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깐한 선배들 많이 있는 세상 됐으면
깐깐한 선배들 많이 있는 세상 됐으면
  • 한혜경 호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승인 2016.12.09 13:35
  • 호수 5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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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야단을 잘 치는 편에 속한다. 수업시간에 조는 학생이 있으면 속으로는 ‘알바 때문에 잠을 못 잔 걸까?’(실제로 지방대학에는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하는 학생들이 참 많다) 하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면서도, 겉으로는 잠 깰 때까지 서 있으라고 호통친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자주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정작 나 자신이 잘못했을 때 야단쳐줄 사람은 누구일까? 물론 나를 비판하고 내 잘못에 대해 뒤에서 수군거리는 사람들은 지금도 충분히 많다. 하지만 객관적인 시각과 주의 깊은 합리성을 가지고 ‘그건 아니다. 그건 네 잘못이야’ 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나는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아니 죽을 때까지 내가 잘못한 일에 대해 지적 받고 또 야단도 맞으면서 살고 싶다. 때로는 불편하고 섭섭하더라도 ‘진실’을 말해주는 깐깐한 선후배와 친구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요즘 부쩍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에도 그런 깐깐한 ‘선배들’이 필요한 건 아닐까? 나는 상상해본다. 이렇게 세상 돌아가는 게 치매에 걸린 듯 정신없어 보일 때 나이 든 사람들이 독수리 오형제처럼 멋있게 나타나서 ‘잠깐!’ 하고 외쳐준다면, ‘우리 숨 좀 돌리고, 같이 생각 좀 해 봅시다!’라고 소리쳐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제발 선배 시민이 나서서 ‘브레이크’를 걸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일들이 한둘이 아니다.
요즘의 정치 상황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에는 정치, 경제, 이념 같은 것들보다 훨씬 중요한 사안들이 수천 가지, 수만 가지 존재한다. 이 정신 없이 돌아가는 세상에서 ‘뭘 모르는’ 케케묵은 기성세대로 취급당하는 설움을 차곡차곡 쌓아두며 선거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함으로써 뜨거운 맛을 보여주는 것도 좋겠지만, 선배 시민이 소소한 일상에서 부딪히는 작은 문제들에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존재감’을 보여주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즉, 각자 자신의 주변에서, 자신의 분야에서, 소소한 일상을 통해 ‘살아보니,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이것이더라’라고 말해줬으면 싶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말처럼, 선배 시민이 사막 어딘가에서 사막을 아름답게 해줄 ‘우물’이 되고, 저 산을 생기 있게 해 줄 ‘이름 모를 풀꽃’이 되는 그런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환경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 자기 아이 다 키웠다고 나 몰라라 하지 않고 아이들 교육문제에 대해 ‘적어도 이건 아니야’라고 소리치는 ‘까칠한 할머니’들의 목소리, 성숙한 시민 문화를 주도하는 ‘유쾌한 할아버지 연대’, 지역사회를 살리기 위한 은퇴자 모임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남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해서는 자신부터 돌아봐야 한다. 나이 든 사람들이 사회를 비판하려면 스스로 건전한 상식을 갖춰야 한다. 젊은이들에게 삶의 규칙과 질서를 주입하려고 하기 전에 자신의 삶으로 보여야 한다. 권위주의적이지 않으면서 권위 있는 모습도 보여야 한다.
혹시 이제는 모든 것에서 물러나 편안한 일상에만 몰두하면서 즐겁고 평화롭게 살려고 마음먹고 있는가? 물론 그것도 나쁘지 않다. 그동안 가족을 위해 사회를 위해 열심히 일한 당신이 떠난다고 한들 누가 말리겠는가.
하지만 나는 말하고 싶다. 직장에서 은퇴한다고 해서 사회마저 은퇴해서는 안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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