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는 국가요건 못갖춰” vs “1948년 당시 건국이란 말 안써”
“임시정부는 국가요건 못갖춰” vs “1948년 당시 건국이란 말 안써”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6.12.30 11:30
  • 호수 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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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를 둘러싼 논쟁들 대한민국 수립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한다. 역사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기록한 것이면서 동시에 후대의 역사가에 의해 재해석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한반도 반만년 역사에서 일어난 갖가지 사건과 그 시대를 살아간 인물을 보는 관점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치열한 논쟁을 통해 통설이 만들어지고 이는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본지는 여전히 팽팽한 여러 한국사 논쟁들과 쟁점을 시리즈로 살펴보고자 한다.


 

 

▲ 건국절 제정 논란을 두고 진보 역사학계와 보수 역사학계가 팽팽히 맞서고 있지만 합의점을 찾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국민 축하식 모습.

“대한민국은 1948년 수립됐지만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은 계승한다.”
교육부는 지난해 11월 25일 ‘2015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역사과 교과용 도서 편찬 기준’(국정 역사 교과서 편찬 기준)을 공개하면서 ‘건국절 논란’과 관련해 이와 같이 밝힌다. 기존 검인정교과서들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 표기한 것과 달리 일부 보수 역사학자들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건국절’ 주장을 받아들인 절충안을 내놓은 것이다. 건국절 제정이라는 한동안 잠잠했던 뇌관을 터트리면서 학계와 여론은 뜨거운 찬반논쟁을 벌이고 있다.

기미독립선언서, 임시정부 수립 등 근거 ‘1919년 건국됐다’는 게 기존 학설
뉴라이트 학자들 “이승만 정부가 국제승인 받아… 임시정부는 건국의 과정일뿐”
공개된 국정 역사교과서는 ‘대한민국 수립’으로… 향후 논쟁 재연 가능성

교육부는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지난해 12월 12일 국정역사교과서 학술회의를 개최했지만 여기서도 명쾌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논란만 키웠다.
건국절 논쟁의 시작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8월 1일 동아일보에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 칼럼을 기고하면서 비롯됐다. 이후 뉴라이트재단·자유주의연대 등 5개 신보수단체가 ‘8·15 명칭을 광복절에서 건국절로 바꾸자’는 내용의 공동성명 발표하면서 공론화됐다. 이와 같은 주장은 현행 대한민국 헌법상 대한민국 임시정부 활동을 무시하는 것으로 비쳐질 가능성이 있다. 현행 헌법 전문은 “대한민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라고 명시하고 있어 이들의 주장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
기존 사관에서는 개천절과 여러 날짜를 근거로 1919년에 대한민국이 수립된 것으로 본다. 1919년을 건국 시점으로 본다면 상해임시정부 수립일인 4월 13일과 ‘3월 1일’, ‘4월 11일’, ‘4월 23일’, ‘9월 11일’도 건국기념일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먼저 3월 1일은 3‧1운동과 기미독립선언서의 발표가 있었다. 이승만 정부의 1948년의 제헌헌법도 이를 건국 시점으로 인정하고 있다. 대한민국 제헌 헌법을 보면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했다”면서 제헌헌법을 만든 이들은 “국가를 ‘재건’했다”고 언급했다. 같은 해 9월 1일 발행된 대한민국 관보 1호에도 1948년을 대한민국 30년으로 표시했는데 이는 1919년을 대한민국 1년으로 계산한 것이다.
상해 임시정부 수립이 대한민국의 시작이라는 주장도 많다. 건국은 ‘한 민족에게 주권이 있음을 선포하는 행위’와 ‘실질적으로 통치를 행사하는 정부를 수립하는 것’을 모두 아우르는 단어이기 때문에 임시정부를 수립한 날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 정부는 일제가 만든 ‘조선민족운동연감’에 수록된 “4월 13일 임시정부 수립을 내외에 선포하다”를 근거로 4월 13일을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로 정했다. 이 연감은 1932년 4월 윤봉길 의사 의거 직후 일제가 상하이 임시정부 사무실을 급습해 약탈해 간 자료의 목록을 정리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 4월 11일 임정 수립 기념행사를 열었다는 기록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2006년 3·1절을 기념해 펴낸 7권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자료집’ 중 4권에 수록된 1945년 4, 5월 임시의정원회의 속기록에서 “4월 11일이 임시정부 수립 제26주년 기념일”이란 기록을 공개한 바 있다.
또한 1919년 9월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한반도 내에서 선포된 한성정부의 법통을 따른다고 한 것”을 근거로 한성 정부의 수립일인 4월 23일에 건국됐다는 주장도 있다. 온갖 임시정부를 통합한 9월 11일을 지지하는 의견도 있다.

반면 이에 반대하는 뉴라이트 사관은 1948년을 대한민국 건국 시점으로 본다. 이들은 임시정부가 정부의 요건(영토 확보, 주권적 지배권, 법률 제정 및 집행이 가능한 물리적 강제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임시정부는 미래에 주권을 행사할 정치적 결사체로서의 요건(제한된 영역의 실효적 통치, 국제사회의 승인)을 갖추지 못했고 정확한 임시정부 창립일에 대해서도 관점에 따라 날짜가 분분한데다 1923년 국민대표대회 실패로 사실상 일개 독립운동단체로 전락해 국가차원의 대표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이를 근거로 1948년 5‧10 총선거로 구성된 제헌 국회가 같은 해 7월 새 나라의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했으며, 이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서 임시 정부를 정신적으로 계승한 의미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즉, 1919년의 정부는 말 그대로 ‘임시’라는 것이다. 이들은 1919년에 건국됐다면 당시 정부를 임시정부라고 부르는 것은 모순이라고 역설한다. 또 임시정부라고 부른 것이 다름 아닌 임시정부 인사들 자신이었고 꼬집는다.
또 1941년 11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발표한 새 민주국가의 건설을 위한 강령인 대한민국 건국강령(大韓民國建國綱領)에도 국가 건설과정은 ‘독립 선포-정부 수립-국토 수복-건국’이라는 내용에도 나타나 있듯, 임시정부가 건국을 위한 과정임에 불구하고 실제 건국은 1948년 8월 15일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한 나라가 국민 국가인지 여부는 자국민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다른 나라들에 의해 판정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임시정부가 펼쳤던 승인외교는 실패했다. 1919년에 수립된 임시정부는 국제사회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에 새로운 독립 국가가 탄생했음을 전세계에 선포한 후에, 다른 나라와 수교함으로써 국가승인을 받았고, 제3차 유엔 총회에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임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건국론 찬성론자인 김명섭 연세대 교수는 “5·10총선거에 의해 국민대표들이 선출되고 5월 31일 국회가 개원해 헌법이 만들어졌고 그 헌법에 의해 규정되는 공간(영토) 이남에서 제한적이나마 근대적 ‘대한주권’의 세 번째 구현이 이뤄졌다”면서 “제헌헌법 전문에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 건립을 세계에 선포했지만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국가로서 존속하지는 못했다고 나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1948년 건국절 반대 진영은 현행 헌법이 대한민국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라고 명시한 점을 감안해보면, 1919년 임시정부뿐 아니라 현 대한민국도 근대국가 3대 요소가 부족한 국가일 수 있다고 비판한다.
이와 함께 1948년 건국절에는 어떤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1948년을 건국으로 규정하면,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보다 건국 공로자들의 중요성이 더 강조되는데, 이 중에 친일파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또한 남한 단독정부가 만들어질 때 사회주의 인사들이 제외됐기 때문에, 이들의 독립운동과 해방 뒤 통일정부를 수립하려고 좌우합작한 노력도 묻힐 수 있게 된다.
또 1948년을 건국절로 본다면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할 수 없게 된다고 비판한다. 이는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꼴이고 이는 대한민국 헌법을 전면 부정하는 것이다.
1948년 건국절을 반대하는 한시준 단국대 교수는 “1919년 4월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같은 해 9월 헌법을 개정하면서 국가 3요소인 국민·주권·영토를 규정했다”면서 “1948년 5월 31일 국회 개원 개회사에서 이승만 국회의장은 새로운 나라를 세우자거나 건국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다”고 밝혔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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