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사건이 노인들에게 주는 교훈
최순실 사건이 노인들에게 주는 교훈
  •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 승인 2016.12.23 13:45
  • 호수 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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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복지론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맨 먼저 하는 얘기는 “노인은 다 다르다”이다. 노인은 외견상 다 비슷해 보여도 사실 노인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재산과 건강 정도는 말할 나위 없고 삶의 자세, 시간관리, 인간관계, 죽음에 대한 태도 등에 있어서 매우 다양한 형태를 보인다. 개성을 존중하는 성향이 비교적 강한 베이비붐 세대가 노인층으로 편입되면 이들의 삶의 모습은 더 다양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노인들에게 공통적으로 비슷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정치성향이 보수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노인들은 대북관계에 있어서 북한을 용인하여 협력관계를 만들고 그것을 바탕으로 평화통일을 이룬다는 진보진영의 논리를 매우 위험한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아마 지금의 노인들이 6‧25를 경험한 세대이어서 전쟁을 일으킨 북한을 근본적으로 불신하는 것에 기인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그동안 노인들은 보수를 표방하는 정당을 무조건 지지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런데 노인들만큼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분노심과 허탈감을 느낀 세대도 없을 것이다. “보수는 나쁘고 진보는 믿을 수 없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는데, 노인들은 믿을 수 없는 사람보다는 그래도 나쁜 사람이 낫다고 생각하였고, 박근혜는 믿을 만하고 다른 사람보다는 덜 나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묻지마 투표로 박근혜를 지지하였을 것이다. 그런 노인들이 이번에 허를 찔린 것이다. 나라를 잘 이끌어 달라고 준 공권력을 아무런 권한이 없는 개인하고 공유하고, 그 사람은 대통령을 팔아 엄청난 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나고 있으니 이걸 비극이라고 해야 할까 희극이라고 해야 할까?
최근 인터넷이나 SNS로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새로운 정보를 창출하거나 그것을 어떤 행동으로 연결시키는 ‘집단지성’이란 말을 자주 듣게 된다. 다수의 개체들이 협력하여 하나의 집합적인 지능을 만들고 그것이 어떤 지능적인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집단지성은 다수의 참여자들이 정보를 공유, 수정함으로 보다 완전한 정보를 창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어떤 식으로든 한 쪽의 의견으로 치우쳐지면 집단지성이 아닌 어리석은 군중으로 전락하게 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집단지성은 몇 사람의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개입에 의해 오용될 수 있는 취약점이 있기 때문에 대체로 지성적이기보다 어리석어질 확률이 높다고 한다.
이러한 잘못된 현상을 ‘집단동조’라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집단 소속에서 제외되어지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개인이 비록 집단적 의사결정에 동의하지 않는다 해도 집단의 요구에 맞춰 자신의 소신을 굽히고 집단이 제시하는 대로 맹목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선거에선 이런 현상이 강하게 일어나는 것 같다.
노인들이 선거에서 맹목적으로 집단동조를 한다는 것이 아니다. 혹여 충동성이 강한 젊은이들은 그럴 수 있을지 몰라도 지혜와 경륜이 있는 노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순실 사태를 계기로 그동안의 선거에서 노인들이 갖고 있었던 보수 성향을 재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보수정당이 주는 포퓰리즘적 당근을 먹고 노인 표를 싹쓸이 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는지 냉철히 평가해 봐야 하겠다.
보수성향의 노인들은 보수정권이 타락하고 무능하면 어디로 가야하나? 최근 보수도 진보도 다 보수(補修)해야 한다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나는 이제 보수성향의 노인들도 무조건 보수를 지지하지 말고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를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과거 대통령들을 보면 대북관계에 있어서 보수 출신은 강경책을 쓰고 진보 출신은 관용정책을 쓴 것만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노인들은 이제 대북관계를 포함해 대통령 출마자의 개인적 소양과 양심, 그가 속한 정당의 정책방향과 구체적인 공약 등에 있어서 보다 냉철한 판단을 해야 할 것이다.
선거에서 항상 제기되는 문제점은 일반인이 출마자의 모든 것을 자세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매스컴도 공정성을 잃고 어느 특정후보를 지지하거나 혹은 반대하는 경향으로 흐를 수 있다. 노인들은 이제 박근혜와 보수정당에 대한 배신감에 빠져 좌절하지 말고 새로운 한국을 만드는 데 기여해야 한다. 노인의 힘으로 정의와 공평이 도도히 흐르는 한국을 다시 만들 수 있다.
이르면 내년 봄, 늦어도 내년 여름 이전에 대선이 치러질 전망이다. 나는 한국의 대표적인 노인단체인 대한노인회가 태스크포스(임시특별조직)로 가칭 ‘대선후보 정책평가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제안한다. 이 위원회는 주요 출마자들의 이념과 평생의 언행에 대한 정보를 낱낱이 모아 공개하되, 특히 대북 군사 및 외교 분야에서 정확하고 자세한 정보를 모아 공개하는 것이다. 공직자를 바로 세우는 길 중 하나는 권위 있는 민간기관이 “우리가 당신의 모든 것을 자세히 알고 있다”라고 하면서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다.
최순실 사건이 터져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움직임이 강하게 나타났던 지난 11월 중순, 그의 사촌형부인 김종필 전 총리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박근혜는 결코 하야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나는 정치9단인 김종필 씨가 언론매체를 교묘히 이용해 사촌처제에게 한 수 훈수를 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결코 하야하지 말라고…. 세모(歲暮)에 한번 상상의 나래를 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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