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와 쌍벽 이뤘던 추상미술 1세대의 품격
김환기와 쌍벽 이뤘던 추상미술 1세대의 품격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6.12.02 14:16
  • 호수 5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유영국, 절대와 자유’ 전
▲ 김환기와 함께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유영국은 선·면·형·색 등 기본적인 조형요소로 추상 세계를 구축해왔다. 사진은 1979년 작 ‘산과 호수’.

산‧바다 등 자연의 본질 기하학적으로 표현… 대표작 100여점 망라
한국적 색채 강한 ‘산’ 연작, 힘찬 기운 풍기는 60년대 작품 인상적

지난 11월 27일 한국미술품 최고가가 또다시 경신됐다. 20세기 한국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 화백(1913∼1974)의 노란색 전면점화(全面點畵) ‘12-V-70#172’가 63억2626만원(4150만 홍콩달러)에 낙찰된 것이다. 이로써 김 화백의 작품이 국내외 경매에서 거래된 한국미술품 중 최고가 1위부터 5위까지를 모두 차지하게 됐다. 같은 시각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는 또 다른 추상미술 선구자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었다. 1세대 추상미술 작가로서 김 화백과 쌍벽을 이뤘던 유영국(1916~2002) 화백 이야기다.
‘유영국, 절대와 자유’ 전이 내년 3월 1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진행된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올해 준비한 ‘한국의 근대미술 거장 시리즈’의 마지막 전시로 유영국 화백이 1937년 일본 유학시기부터 1999년 건강상의 이유로 절필할 때까지 남긴 작품 100여점과 사진, 가족인터뷰 등 자료 50여점을 총망라했다.

▲ 초기 대표작 ‘산’(1957)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유 화백은 최근 한국미술품 경매가를 경신하고 있는 김 화백과 자주 비교 대상에 오른다. 실제 두 사람은 생전에 각별한 사이였다. 유 화백이 세 살 어렸지만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한국화단에서 ‘추상미술’ 동반자로서 친구처럼 지냈다.
비구상미술(非具象美術), 비대상미술(非對象美術)이라고 불리는 추상미술은 눈에 보이는 자연물을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색, 선, 형 등으로 작품을 구성해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을 듣는다.
유 화백이 김 화백과 비교되는 이유는 둘 사이의 관계도 있지만 한국 추상미술을 각기 다른 양식으로 확장시켰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일본 유학을 다녀오고 해방 이후 후학을 양성하다 각자 예술세계를 위해 사회적 명성과 지위를 버리고 전업작가의 길을 걸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추구하는 미술세계는 달랐다.
김 화백은 반구상적인 자연에서 출발해 점진적으로 추상세계로 나아가 단색 점으로 캔버스를 가득 채우는 전면점화 작품을 선보였다. 반면 유 화백은 초기부터 기하학 중심의 구상주의에서 출발해 산과 바다 등 보편적인 자연의 본질을 추구하려 했고 선·면·형·색 등 기본적인 조형요소로 화풍을 이뤘다.
전시에서는 4개 공간으로 나눠 이런 유 화백의 작품 변화를 한눈에 살펴보도록 했다. 초기작에 ‘노을’ ‘계곡’ 등 제목을 붙였던 그는 점차 ‘산’ 또는 ‘작품(Work)’으로 압축해 구체적 형상의 흔적을 제거하거나 생략하며 만물의 동등성을 추구했다.
먼저 첫 번째 공간인 ‘1916~43 도쿄 모던, 1943~59 추상을 향하여’에서는 일본 유학시절과 광복 직후 그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본다. 이 시기 유 화백은 몬드리안이 1920년 “인간은 과거 자연의 아름다움만을 그린 반면 이제 새로운 정신을 통해 스스로 아름다움을 창조한다”고 선언한 ‘신조형주의’에 깊은 감화를 받았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1950년대 그린 ‘바다에서’ ‘산’ ‘작품’ 연작이다. 색채는 한국적인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지지만 기본적인 선의 구분 등은 몬드리안의 영향이 느껴진다.
이어 ‘1960~64 장엄한 자연과의 만남’에서는 유 화백이 ‘60년현대미술가연합’ 대표를 맡으며 ‘현대’ 미술 운동을 이끌던 시기의 작품을 선보인다. 이때 제작된 그의 작품은 대체적으로 매우 힘찬 기운을 풍긴다. 거대한 산수를 마주대하는 듯한 큰 화면에는 온갖 계절의 생동감 넘치는 자연이 펼쳐진다. 특히 1964년 한 해 동안 개인전 발표를 앞두고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 제작된 그의 작품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마치 깊은 숲속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활발히 활동하던 유 화백은 48세 이후 모든 그룹활동을 정리한다. 이후 아침 7시에 기상해 오후 6시까지 규칙적으로 개인 작품 제작에만 몰두했다. 그는 1970년대 중반 예순이 될 때까지 끊임없이 조형실험을 계속해 나갔다. 세 번째 공간인 ‘1965~70 조형실험’에서는 이 시기 작품들을 통해 원숙해진 그의 예술 세계를 보여준다. 비정형(非定型)적인 것에서부터 점차적으로 기하학적인 형태로 나아간 그의 작품은 빨강‧노랑‧파랑 등 삼원색을 기반으로 한다. 같은 빨강 계열의 작품에서도, 조금 더 밝은 빨강, 진한 빨강, 탁한 빨강 등 미묘한 차이를 지닌 색으로 표현해 절묘한 조화를 이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유 화백은 60세를 넘어서면서부터 끊임없이 병마와 싸워야 했다. 1977년부터는 심장박동기를 달고 살기 시작했으며, 86세의 나이로 타계할 때까지 뇌출혈로만 8번이나 쓰러지는 등 37번이나 병원신세를 졌다. 그런 와중에도 ‘자연에 좀 더 부드럽게 돌아간’ 평화롭고 아름다운 작품들을 남겼다. 전시의 마지막 공간인 ‘1970~90년대 자연과 함께’에서는 그의 마지막 예술혼을 살펴볼 수 있다. 이 시기 그의 작품 속 도형들은 산과 나무, 호수와 바다, 지평선과 수평선, 해와 달 등 지극히 조화롭고 평화로운 모습으로 완벽한 ‘평형상태’를 보여준다.
이번 서울 전시가 끝나면 내년 3월 29일부터 6월 25일까지는 부산시립미술관으로 옮겨가 전시를 이어간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