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객주’ 작가 김주영 “혼란한 시국… ‘보수의 가치’인 도덕과 양심 지켜야 해요”
대하소설 ‘객주’ 작가 김주영 “혼란한 시국… ‘보수의 가치’인 도덕과 양심 지켜야 해요”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6.12.09 13:44
  • 호수 5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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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상들의 원칙‧의리 담은 ‘객주’… 현대 경제에도 교훈 돼
“거짓말 너무 한 역대 대통령들… 정직한 이가 추앙 받기를”

대하소설 ‘객주’의 작가 김주영(77)씨가 최근 장편소설 ‘뜻밖의 생’을 탈고했다. 김씨는 “이 사회가 가지고 있는 폭력성에 적응해나가는 한 작은 인간에 대한 기록이다. 나이가 들면서 글 쓰는데 애를 먹는다”고 말했다. 12월 5일, 서울 강남의 파라다이스재단에서 만난 김씨에게 근황을 묻자 이렇게 대답한 후 “글도 쓰고 국내외 여행 다니고, 한편으로는 혈압‧혈당‧퇴행성관절염을 치료 중”이라며 웃었다.
김씨의 대표작 ‘객주’는 박경리의 ‘토지’, 황석영의 ‘장길산’, 조정래의 ‘태백산맥’ 등과 함께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역사소설 중 하나다. 김씨에게서 ‘객주’의 뒷이야기와 혼란한 시국을 헤쳐 나가는 지혜를 들었다.

-‘객주’를 쓰게 된 동기는.
“제가 살던 시골의 읍내 마을에서는 닷새 만에 한 번씩 저자가 열렸습니다. 우리 집 울타리 밖이 장터였고 울타리 안쪽은 마당이었어요. 명색이 작가가 된 후로 그 강렬한 인생들을 어떤 방식으로든지 형상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혔지요.”

‘객주’는 19세기 말 조선시대 보부상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작품이다. 서울신문에 1979년부터 5년 가까이 연재가 됐고 9권의 책으로 나와 10만 질(약 100만권) 넘게 팔렸다. 3년 전 마지막 10권을 새로 써 30년만에 완간됐다.
-‘교도소의 베스트셀러’라는 말이 있다.
“그 안에 남녀 간 농밀한 성교 장면도 나오고 우리가 잊어버린 옛날 풍경도 나오고 하니까 장기수들이 시간을 보내려고 읽는다고 해요. 청송에는 감호소가 있어요. 매일 오전 4시, 감호소 측에서 출소하는 이들을 차에 태워 전주에 떨궈줍니다. 그들이 나와서 무슨 일을 하는 가 궁금해서 몇 번 가봤어요. 그 중 한 사람에게 담배와 라이터를 건네주자 그 사람이 객주 1‧2‧3권을 저에게 주면서 재밌으니 읽어보라고 해요. 제가 작가인 줄 모르고요. 지 버릇 개 못 준다고 나오면서도 책을 훔친 겁니다.”
-‘객주’가 강조하는 것은 무언가.
“상인사회에선 원칙과 의리를 중요시해요. 조선시대 후기 상인들이 정해놓은 것들이 있습니다. 억지로 흥정해서 사고팔지 말라, 남녀 간 부정한 짓을 저지르지 말라, 동료가 부상당하거나 사망 시 부조를 얼마를 한다든가 그런 게 12가지가 있어요. 당시 상인들은 전국을 떠돌아다녀 의리를 배신하면 계산상으로도 손해 보지만 인간관계에서도 손해를 봅니다. 원칙과 의리가 이 소설의 골격이에요. 그것이 정경유착의 이 시대에도 건강한 기운을 불어넣어줄 수 있어요.”
-‘객주’를 쓰기 위해 전국 장터를 누볐다고. 에피소드는.
“군포, 강진나루 등에서 간첩으로 오인 받아 신고를 당한 적이 있어요. 가방에 녹음기, 카메라, 낡은지도 등을 넣고 다니니까 오해 받을 만하지요. 연재하던 신문사에 연락 해 풀려나곤 했어요.”
-노트 11권 분량의 우리말을 채집했다는데 몇 가지를 소개해 달라.
“우리말 단어나 숙어에는 역사가 스며있는 게 많아요. ‘시미치를 잡아떼다’는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매사냥을 하던 이들이 깃털에 자기 이름을 적은 뾰족한 표식을 달아놓았어요. 그걸 ‘시치미’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의 매가 자기 손에 날아오면 그걸 잡아 떼버리고 모른 척합니다. 거기서 나온 말이에요.”

김씨는 한 가지 예를 더 들어주었다. 구한말에 유행했던 욕 중에 ‘천좍을 할 놈’이 있다. 천좍은 천주학의 준말로 대원군이 천주교를 탄압하면서 쓰였다. 당시 이 말을 듣는다는 건 그 어떤 욕보다도 치명적이었다고 한다.
김주영 씨는 경북 청송군 진보면에서 태어났다. 대구농고‧서라벌예대 문예창작학과를 나왔다. 안동역 근처의 전매청 엽연초생산조합 사무실에서 단조로운 경리업무를 하며 10여년을 보내기도 했다. 1971년 ‘휴면기’란 작품을 들고 문단에 나왔다. 대표작은 ‘천둥소리’‧‘홍어’‧‘잘가요 엄마’ 등이 있다. 정치참여도 활발했다. 김대중 정부 때 대통령과 국민과의 대담을 세 차례 진행했다. 노무현 정부 출범 당시 대통령 취임사 집필위원을 맡았고 열린우리당 공천심사위원도 지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다. ‘김동리 문학상’(2002년), ‘은관문화훈장’(2007년) 등 수상. 서울에 거주하지만 청송에 있는 ‘객주문학관’에 한 번 내려가면 열흘, 보름씩 지낸다.

-삶에 큰 영향을 받은 이들은.
“선생님들입니다. 초등학교 선생님과 중학교 때 국어교사 그리고 사회에 나와선 김동리‧유주현‧ 이병주 같은 작가들입니다.”
김씨는 김동리를 ‘천상에 있는 분’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키가 작은 김동리가 ‘키높이 구두’를 신은 걸 보고 비로소 신이 아닌 인간임을 인식했다고 한다. 끊임없이 글을 쓰는 유주현으로부터는 끈기와 성실성을 배웠다. 이병주에게선 “보는 시야를 넓혀라, 사회과학 서적을 많이 읽어라”는 말을 깊이 새겨들었다.
-노 전 대통령 취임사의 어느 부분에 기여했나.
“그분의 취임사에 동북아 시대를 열자고 했어요. 거기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부산에서 파리행 기차표를 사서 평양‧신의주, 중국‧몽골‧러시아를 거쳐 유럽 한복판에 도착하는 날을 앞당겨야 한다’는 표현을 제가 넣자고 제안했어요.”
-‘객주문학관’은 작가에게 어떤 의미인가.
“청송군에서 제 이름을 따 ‘김주영 문학관’으로 하자고 했지만 거절했습니다. 저보다 유명한 작가들 보기에 부끄러운 일이니까요. 제 문학적 삶의 커다란 결실이란 점은 말할 나위가 없지요.”
청송에 위치한 객주문학관은 폐교를 리모델링해 2014년에 문을 열었다. 3층 건물에 갤러리, 창작숙소, 연수실, 세미나실 등을 갖춰 지역사회의 문화‧예술 교류의 허브이다. ‘객주’의 내용과 등장인물, 취재 및 집필과정을 소개하고 보부상 조형물도 전시해놓았다.
-고령화 시대 노인의 사회적 역할은.
“저도 노인인데…탐욕을 못 버리는 노인이 있어요. 그걸 내려놓아야 합니다. 노인에게는 두 가지 특유의 냄새가 나요. 쉰내와 파스냄새. 목욕을 자주하고 많이 걸어야 합니다.”
-요즘처럼 나라가 혼란스러운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
“모르겠어요. 왔다 갔다 합니다. 저도 보수주의자에요. 젊었을 적에 진보라는 말을 들었더라도 나이 들면 보수가 됩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도덕과 양심에 의해 움직이는 게 보수의 가치라는 걸 알지요. 노인은 걸으면서도 도덕과 양심을 생각해야 합니다.”
-‘최순실 게이트’로 청년들의 상실‧좌절감이 특히 크다.
“빽 없고 돈 없으면 아무것도 되는 게 없구나, 그런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심어주는데 이번 사건이 큰 역할을 했다고 봐요. 최순실은 말 할 것도 없고 사회적으로 해악을 끼친 이가 정유라(최순실 딸)입니다. 그 애를 벌주어야 합니다.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끼친 좌절감을 생각한다면 백년 형을 살아도 다 갚지 못할 겁니다.”
-역사소설가로 역사는 어떻게 씌어져야 한다고 보나.
“우리 민족의 정통성에 충실해야 됩니다.”
-현 시국과 관련해서 해줄 말은.
“정치든 경제든 거짓말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일찍이 글이나 말로 밝혔지만 정치는 ‘말’입니다. 정치인은 말이 재산이고 말을 먹고 살아요. 역대 대통령들이 거짓말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모택동이 ‘거짓말 100번을 하면 그게 진실이 된다’는 말을 했어요. 우리 정치사는 거짓말을 잘 하는 사람일수록 영웅 대접 받고 그걸 까발리는 이는 억압을 받았습니다. ‘정직하게 얘기하는 정치인이 국민의 추앙을 받는 시대가 와야 한다’ 그게 이번 사태에서 얻는 교훈입니다.”
글‧사진=오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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