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함께 부른다는 것
노래를 함께 부른다는 것
  • 이동순 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
  • 승인 2017.01.06 13:21
  • 호수 5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시 새해가 밝았습니다. 1945년 일본제국주의의 압제로부터 풀려난 직후 국토와 민족은 이미 반쪽으로 갈라지고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무려 72년 세월이 흘러버렸습니다. 분단을 비통해하며 이를 극복하려고 그동안 무수한 사람들이 피땀 흘리며 분투했으나 아직도 겨레는 둘로 나뉜 그대로입니다.

올해로 우리 겨레가 갈라진 지 벌써 몇 해째입니까? 지난 2011년 벽두에 나는 아주 가슴 설레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자유아시아방송의 라디오프로 ‘남북이 함께 부르는 노래’ 제작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이었지요. 미국 워싱턴DC에 본부를 두고 있는 자유아시아방송(Radio Free Asia, 약칭 RFA)은 1996년 미국에서 설립된 국제방송국입니다. 미국하원의 지원을 받아 중국어, 티베트어, 베트남어, 버마어, 한국어, 라오스어, 크메르어, 광동어, 위구르어 등 9개 언어로 아시아전역을 향해 현재 단파, 중파, 위성방송을 송출하고 있지요. 한국어방송은 1997년에 처음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 자유아시아 방송에서 매주 월요일 오후 1시에 방송되는 라디오프로 ‘남북이 함께 부르는 노래’에 나는 지난 7년 동안 매주 출연했습니다. 내가 선정한 3곡의 대중가요를 해당 프로그램의 앵커(이장균 선생)와 더불어 매주 특집테마가 있는 대담으로 엮어서 보내드리며, 편안하고 흥미로운 분위기로 30분 동안 진행합니다. 녹음시간이 다가오면 제 가슴은 벌써 혼례식에 나갈 새신랑처럼 설레고 두근거리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나를 기다리는 북한 동포들과의 즐겁고 행복한 만남이 곧 이루어진다는 기대와 감격 때문이지요. 사계절의 변화, 국내외 여러 신선한 소식들, 한국대중음악사와 관련된 다양한 에피소드와 이면사(裏面史)에 관련된 각종 이야기들을 들려드리노라면 얼마나 흐뭇하고 가슴 뿌듯한 보람이 느껴지는지 모릅니다.‘남북이 함께 부르는 노래’에서 가장 역점을 두는 포인트는 북한 동포들과의 살뜰한 교감입니다.

특히 우리 겨레가 함께 공감하며 부르는 노래들을 중심으로 선곡해서 이야기를 신명나게 풀어갈 때 나의 가슴 속 저 깊은 곳에서는 이 작은 활동이 갈라진 조국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감격의 그날을 앞당기는 데에 소중한 잉걸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사뭇 뜨거운 힘이 용암처럼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고 보니 북한을 다녀온 것이 어언 십년 세월이 지났네요. 그때 평양, 묘향산 등지를 두루 관람하고 돌아왔었는데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평양 보통강변에 세워진 ‘보통강 려관’에 베란다 난간에서 평양시내 풍경과 분주히 오가는 시민들의 행렬을 그냥 먼발치로 멍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숙소 밖 외출은 일절 금지가 됐기 때문이지요. 무료함을 달래려고 호텔 내부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지하 1층에서 뜻밖에도 ‘가라오케’라 표시된 곳을 발견하게 됐고, 호기심이 발동해서 불쑥 들어갔지요. 무역중개상으로 보이는 북한주민 서넛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나는 우선 맥주부터 한잔 주문하고 탁자 위에 놓인 곡목책자를 천천히 뒤적였습니다. 거의 대부분 처음 대하는 북한가요였는데, 뒷부분에서 놀랍게도 눈에 익은 정겨운 제목들을 보았습니다. ‘목포의 눈물’, ‘눈물 젖은 두만강’, ‘찔레꽃’, ‘선창’, ‘홍도야 우지마라’, ‘애수의 소야곡’, ‘황성옛터’, ‘꿈꾸는 백마강’, ‘나그네 설움’, ‘번지 없는 주막’ 등등. 이 반가운 노래들이 당시 북한에서는 ‘계몽기시대의 노래’란 장르로 분류돼 그대로 불리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지요.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기 직전, 여러 지인들과 폭설로 뒤덮인 금강산을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마침 금강산호텔에서 열린다는 무대공연이 있어서 그걸 보러갔다가 여유시간이 남았지요. 호텔 이곳저곳을 어슬렁거리는데 마침 2층 레스토랑 출입문이 빠끔히 열린 곳에서 낭랑한 노랫소리가 들렸습니다. 노랫소리를 따라서 가보았더니 젊은 여성복무원 하나가 가요방기계를 틀어놓고 혼자 ‘찔레꽃’(김영일 작사, 김교성 작곡, 백난아 노래)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1절을 부른 뒤에 내가 자청해서 2절을 불렀지요, 전혀 예상치 못한 남북합작(南北合作)이 바로 그 자리에서 이뤄졌습니다. 얼마나 재미있고 행복한 추억인지 모릅니다.노래와 음악을 함께 누리는 것은 참 즐겁고 흐뭇한 일입니다.

노래를 듣거나 부를 때엔 가슴 속에서 그 어떤 적대감이나 갈등, 분열, 분노 따위도 감히 접근하지 못합니다. 그저 흥겹고 정겨운 마음으로 바뀌며 일체감, 조화의 세계를 향해 서로 협조하고 소통하며 닫혔던 마음이 활짝 열리는 놀라운 변화를 이룹니다. 남과 북이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만 합니다. 남북이산가족 상봉일정에서 노래가 얼마나 소중한 도구로 큰 역할을 하는지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대중음악분야의 전문가들은 남북이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들을 수집 정리하여 널리 보급하고, 아무쪼록 많이 부를 수 있도록 한층 노력해야 합니다. 각종 행사, 스포츠, 만남의 자리에서 남북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 시간을 반드시 넣어야 할 것입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남북이 함께 부르는 노래’는 현재 분단체제 속에서 진행되는 작은 활동입니다. 그러나 이 방송의 효과는 필시 분단의 골 깊은 장벽을 허물고 그 속의 빙하처럼 단단한 어둠까지 서서히 녹아내리게 할 것입니다. 노래와 정겨운 대화가 빚어내는 그 뜨거운 힘과 위력을 우리는 믿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