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 사람들이 잘 노는 사회가 건강하다
나이 든 사람들이 잘 노는 사회가 건강하다
  • 한혜경 호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승인 2016.10.14 13:57
  • 호수 5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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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살기 싫어. 어떻게 이렇게 살아?” 이건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의 말이 아니다. 한 초등학생이 온종일 놀지 못하게 공부만 시키는 무서운 아빠가 잠깐 자리를 비운 틈에 엄마한테 와서 조그맣게 속삭였다는 내용이다.
이건 웃을 일이 아니다. 정말 심각한 문제다. 이 어린이는 100세도 넘어 도대체 몇 살까지 살지 예측조차 힘든 초고령사회를 살 것이고, 그러다 보면 인생의 상당 부분을 놀며 지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한참 놀아야 할 나이에 놀지도 못하고 벌써 앞으로 살 일을 걱정해야 한다면 뭐가 잘못 돼도 한참 잘못된 게 아닐까?
지금의 아이들에 비하면 훨씬 잘 놀았던 세대의 사람들도 은퇴하고 나면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며 하소연이 대단한데, 어려서도 놀아보지 못하는 요즘 아이들의 노년은 어떤 모습일까? 평생 즐길만한 인문학적 소양을 쌓아야 할 대학생활에서도 취업 준비에만 몰두하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혹시 이 아이들이 은퇴할 때쯤이 되면 ‘노는 과외’가 유행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인간의 삶은 연속적이다. 잘 노는 아이들이 제대로 잘 노는 어른이 되고, 또 제대로 잘 노는 중년은 그러한 노년으로 이어질 것이다. 죽으라고 일만 하다가 퇴직했을 때, 갑자기 잘 놀려고 해도 생각처럼 쉽지 않다. 바쁠 때야 무료함이 그립겠지만, 무료함을 견딘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그렇다면 어떻게, 어떤 놀이를 찾아야 할까? 이 물음에 대답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놀이야말로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즉, 나만의 ‘맞춤형’ 전략이 필요한 분야다. 하지만 은퇴 후 시점에 따라, 또 개인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놀이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예를 들면, ‘해방감을 주는 놀이’, 자기를 표현하기 위한 ‘자기표현형 놀이’, 친구를 찾기 위한 ‘인맥확대형 놀이’, 평소 하고 싶었던 일에 몰두하는 ‘개인미션형’ 혹은 ‘자아실현형 놀이’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이 든 사람들의 놀이생활은 사회적으로도 중요하다. 특히 직장을 다닐 때 그토록 갖고 싶어했던 ‘시간’을 가진 사람들, 아직은 놀 수 있는 ‘건강’을 가진 사람들이 무얼 하면서 어떻게 노는가 하는 것은 사회 전체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마디로 이들이 건강하고 즐겁게 잘 놀아야 사회에도 도움이 된다. 그래야 의료비도 덜 들어서 건강보험 재정도 튼튼해지고, 건전한 소비를 통해 경제에도 플러스가 될 테니까 말이다.
더 중요한 건 이들이 건전하게 잘 놀아야 사회 분위기도 밝고 건강해진다는 점이다. 그래야 젊은이들은 즐겁게 사는 노인을 보면서 나이 먹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덜 갖게 되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도 “잘 논다는 건 바로 이런 거란다”라며 큰소리도 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만일 자신에게 맞는 놀이 프로그램을 찾지 못했다면, 이제부터라도 매일 얼마만큼의 시간을 투자하시라고 말하고 싶다. 놀이야말로 창조성이 필요한 행위이므로 나만의 ‘맞춤형’ 놀이를 찾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도서관에도 가보고, 인문학 강의도 듣고, 혼자 여행도 떠나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놀이의 수단과 방법을 결정할 때 남을 너무 의식할 필요는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놀이는 어디까지나 나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니까 나의 자아가 마음껏 뛰어 놀게 내버려두어야 한다. ‘그건 너무 고상해. 재미없어’라고 소리치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흥분, 어린 시절의 장난기 같은 것들을 다시 불러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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