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사리 부부송
평사리 부부송
  • 글=이기영 시인
  • 승인 2016.12.23 13:49
  • 호수 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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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을 음미하는 디카시 산책

평사리 부부송

아주 가까이 바라만볼 뿐
일백 년을 살아도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땅 속 깊이 깍지 낀 뿌리들
그 속마음이야 알아보든 말든

이원규(시인)

**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다. 무논에 한가득 물을 가두고, 하늘의 별과 지상의 불빛들도 모두 가두고, 시리도록 빛나는 밤을 배경으로 오늘도 의연하게 평사리 들판을 지키고 있는 저 부부송을 봐라. 뿌리는 얽히고설켜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도 가까운 거리를 만들었을 테지만 두 몸은 더 가까워지거나 더 멀어진 적 없는 간극을 유지하고 있다. 그 자리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의지한 채 백 년을 보냈다.
부부란 그런 것이 아닐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이. 어떻게든 함께 견디며 함께 늙어가는 관계. 둘이어서 덜 외롭고 더 아름다운 모습. 서로의 눈높이를 맞춰주며 닮아가는 사이. 웬수같이 싸우다가도 누구 한 사람 다른 이에게 상처를 입으면 금세 아군이 되어 목숨 걸고 편들어 주는. 아주 가끔은 죽고 못 사는. 부부란 그런 것. 글=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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