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음미하는 디카시 산책
물의 알
소나기 한소끔 지나간 자리
다시 보니 토란잎 위에 알을 낳아 놓으셨네.
하늘 다시 뽀얘졌는데
흙도 다시 말랑해졌는데.
정한용(시인)
**
토란잎 위에 한 방울의 물. 정말 물이 알을 낳아놓은 것만 같다. 조금만 바람에 흔들려도 곧 굴러 떨어지겠지만 저 한 알의 물이 이 땅을 적셔 뭇 생명들을 태어나게 하고 정성들여 키우지 않는가. 푸른 지도로 펼쳐놓은 혈관을 따라 구석구석 가지 않는 곳 없이 흘러드는 물의 섭리. 그리하여 아무리 낮은 곳일지라도 아무리 어두운 곳일지라도 아낌없이 스며들어 나무가 되고, 꽃잎이 되고, 새가 되고, 고래가 되고, 사람이 되고, 눈발로 휘날리기도 하면서 이 세상 모든 목숨의 시원(始原)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아, 위대하여라 한 방울, 물의 알! 목숨 지닌 것들이 태어나는 그 순간만큼은 어떻게 그리 맑고 깨끗한지를 알겠네. 왜 아름다운지를 알겠네.
글=이기영 시인
저작권자 © 백세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