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마는 의혹이 덜컥 나며 아파트에 전화를 걸었으나 단주가 사라지고…
현마는 의혹이 덜컥 나며 아파트에 전화를 걸었으나 단주가 사라지고…
  • 글=이효석 그림=이두호 화백
  • 승인 2016.12.09 13:41
  • 호수 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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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장편소설 화분 <14>

담배를 뽑아서 피우면서 단주에게도 권하니 그도 제법 익숙한 손 맵시로 불을 붙여서는 입에 문다. 연기가 코와 입에서 새어 나기 시작한다. 두 사람 입에서 나오는 자색 연기가 흡사 산골짝에서 도룡뇽이 뽑는 안개같이 볼 동안에 방안에 차지며 공기를 흐려 버린다.
구석 책상에 일없이 앉아 있는 어린 여급사 애영의 눈에는 연기를 뽑는 두 사람의 자태가 신기하게만 보인다. 쓰고 떫은 담배라는 것을 왜들 피울까, 담배를 피워야만 어른된 표정이 나고 어른된 체면을 갖출 수가 있는 것일까――어린 마음에 의혹이 솟으며 차라리 어른이 못되면 못되었지 제아무리 귀한 것을 준대도 자기는 담배를 먹게 되지 않을 것을 생각하며 유난스럽게 단주에게로 눈이 간다. 손가락 사이에 흰 권연을 날씬하게 든 맵시며 입술에다가 주제넘게 비스듬히 무는 격식이 제법 어른 이상으로 능란한 것이면서도 먹는 품이 현마같이 흡족하고 대담하지 못하고 겨우 입안에 연기를 한 모금 머금어서는 멋지게 흡연을 하는 법도 없이 그대로 뿜어 버릴 뿐이다. 겁이 나는 탓일까. 그렇다면 아직도 애숭이요, 현마 같은 어른이 못 되는 것일까. 모양만이 어른이지 실속은 아직도 아이인 것일까. ——의심하면서 보고 있는 동안에 단주는 별안간 재채기를 하면서 쿨룩쿨룩 기침을 짓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어른 흉내를 내서 흡연을 하다가 객긴 것이다. 눈물을 흘리고 허리를 구부리면서 책상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설레는 것을 보고는 애영은 모르는 결에 웃음이 터져 나오며 깔깔깔깔 허리가 꺾여진다.
“지질치두 못하게 원 연기에 객겨서 이 야단이야.”
현마도 데설데설 웃으며 조롱하는 듯이 그 꼴을 바라보는 것이나 간주는 아마도 호되게 객긴 듯이 체면도 눈치도 없이 법석을 대며 좀체 기침이 멎지 않았다. 처음에는 싸다고 생각하던 애영도 그 괴로워하는 꼴을 보고는 차차 동갑을 대할 때의 가엾은 생각이 솟았다.
단주와 미란을 대하는 현마와 세란의 태도가 지나쳐 되고 까다로웠던 탓인지도 모른다. 책망했다가 달랬다가 마치 탐정 같은 눈초리로 밤낮으로 노리우고서야 마음이 편할 리도 없었거니와 그 귀찮은 눈치 속에서 단주와 미란은 말없는 동안에 자유의 나라를 구하게 되고 반역의 마음을 기르게 되어서 드디어 그 계획을 세웠던지 모른다. 허물없는 숲 속을 쑤셔 불을 질러놓은 셈이었다. 계획이 발각되었을 때 현마와 세란은 크게 놀라며 처음으로 불찰을 느끼기 시작했다.——며칠 지난 때였다. 현마는 새로 배급해야 할 영화의 선택, 선전 등의 일로 별안간 분주해져서 그날은 거의 아침부터 오후까지 움직이지 않고 사무실 책상에 붙어 있었다. 아침에 잠깐 나왔다 간 후로는 낮이 지난 때까지 얼굴을 보이지 않는 단주의 태도가 그날만은 현마에게도 수상스럽게 여겨졌다. 침착을 잃고 서먹서먹해하다가 볼일이 있다고 다시 나가서는 급한 일이 많건만 안 돌아오는 것을 의아해하고 있을 때에 세란에게서 전화가 오기를 아침에 집을 나간 미란이 아직도 돌아오지 않으니 혹 사무실에나 들지 않았느냐는 질문이었다. 현마는 의혹이 덜컥 나며 뒤미처 아파트에 전화를 걸었으나 단주가 없을 뿐 아니라 사무원의 대답이 행장을 차리고 트렁크를 들고 방을 나간 지가 벌써 두어 시간이나 되었다는 것이었다. 뜨끔해지면서 기어코 또 일들을 치나 보다 하고 기차시간표를 훑어보나 임박한 차시간은 없다. 궁금한 마음에 자리에 앉아 있을 수도 없어 가지가지 궁리에 잠기면서 거리로 나갔다.
그날 오전 단주가 사무실을 다녀서 아파트로 돌아갔을 때 방에는 미란이 기다리고 있었다 행장이래야. 그닷한 것이 없었으나 두 사람은 한 짝의 트렁크 속에 필요한 것을 주섬주섬 넣기 시작했다. 약속은 여러 날 전에 된 것이었고 그렇게 된 마음의 시초는 이미 폭풍우의 밤부터 시작되었다. 그날 밤의 두려운 마음, 차지 못하는 마음을 현지의 피차의 환경의 탓으로 여기 고 그 환경의 굴레를 벗어나서 자유로운 나라를 구하고 그 속에서 인생의 문을 열었으면 하는 생각이 두 사람 마음속에 똑같이 싹텄던 것이다. 안타깝고 두려운 마음이 두 번째 반역으로 변한 셈이다. 수풀 속 으늑한 그림자 속에 사랑의 보금자리를 찾는 한 자웅의 산새와 같이 두 사람만의 안온한 사랑의 자리를 찾자는 것이다. 인생의 첫 문은 그렇듯 두 사람만에게는 두 사람에게는 무섭고 어려운 고패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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