의 관계도 복원해야겠구나 생각했는데 그런 것도 없고요. 고요하고 번잡하지 않아 좋아요.”
-농촌에선 수확철에 가로등 불빛도 끈다는 얘기를 들었다.
“가로등 불빛이 환하면 꽃도 안 피고 씨앗도 잘 여물지 않아요. 곡식이 잘 자라도록 가로등을 다 꺼버려요.”
-신작 시집 반응이 어떤가.
“농촌에 오래 살아온 관계로 글을 써서 시집을 내면 반응이 무척 궁금해요. 그런데 이번 시집은 깜짝 놀랐어요. 반응이 아주 좋아 벌써 3판을 찍었어요.”
-제목부터 가슴에 와 닿는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사회가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데 모든 사람들이 다 저녁이면 집으로 울고 들어올 것 같은 느낌이 들잖아요. 힘들어서. 그래서 돌아갈 수 있는 따뜻한 집, 찾아들어갈 수 있는 따뜻한 방,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까 그 제목으로 시집을 내게 됐어요.”
-‘섬진강 시인’이라는 호칭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사는 땅에서 강이 바라보여요. 평생 강을 떠나 살아보지 않았어요. 제가 ‘섬진강 연작’을 내놓아 자연스럽게 그런 호칭이 붙었지만 처음엔 쑥스러웠어요. 자신이 살아온 곳의 지명이 이름 앞에 붙는다는 것은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지요”

김용택 시인은 순창농고를 졸업했다. 이듬해에 교사시험을 보고 21세에 초등학교 교사가 됐다. 교직기간 동안 모교이기도 한 임실운암초등학교 마암분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시를 썼다. 2008년 퇴임했다.
1982년 창작과비평사가 펴낸 ‘21인신작시집’에 연작시 ‘섬진강’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대표작품으로 ‘섬진강’, 동시집 ‘콩, 너는 죽었다’, 산문집 ‘김용택의 섬진강 이야기’(전8권) 등이 있다. 김수영문학상․소월시문학상․윤동주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 평생 농촌에 머물며 글을 쓰는 보기 드문 작가이다. 지방의 작가들이 대중의 시선을 오래 끌지 못하는 문학계 풍토에서 시인의 작품은 꾸준한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김 시인의 글에는 항상 아이들과 자연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는 아이들을 통해 자연을 보고 세상과 교감하고 소통한다.
-김 시인에게 아이들은 어떤 의미인가.
“아이들은 세상을 늘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감동을 잘 해요. 감동이란 어떤 정신적인 자극을 받아서 내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거거든요. 내가 바뀌면 우리 세상을 바꿀 수 있어요. 어린이들에게는 우리 인류를 바꿀 가능성이 있는 거지요.”
-나이 듦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하나.
“인류가 정신․육체적으로 연령이 늘어났지만 그에 대해 개인은 물론 사회가 대비를 해놓지 않아 당황하고 있어요. 글을 쓰는 저는 나이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요. 시인에게 세상은 늘 신비롭고 감동적이에요. 그래서 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기도 하고요. 시인이 나이를 생각하면 끝이에요.”
-노인에게 시는 유익한가.
“어제 읍내에서 70~80대 어르신들 모시고 강연을 했어요. 이 세상에 다 된 건 없다, 나이 들었다고 모든 게 끝났다는 생각하지 마시라고 말씀 드렸어요. 시․소설․에세이 등 글을 읽는 것도 좋지만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게 중요합니다. 한줄을 쓰고 나면 생각이 새로워집니다. 늙음이 없어요. 지금 바로 노트 하나 준비해 자기 앞에서 일어나는 일을 써보세요.”
-노인은 어떤 시를 읽으면 좋을까.
“동시에요. 아이는 늙지 않았으니까요. 노인은 생각을 굳게 지키고 바꾸려고 하지 않아요. 그래서 젊은 사람들을 향해 ‘싸가지 없다, 버르장머리 없다’고 합니다. 노인이 노인으로 남지 않으려면 젊은 사람들의 말을 듣고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꼰대’란 말이 남의 말을 안 듣는 걸 말하잖아요.”
-어머니 병세는 어떠신가.
“저희 어머니는 평생 농사짓고 글자도 모르지만 지혜로운 분이세요. 자기 처지를 잘 받아들이세요. 뼈가 안 좋아 누워 계십니다. 시골집에 있으면 어머니나 시중드는 자식이나 서로 불편하니까 정형외과가 있는 요양원에 들어가 계세요.”
-아파도 병원보다는 자기 집이 좋다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어머니를 보면서 국가의 노인복지정책이 이래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도 있지요. 나이 들어 움직이지 못하면 가족이 돌보는 것도 좋지만 국가가 대신 효도를 해야 합니다. 병원에서 평화롭게 고통을 이겨내며 여생을 보내도록 나라가 도와주어야 합니다.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병원생활에 적응하신 거지요. 89세인데 수도 놓으시고 뒤늦게 한글을 깨쳐 책도 읽으세요.”
-어떻게 시인이 됐나.
“저는 촌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교과서 외에 책을 읽은 기억이 별로 없어요. 선생이 되고나서 어느 날 학교로 월부 책장사가 책을 가지고 왔어요. 그때 처음 소설을 읽게 됐죠. 책을 보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됐고 그걸 글로 적다보니까 어느날 제가 시를 쓰고 있었어요.”
-농촌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평생을 보냈는데.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교사가 돼 시를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한 것이 아쉽더라고요. 대학에 입학해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집안 사정이 어렵다 보니 교사생활을 그만두고 문학에 대한 배움을 누릴만한 작은 여유조차 없었어요. 기왕 이렇게 된 거라면 시골에서 평생 선생 하면서 사는 삶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죠.”
-귀농․귀촌하는 도시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
“처음부터 땅 사고 집 짓지 말고 이 마을, 저 동네를 다녀보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마음에 드는 땅이 나타나면 컨테이너를 갖다놓고 잠을 자며 주위 환경과 마을 사람들을 살펴보세요. 그러고 나서 좋다는 생각이 들면 집을 짓되 커다란 2층집이 아닌 자그마한 집을 지으세요. 부부라면 18평 정도가 좋아요. 텃밭도 10평 이상은 힘들어요. 2~3평만 해도 충분히 먹거리를 해결할 수 있어요.”
-시인의 집을 군에 기부체납했다고.
“지금 사는 이 집은 예술인의 활동을 지원하는 차원에서 군에서 지어준 겁니다. 물론 제 소유가 아니고 군 소유입니다. 제가 살던 땅과 집은 군에 기부체납했고요.”

군에서는 그의 집 이름을 ‘김용택 문학관’으로 제안했지만, 그는 ‘문학관’이라는 이름이 어색해 ‘김용택의 작은 학교’라는 이름으로 하자고 요청했고 받아들여졌다. 주말이면 전주 한옥마을에서 출발한 버스 두 대가 사람들을 가득 태워 그의 집을 방문하고, 주중에도 많은 방문객들이 이곳을 찾는다.
김용택 시인은 밤 8시에 잠들어 새벽 3시에 일어나 책을 보고 글을 쓴다. 거의 매일 전국의 초․중․고, 공공기관, 기업체 등을 다니며 강연을 한다. 시인은 강연 때마다 “해가 넘어가면 집으로 가자, 부부가 밥을 먹자”는 말을 한다. 시인은 “우리 세대에 가장 가치 있는 삶의 모습이자 꼭 필요한 삶의 질이기 때문”이라며 웃었다.
오현주 기자 fatboyo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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