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음미하는 디카시 산책
심야의 맹인악사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낮은 음률로 별들의 귀를 세우는
이상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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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이 끊긴 거리에서 등불에 의지한 채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맹인 악공. 누구를 위한 연주일까. 밤이 깊을수록 불빛은 더욱 빛난다. 고요할수록 작은 소리도 더 멀리 퍼져 간다. 하지만 아무도 들어주는 이 없는 곳에서의 연주는 허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저 맹인악사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발길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다만, 오늘 하루도 잘 살았노라고 자신을 위해 정성스럽게 연주했을 저 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맑고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내지는 않았을까. 물욕 앞에 굴하지 않는 자세가 오늘 나를 부끄럽게 한다.
시인의 연봉이 100만원에도 못 미친다는 뉴스를 접하고 잠시 절망했던 나를 부끄럽게 한다. 어둠 속에서는 성냥 한 개비의 밝음도 얼마나 빛나고 따뜻한지를 잠시 잊고 살았던 나를 부끄럽게 한다. 가장 낮은 음률이지만 가장 큰 울림으로 나를 때리는 맹인 악사의 연주가 오늘, 나를 잠 못 들게 한다.
글=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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