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환관 ‘김처선’만 못한 관료들
[기고]환관 ‘김처선’만 못한 관료들
  • 백인호
  • 승인 2016.12.02 13:46
  • 호수 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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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뉴스를 보고 있으면 암울하고 참담한 심정이 든다. 막강한 권력을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사용한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울화통이 터진다.
우리 민족은 예부터 권력에 약했고 아부하는 신하도 많았다. ‘대감 죽은 데는 안 가도 대감 말 죽은 데는 간다’는 속담이 있다. 자신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살아 있는 권력에게 달려드는 시정잡배들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실제 모 기업이 대통령 뒤에서 국정을 좌지우지한 인물을 위해 수십억원에 달하는 말을 선물했다는 의혹은 절묘하게 속담과 맞아 떨어지기도 한다.
모 재단 설립에 대기업들이 수십억원씩 갹출한 것도 실상은 특혜를 바라고 한 행동일지도 모른다. 대기업의 주장처럼 살아있는 권력이 무서워 반강제적으로 헌납한 것인지 아니면 일부 언론 보도에서처럼 이권을 챙겼는지는 두고봐야할 일이지만 실제 피해는 성실히 일하는 근로자와 국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한 기업의 합병으로 수천억원의 국민연금이 날아간 건 특히나 기절초풍할 일이다.
권력형 비리 사건이 없던 역대 정권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지도자 탓이기도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를 알고도 감추거나 묵인해준 ‘간신’들에게 있다.
우리 선조들은 말단관리라도 통치자가 부정하면 목숨 걸고 상소를 올리고 간언(諫言)했다. 폭군 연산군 시절 환관 김처선이 대표적이다. 김처선은 7명의 왕을 보필했던 신하다. 그는 직언을 잘했는데 이로 인해 왕들을 줄곧 화나게 만들었다. 형벌을 받아 쫓겨났다가도 궁에 다시 돌아왔는데 그의 직언이 바른 소리였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하지만 연산군에게 직언은 소용없었다. 왕의 임무를 등한시하고 여색과 술에 빠진 것도 모자라 백모(伯母)를 겁탈하는 등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른 연산군에게도 김처선은 바른 소리를 했다.
“늙은 몸이 여러 임금을 섬겼지만 고금을 통해 상감처럼 하신 분은 없었습니다. 임금을 오래하지 못할까 걱정됩니다.”
이에 화가 난 연산군은 김처선의 다리와 혀를 잘랐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전국에 방(榜)을 내려 김처선의 세 글자는 어디에도 쓰지 못하게 하라”는 명을 내리기도 했다. 김처선의 진심어린 호소를 듣지 않은 연산군은 결국 비참하게 강제로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현재 대한민국 정부에는 이런 충신이 있을까. 이원종 전 비서실장은 최순실의 연설문 수정 보도가 처음 나왔을 때 “봉건사회나 가능한 일”이라며 묵살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로 드러났고 온 나라는 혼돈에 빠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책임지고 사과하는 사람이 없다. 초기 대통령이 잘못된 길로 접어들었을 때 이를 만류하고 ‘안 된다’고 간언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국정은 바로 섰을 것이다. 충신 김처선이 그리워지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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