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던 집과 같은 곳
내가 살던 집과 같은 곳
  • 차흥봉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회장
  • 승인 2016.12.02 13:46
  • 호수 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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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37년 전인 1979년 보건복지부 사회과장으로 재직할 때 오스트레일리아 캔버라에서 개최된 국제회의에 참석했다. 국제사회보장협회가 주최한 이 회의의 주제는 ‘가족의 변화와 사회적 보호’였다. 평소 연구하던 노인문제와 가족에 관한 주제에 관심이 있었고 또 당시 정부에서 노인복지정책 수립 책임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이 국제회의에서 직접 주제 발표를 하게 됐다.
한국의 가족문화와 노인보호 현황을 소개하고 미래 전망을 발표하였다. 전 세계적으로 산업사회의 진전에 따라 사회가 변화하고 가족의 노인보호기능이 감퇴되면서 사회보장과 같은 보호 시스템이 발달하고 있지만 한국의 경우 오랜 유교문화의 전통으로 가족의 노인보호기능은 서양 제국과 사정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은 사회가 변하고 가족이 변해도 노인들이 양로원과 같은 노인복지시설에 가서 사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우리나라 노인복지시설은 양로원 48개소가 전부였고 이곳에 살고 있는 노인은 2300명 정도였다. 노인 시설 입소율이 전체 노인의 0.2% 수준이었다. 이와 같은 낮은 입소율은 한국의 문화적 특성에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아무리 사회가 변해도 변하지 않을 것이고 많아도 1% 이상은 올라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서양 선진국의 시설 입소율은 5~7%에 이른 나라가 대부분일 때이다.
이 발표 후 근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난 40년간 한국사회의 변화와 노인복지시설 상황을 살펴보면 그 때의 발표가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다. 세상이 너무나 다르게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노인의 시설 입소율이 절대로 1% 선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 수치가 벌써 4% 선을 넘어가고 있다.
2015년 말 현재 노인이 장기적으로 생활하는 양로원, 노인공동생활가정, 요양원 등 노인복지시설은 모두 1만개소가 넘고, 여기서 살고 있는 노인은 27만여명으로 전체 노인인구 670만명의 4.1%이다. 노인요양병원 1500개소에 장기적으로 입소하고 있는 노인 20여만 명 까지 합하면 7% 선을 넘어서고 있다. 가까운 장래에 시설 입소율이 서양 선진국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1970년대 이전까지 우리나라 노인들이 양로원과 같은 노인복지시설에 들어가 사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것이었다. 정말 오갈 데 없는 노인이 가는 곳이라 생각했다. 노인은 모두 자기 집에 사는 것이고 자식들과 함께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노인복지시설도 ‘갈 수 있는 곳’, ‘갈 만한 곳’ 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국민들의 경제생활구조가 크게 변했다. 대가족이 함께 농사지으며 생활하던 전통적 생활양식은 거의 사라지고 있다. 대부분 국민이 도시 산업사회에서 직장이나 사업장에 나가고 아파트에서 살며 월수입으로 생활하고 있다. 이러한 경제생활구조의 변화와 함께 가족문화가 크게 변모하고 있다.
핵가족이 보편화되고 젊은 자녀들이 결혼하면 노부모와 함께 살지 않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부모를 모시는 자녀들의 부양의식도 바뀌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노인들도 자식들과 함께 살지 않고 따로 사는 것이 낫다는 의식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노인복지시설이 노인들에게 유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노인주거복지시설이 옛날 허름한 양로원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현대화됐다. 깨끗한 침실, 수세식 화장실, 따뜻한 난방시설이 잘 돼있다. 간호사,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등 전문 인력에 의한 서비스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시설 요인이 노인이나 그 부양가족으로 하여금 시설에 가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사회변화가 노인복지시설 수의 증가와 노인 시설입소율의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사회추세에 따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노인복지시설에 대한 기존 관념을 바꾸는 것이다. 노인복지시설을 ‘내가 사는 집과 같은 곳’으로 생각해야 한다. 노인은 누구나 지금까지 살아온 익숙한 생활환경에서 살기를 원한다. 이것이 ‘에이징 인 플레이스(Ageing in place)’이다.
노인들의 이와 같은 심리사회적 욕구에 맞추어 노인복지시설을 ‘내가 살던 집과 같은 곳’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자기 집에서 살 형편이 안 돼 시설에 사는 노인도 이 시설이 ‘내가 살던 집과 같은 곳’이라고 생각하고 적응하면 시설생활도 자기 집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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