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하우스 덕에 사계절 싱싱한 야채를 먹을 수 있고 김치냉장고가 생겨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지만 예전 늦가을의 김장은 큰일이었다. 집집마다 김장계획을 짜고 동리마다 배추와 무가 쌓이는 김장 시장이 섰다.
시골에서는 한 집의 김장이 시작되면 온 동리가 품앗이를 한다. 동네 아낙들이 모여 김치 속을 버무리고 절인 배추에 속을 넣으면서 온갖 수다가 나오고 깔깔 웃어대는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김치를 만든다. 끼니가 되어 구수하게 끓인 배추속댓국에 김장 쌈을 먹노라면 힘든 감정은 스러지고 친밀감이 돈독해진다. 이런 분위기는 동네 지역사회를 화목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김치는 시간으로 먹고 온도로 먹는 음식이다. 김장김치가 잘 익어서 독에서 김치를 꺼내 썰어놓으면 그 첫맛이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그 싱그러움과 특유의 마늘, 파, 그리고 구수한 젓갈의 곰삭은 맛은 갓 지은 햅쌀밥과 잘 어울리는 명콤비다. 추운 겨울밤에 찬밥에다 김치를 송송 썰어 넣고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려서 비빈 김치 비빔밥과 얼음이 둥둥 뜬 동치미국을 그대로 마셔도 끄떡없는 위장은 이러한 한국인의 기상을 보여준다.
김장 김치는 여름에 담그는 열무김치나 가을 지레김치와 비교하면 김치 중의 김치라고 부를 수 있다. 김장 김치는 세계인이 놀랄 정도로 우수한 음식으로 예찬 받는데, 탄수화물만 적을 뿐 그 밖의 영양소는 모두 들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밥과 함께 먹는다. 김치를 뺀 한국의 식탁은 생각할 수 없다.
과거에는 3대나 4대 대가족이 한데 모여 살았기 때문에 김장김치를 100포기 또는 150포기씩 담았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핵가족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김치를 많이 담글 필요도 없어졌다. 한 가정에 10포기 아니 7포기 정도로 줄었다고 하니 김장은 더 이상 연례행사가 아니다. 이웃집에 김치가 떨어졌다는 말을 들으면 김치를 한 양동이씩 퍼주는 어머니의 큰손이 다시는 경험하지 못하는 옛 이야기가 된 것이 아쉽고, 한국인의 푸짐한 인심도 같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서 서운하다.
무얼 어떻게 먹지?<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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