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북유럽에서 넘어 온 따뜻하고 우아한 가구들
추운 북유럽에서 넘어 온 따뜻하고 우아한 가구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6.10.21 14:09
  • 호수 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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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덴마크 디자인’ 전
▲ 이번 전시에서는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우아한 기능주의’를 추구한 덴마크 디자인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다.

‘로얄 코펜하겐’, ‘뱅 앤 올룹슨’ 등 덴마크 디자인 제품 200여점 소개
공작새 닮은 ‘피콕 체어’, 케네디와 닉슨이 앉았던 라운드 체어 등 눈길

1960년대 존 F. 케네디와 리처드 닉슨이 대통령 후보 TV 토론에 출연했을 때 앉아 유명해진 ‘라운드 체어’, 고급 그릇 브랜드인 ‘로얄 코펜하겐’, 블록 장난감의 대명사인 ‘레고’, 최근 LG전자와 손잡으며 널리 알려진 스피커 브랜드 ‘뱅 앤 올룹슨’ 등은 공통점이 있다. 북유럽 국가 덴마크에서 출발해 세계적 회사로 성장한 디자인 브랜드라는 점이다.
이런 세계적인 덴마크 디자인의 현주소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오는 11월 20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진행되는 ‘덴마크 디자인’ 전에선 덴마크 코펜하겐에 위치한 ‘덴마크디자인뮤지엄’의 소장품인 가구, 조명, 은세공 등 디자인 작품 200점을 통해 북유럽 디자인의 진수를 보여준다.
서울디자인박물관장을 역임한 정시화 국민대 명예교수는 덴마크를 중심으로 하는 북유럽 디자인의 특징으로 ‘우아한 기능주의’를 꼽았다. 길고 혹독한 겨울과 어두운 날씨의 영향으로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긴 덴마크·스웨덴 등의 북유럽 사람들은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절제된 디자인 양식을 발전시켜 왔다. 더불어 유럽 전통의 장인정신이 더해져 세대를 이어 물려 쓸 수 있을 만큼 견고한 제품을 만들어 다수의 세계적인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정시화 명예교수는 “덴마크 디자인은 미국처럼 화려하거나 이탈리아처럼 패셔너블하지 않지만 인간애에 바탕을 둬 인간 중심의 기능성을 강조하고, 기후 때문인지 따뜻한 분위기를 많이 풍긴다”고 평했다.
이번 전시는 덴마크 디자인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1950년대를 중심으로 카레 클린트, 한스 웨그너, 프리츠 한센 등 가구디자이너 거장들의 손길이 닿은 가구들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맨 먼저 관람객을 사로잡는 것은 덴마크 고급 그릇 브랜드 ‘로얄 코펜하겐’의 식기들이다. 1775년 설립된 로얄 코펜하겐은 초벌구이를 마친 도자기 위에 그림을 그리고 유약을 발라 굽는 언더글레이즈(Underglaze) 기법을 채택해 오늘날까지도 핸드 페인팅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제품 한 점 한 점 모두 장인의 손을 거쳐 탄생하는데 이때 총 1197번의 정교한 붓질을 통해 페인팅이 완성된다. 이 과정을 거친 제품은 1400도 이상 온도에서 구워져 코발트빛 색깔을 띠게 된다. 이렇게 탄생한 ‘설탕 그릇과 크림단지’, ‘기념 접시’ 등 로얄 코펜하겐의 대표 식기들은 관람객의 소유욕을 자극한다.
덴마크 현대가구 디자인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카레 클린트(1888~1954)의 작품들도 인상적이다. 화가로 활동하다 가구 디자이너로 돌아선 그는 1924년 코펜하겐의 왕립예술아카데미에 가구학과를 설립하며 현대 덴마크 가구 디자인의 기초를 다진다. 특히 그는 인체공학 개념을 가구에 도입했는데 1933년작 ‘사파리와 데크 의자’에서 이를 살펴볼 수 있다.

▲ 한스 베그너의 피콕 체어

한스 웨그너(1914~2007)의 대표작도 볼만하다. 그는 절묘한 균형감과 정교한 아름다움으로 덴마크를 대표하는 가구디자이너로 과거의 가구들을 분석해 현대적으로 발전시켰다. 영국 윈저 지방에서 사용하던 목제 의자 윈저 체어(Windsor Chair)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피콕 체어(Peacock Chair)는 공작새를 연상케하는 세련된 등받이가 인상적이다. 피콕 체어와 나란히 소개된 라운드 체어(Round Chair)는 1960년 리처드 닉슨과 존 F. 케네디의 미국 대선 텔레비전 토론에 등장하면서 주목 받았고 ‘더 체어’(The Chair)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웨그너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의자다. 디자인은 단순하지만 고급스런 분위기를 풍긴다. 웨그너의 또 다른 대표작인 ‘서클 체어’, ‘파파 베어 체어’ 등은 직접 앉아볼 수 있다. 보이는 것과 달리 기대 이상으로 편안하고 안락한 기분을 선사한다.
‘개미 의자’(Ant Chair)로 유명한 아르네 야콥센(1902~1972)의 작품들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합판을 휘어서 유기적인 형태를 만드는 기술이 뛰어났는데 이를 활용해 의자 모양을 인체공학적으로 만들었다. 그는 1952년 엉덩이 부분을 넓은 원형으로, 등받이 부분도 원형으로, 그 사이는 잘록하게 만들어서 앉기 편하게 한 의자를 공개했다. 개미같이 생겼다고 해서 개미 의자라는 닉네임으로 불리게 된 이 의자는 밀라노 트리엔날레에서 대상을 받으며 주목받게 된다. 야콥센이 1957년 덴마크 코펜하겐 SAS 로얄 호텔의 의뢰를 받고 디자인한 달걀 의자(Egg Chair)는 이번 전시의 백미다. 껍질이 약간 잘려나간 달걀과 비슷한 모양인 이 의자는 머리 받침과 등받이 좌판, 팔걸이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으며, 몸을 편안하고 따뜻하게 감싸는 듯한 인상이 앉고 싶다는 충동을 일으킨다. 비록 특정 호텔의 위한 디자인이었지만, 독특하고 매력적인 모습 때문에 영화나 광고에 빈번히 등장하면서 명성이 높아졌다.

▲ 카이 보예센의 목각인형

카이 보예센(1886~1958)의 목각 인형도 눈길을 끈다. 그가 1951년에 디자인한 목각 원숭이 인형은 ‘덴마크의 국민 장난감’으로 현재까지도 꾸준히 사랑받는 작품이다. 손발을 움직일 수 있게 제작한 그의 목각 인형들은 원목의 따뜻한 느낌을 잘 살려 사랑스런 분위기를 풍긴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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