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에서 만난 어느 노인
묘지에서 만난 어느 노인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6.12.16 13:53
  • 호수 5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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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천주교용인공원묘원을 다녀왔다. 김수환 추기경(1922 ~2009)의 묘를 보고 싶어 하는 지인을 따라나섰다.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오산리에 있다. 서울역환승센터에서 광역버스를 타고 주전역에서 내려 택시로 10여분 달려 도착했다. 묘원 입구 좌우의 산에 묘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2만 여기의 묘가 줄지어 누워 있다. 성직자 묘역 앞자리에 김수환 추기경의 묘가 있다. 일반인 것보다 약간 크고(2.76㎡) 많은 조화가 놓여 있었다. 그 옆은 노기남 대주교의 묘다. 묘원이 소속된 천주교서울대교구는 특별히 김 추기경을 위한 기념관을 지어놓았다. ‘김수환 스테파노추기경 기념경당’이다. 내부는 심플하고 세련된 성당이다. 정면의 예수상을 바라보고 좌우로 일인용 의자가 줄지어 놓여 있다. 맨 뒤 의자에 앉아 기도하는 지인 옆에서 잠시 눈을 감았다.
경당을 나와 산을 조금 오르자 비탈길 옆에 특별한 구역이 눈에 들어왔다. 암석에 ‘낙태아의 묘’라고 씌어 있다. 흰색의 커다란 성모마리아상 앞에 대리석 제단이 있고 그 위에 누군가가 꽃을 놓고 갔다. 검은색 묘비에 ‘생명의 주님이신 하느님’이란 제목으로 ‘저희들의 잘못으로 죽어간 태아에게는 자비를 베푸시어 영원한 안식에 들게 하시고, 자녀를 낙태시킨 모든 부모들이 스스로 죄를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여 생명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란 기도문이 새겨져 있다.
천주교는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낙태시켜야만 했던 지난 날의 과오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태어나지 못한 아이의 명복을 비는 참회의 장소이다.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평생 자책하며 마음 고생하는 여성들이 종종 찾아온다고 한다.
묘원의 휴게실에서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마신 후 사무실을 찾았다. 50대 남녀가 앉아 있었다. ‘근무 환경이 조용해서 좋겠다’고 말을 붙이자 여직원은 “죽은 사람은 귀찮게 하지 않는데 산사람들이 귀찮게 한다”며 웃었다. 30여분 머물다 매장 일을 하는 70대 노인의 퇴근차량을 운 좋게 얻어 타고 묘원을 빠져나왔다. 분당의 야탑역까지 가는 차안에서 노인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매장 일이 힘들지 않나요.
“여름에는 힘이 좀 들지만 할만 해요.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60대 후반이에요. 책상에 앉아 있던 사람은 못 버티고 농사짓던 사람들은 잘 적응해요.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들어오는 관이 거의 없어 그 사이에 여유롭게 쉴 수 있어요. 겨울에서 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뀔 때 많이 들어옵니다. 그때는 바쁘지요.”
-몇 년 됐나요.
“8년째 하고 있어요. 여기선 술을 많이 먹게 돼요. 유족들이 막걸리를 건네줘요. 술을 그렇게 마셔도 땀을 흘리며 일하니까 건강에는 별 탈이 없는 것같아요. 술도 금방 깨고….”
-TV에서 사망소식을 들으면 일거리가 생겼구나 하겠네요.
“그렇지요. 최근에 장군 출신이 한 명 들어왔어요. 작가 박완서도 여기 묻혔는데 매장 직후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어요. 외국에서도 관이 들어와요. 그 사람들은 시신 얼굴에 화장을 진하게 해놓더라고요.”
-외국도 수의를 입히나요.
“수의는 안 입고 생전에 좋아하던 옷과 구두를 신어요. 관 안쪽이 쇠로 돼 있고 무슨 영문인지 하나같이 안에 물이 차 있고 시신이 둥둥 떠 있어요. 쇠를 찢는 일이 힘들지요.”
-수입은 좋은가요.
“하루 일당이 9만원이에요. 1년마다 계약을 해요.”
-이곳에서 일하며 무얼 느끼세요.
“죽으면 다들 흙으로 돌아가는데 왜들 그리 안달을 하는지….”
노인에게 “귀신을 본적이 있나요” 하고 슬쩍 묻자 “그런 게 어딨어요”라며 철없는 질문이란 듯이 짧게 말했다. 노인은 “자식에게 손 안 벌리고 일을 하는 지금 형편에 만족한다”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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