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란은 성큼 현마의 무릎 위로 옮겨 앉으면서 바른 팔로 목을 둘러안고…
세란은 성큼 현마의 무릎 위로 옮겨 앉으면서 바른 팔로 목을 둘러안고…
  • 글=이효석 그림=이두호 화백
  • 승인 2016.10.21 13:48
  • 호수 5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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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장편소설 화분 <7>

“목욕실에를 좀 들어가 봐요. 목욕물이 무슨 꼴이 됐나.”
“몰라요.”
미란이 발끈 짜증을 낸댔자 세란의 마지막 마디는 벌써 입을 새어 나온 뒤였다.
“온통 오미자 화채니.”
“어쩌란 죽이란.”
미란은 전신이 화끈 달면서 그도 모르는 결에 언니의 볼을 불이 나게 갈기고는 방을 뛰어나갔다.
껄껄껄껄 허리를 꺾는 현마의 웃음소리를 듣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마음에 구두를 찾아 신고는 현관 밀창을 드르렁 열었다.
“봉변을 시켜두 분수가 있지. 다시 들어오나 봐라.”
세란이 악의로 한 것은 아닌 줄을 알면서도 현마와 단주 앞에서의 무안을 생각하면 귓불이 불같이 달면서 도저히 한자리에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분풀이로 며칠이든지 언니의 옆을 떠나서 담을 떼어 주고 싶은 생각이 치밀었다. 뒤도 안 돌아보면서 대문 쪽으로 지름길을 걸었다.
한바탕 웃어대던 방안에서도 나뭇가지 사이를 뾰로통해서 나가는 미란의 자태를 바라보고는 그의 태도가 심상하지 않음을 깨달으며,
“미란!”
“미란아!”
부부가 목소리를 높여서 부르나 들은 척 만 척 그림자는 대문 밖으로 사라진다. 그제서야 현마는 황당해서 방을 뛰어나가 대문 빈지를 붙들었으나 노기가 등등한 귀여운 그림자는 거의 쏜살같이 행길 저편으로 멀어진다.
“단주 자네 쫓아가 보게. 행여나 무슨 일 없도록 달래서 데려와야 해.”
현마는 뛰어들어와서는 단주를 잡아 일으키는 수밖에는 없었다. 황겁지겁 문밖으로 뛰어나가는 단주를 보고서야 겨우 마음을 놓았다.
“처녀의 맘이란 만만치 않은걸.”
“모처럼 저녁 준비까지 해놓은 것이 이 분란이네.”
세란은 입맛을 다시면서 적적한 판에 「봄 노래」를 다시 되거는 수밖에는 없었다.
“……고양이 앞에 고깃덩이를 던진 셈이지. 아무리 급한들 단주를 왜 추길까. 변은 생기구야 말걸.”
“아닌 걱정을 다——”
현마는 아내의 걱정을 쓸데없는 것으로 대꾸하다가 문득,
“글세.”
하고도 생각해 본다.
“그렇지 않구. 노엽긴 했겠지만 실상은 이렇게 되기를 은근히 바랐는지 뉘 아우. 다 자란 아이의 맘이란 엉큼한 겐데. 어른들이 됩데 한 수 걸리지 않았나보지. 밖으로 밖으로 뻗어 나가는 힘을 휘어잡을 수가 있수. 제 스스로 제 힘에 복받쳐서 울구불구 아닌 때 화를 내구 하는 판에.”
“봄의 힘인가. 무엇에든지 거역하라구——근실거리는 몸으로 마구 문을 뚫고 도망질을 치라구 봄이 충동질하는 모양인가.”
“그래 어쩔 작정이요.”
세란은 성큼 현마의 무릎 위로 옮겨 앉으면서 바른 팔로 목을 둘러안고,
“——자기들끼리는 결혼을 하게 되리라구 생각들 하구 있는 눈친데.”
“일부러 결혼을 시킬 필요야 있나. 되는 대로 버려 두구 볼 일이지.”
“그러다 짜장 고삐 없는 말같이 뛰어나 나면 더 야단이게.”
“그건 그때 일. 난 결혼을 찬성치 않아.”
“하긴 나두 반대지만.”
두 사람은 각각 자기들만의 이유로 단주와 미란의 결혼을 고려하는 것이나 그 이유는 피차의 마음속 깊이 간직되어서 그들 스스로도 그 당장에 집어내서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고독이 얼마나 쓸쓸한 것인지 알기나 하구 그러우.”
바른손으로 현마의 볼을 끄들면서 몸을 구른다.
“쓸쓸하거든 귀족같이 점잖게 잠자쿠만 있지.”
“귀족두 아무것두 다 싫어요. 요새 같아서는 단 하루를 혼자 지내기 괴로워요.”
“것두 봄의 힘인가.”
“몰라요.”
현마의 힘을 마음속으로 은근히 바라면서 세란은 그의 얼굴을 자기의 얼굴로 덮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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