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철 경기 구리시지회장 “노인은 눈치 보지 말고 애국적인 말 탁탁 해야 돼요”
신원철 경기 구리시지회장 “노인은 눈치 보지 말고 애국적인 말 탁탁 해야 돼요”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6.10.28 13:31
  • 호수 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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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에도 지회장 연임… “남의 말 잘 들어준 것밖에 없어”
‘식사도우미’ 전 경로당에 주5일 지원 “회원들 만족도 커”

‘남의 말을 정성껏 들어주면 돌부처도 돌아본다’는 말이 있다. 신원철(86) 경기 구리시지회장에게 잘 어울리는 여담이다. 신 지회장은 연임이다. 비결을 묻자 뜸을 들인 후 “특별한 것이 없다”고 대답했다. 고령임에도 두 번째 신임을 받은 이유가 따로 있을 것 같아 재차 묻자 “남의 얘기를 잘 들어주었다”고 말했다. 신 지회장에게서 100세시대를 앞둔 노인의 사회적 역할과 지회 운영철학 등을 들었다.

-구리시 노인 현황은 어떤가.
“구리시가 생긴 지 30년 됐어요. 전에는 ‘교문리’라고 불렀지요. 크지도 않아요. 전체인구 20만 가운데 노인이 1만 9000여명이고 회원은 3700여명이에요. 회원 평균 연령은 80세 가까이 되고 90세 넘은 분도 많고 100세 이상이 9명이에요. 그 중 두 분이 경로당에 나오세요. 우리 지회 120개 경로당 가운데 6개 지역에서 농사를 짓고 있어요.”
-구리시지회가 여성·노인회관 안에 있다.
“구리시에서 여성․노인회관을 운영하고 있어요. 회관을 지을 당시만 해도 남자는 거의 출입을 안 해 ‘여성’을 앞에 붙인 것 같아요. 지회 사무실과 노인대학(120명)이 들어와 있어요.”
-연임의 비결은 무언가.
“제가 경로당 회장을 8년 하고 구리시지회 부지회장을 8년 했어요. 그러고 나자 2012년 고문들이 지회장 선거에 나서라고 해서 당선이 됐지요. 비결이라고 뭐, 특별한 거는 없고 얘기를 잘 들어주는 것하고 대한노인회에 오래 몸담았다는 거지요.”
-어떤 얘기들을 와서 하나.
“회원 중에 공 아무개 노인이 있었어요. 9세에 양친을 잃고 그때부터 머슴살이를 하면서 아들 4명을 잘 키웠어요. 아들들 믿고 노후를 위한 돈을 따로 남겨두지 않았어요. 그러는게 아니었어요. 큰 아들집에 가면 셋째아들 집에 가라고 하고…그래도 끝까지 아들들 욕은 안 해요. 자식, 며느리에게도 못하는 가슴에 맺힌 얘기들을 들어준 일밖에 없어요.”
-행정적인 업적이라면.
“시에서 조례를 만들어 ‘식사도우미’를 내보냅니다. 다른 지회에서는 노인일자리 개념으로 일부 경로당에, 주일에 몇 번 나가는 식이지만 우리는 전체 경로당에 주 5회 기본으로 나갑니다. 연간 5억 사업이에요. 회원들이 청소, 식사준비에서 벗어나 만족감이 아주 높아요.”
-그것 하나뿐인가.
“전체 경로당 회장들이 매달 3일을 기점으로 한 자리에 모여 회의를 합니다. 대부분 분회에서 모이고 마쳐 지회까지 오는 일이 없지만 우리는 꼭 만나서 현안을 얘기해요.”
-100명이 넘는 분들이 어떻게 일사분란하게 다 모이나.
“한 자리에 다 모이기 어려울 때는 2,3번 나눠 모여요. 10월엔 ‘노인의 날’ 행사 관계로 모이지 않았고 9월엔 식사도우미 하반기 위생안전 교육을 지회장들도 같이 받았어요. 그리고 노인사회의 변화에 대해서도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눕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내 말 들어봐요. 전에는 노인들에게 1만 2000원씩 교통비를 주었어요. 그 돈으로 한달을 지내려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래도 자식들에게 손 벌리기는 죽어도 싫다고 해요. 그러다가 노령연금을 9만원씩 나라에서 줬어요. 노인들 형편이 좀 폈지요. 요새는 빈부 차이에 따라 기초연금 20만원 내외를 줍니다. 그 돈으로 옷도 사 입고 병원에도 갑니다. 그거 나오면서부터 노인들이 돈타령을 안 해요. 효자보다 낫다는 겁니다.”
-기초연금이 노인 빈곤율을 낮췄다는 통계도 나왔다.
“그런데 문제는 소외감이에요. 젊은이들이 노인을 싫어한다는 거예요. 아들, 딸들이 자기를 피한다는 말도 못하고 속으로 앓고 있는 겁니다.”
-경로당 현안이라면.
“65세의 젊은 노인과 80대 고령의 노인이 융합이 안 돼요. 그래서 두 노인층을 각각 나누어봤는데 그것도 잘 안됐어요. 그리고 지식층과 재산이 있는 노인을 회원으로 가입시키려는데 이들이 (경로당을)들여다보지도 않아 고민입니다.”
-지회 운영철학이라면.
“잘 웃고 건강한 노인을 만드는 게 꿈이에요. 맷돌체조 등 프로그램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90세 노인도 따라 하기 쉽고 재밌는 프로그램이 별로 없어요. 경로당 회장으로 있을 때 개발한 게임이 하나 있어요. 토요일마다 다들 모여 큰 바구니를 앞에 놓고 긴 젓가락을 그 안에 던져 넣는 겁니다. 성공한 이에겐 믹스커피 하나씩 줘요. 몇푼 안되지만 타는 재미도 있고 다들 신나서 해요.”

▲ 구리시에서 운영하는 여성·노인회관. 경기 구리시지회와 노인대학이 들어가 있다.

황해도 사리원 출신의 신원철 지회장은 해방 직후 서울에 왔다. 20대 때 목사의 꿈을 안고 신학교에 다녔지만 경제적 이유로 포기하고 양재기술을 배웠다. 가죽의류 제조판매회사인 ‘삼보물산’을 운영하는 등 40여년을 의류사업에 종사했다. 구리시 삼보경로당 회장, 구리시지회 부지회장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해방 당시엔 북이 더 잘 살았다는데 왜 남으로 왔나.
“거기는 사람이 살 데가 못돼요. 조직체만 존재하지 개인의 자유가 전혀 없어요. 고등학교 1학년까지 다녔지만 친구끼리 정치적인 말 한 마디도 못합니다. 친척 중에 누가 없어졌다고 하면 아오지탄광으로 간 거예요.”
-북을 찬양하는 시민단체에 노인도 끼어있더라.
“그 사람들 몰라서 그래요. 아직도 공포심이 남아 그쪽 얘기는 하고 싶지 않지만 박정희 독재는 김일성에 비하면 독재도 아니에요.”
-의상 디자이너 출신이었다.
“여성 옷을 디자인하고 재단했어요. 당시엔 다들 맞춤옷을 입었어요. 서울 용산의 ‘베니스의상실’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지요. 의상 디자이너에 대한 사회적 대우도 괜찮았지만 기성복이 나오면서 한순간에 내리막길을 걸었어요.”
-요즘 노인 패션을 어떻게 보나.
“제가 젊었을 적과 판이하게 달라졌어요. 그때는 몸에 딱 달라붙게 재단했어요. 요즘은 천이나 바느질보다 디자인을 중시해요. 나이 들었다고 아무 옷이나 입으면 안돼요. 노인이 젊은사람 흉내 낸다며 청바지 입고 그러면 안 되지요.”
-삶을 뒤돌아보면.
“우리는 부모가 잘하고 못하고 없이 무조건 복종이었어요. 우리 세대는 자식 잘 키우고 부모 잘 모시느라 중간에서 고생만 하다가 이렇게 됐지만 불만은 없어요. 서양처럼 자식을 고등학교만 보내고 그 다음엔 알아서 하라 하고, 노후를 위해 어느 정도 해놓을 걸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어요.”
-100세시대 노인의 역할이라면.
“노인은 체력으로나 재력으로나 젊은이를 도울 수 없어요. 그런데 늙더라도 애국적으로 말 한 마디는 해야 합니다. 당리당략에 치우쳐 눈치 보지 말고 애국적인 말이 그 입에서 탁탁 나와야 해요.”
-경로당 운영에 대한 개선점이라면.
“경로당마다 인원이 20명에서 많게는 70명까지 차이가 커요. 일률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하지 말고 규모에 맞춰 주었으면 합니다. 또, 노인은 많아지는데 비해 가입하는 이는 적어요. 뭔가 잘못 된 겁니다. 여전히 옛날식으로 경로당을 운영해서 그래요. 젊은 노인도 참여할 수 있게 현대식으로 운영돼야 돼요.” 글․사진=오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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