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묘한 거짓은 졸렬한 성실에 못 미친다”는 큰 울림
“교묘한 거짓은 졸렬한 성실에 못 미친다”는 큰 울림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7.01.06 14:08
  • 호수 5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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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기, 신영복 다시 읽기
▲ 오는 1월 15일은 ‘시대의 큰 스승’이라 불렸던 신영복 전 성공회대 교수가 떠난지 1년이 되는 날이다. 그가 남긴 자아성찰을 담은 서적들은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사진은 신 교수의 생전모습과 그의 주요 서적들.

사색·인문학 강조했던 선각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현대판 고전
반인간주의 비판 ‘더불어숲’, 동양고전 읽는 법 쓴 ‘담론’ 등 인기 여전

오는 1월 15일은 ‘시대의 큰 스승’이라 불렸던 신영복 전 성공회대 교수가 수많은 제자들을 등지고 떠난 지 1주기가 되는 날이다. 신영복 교수는 물질적 성공과 실용 학문만을 추구하는 세태에서 인문학과 고전의 가치를 꿋꿋하게 전파하며 동시대를 살아온 세대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서울대 경제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돼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20년간 옥살이를 하다 1988년 8·15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이후 1989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정치경제학, 한국사상사, 중국고전강독 등을 가르쳤다. 1998년 5월 1일 성공회대학교 교수로 정식 임용돼 2007년 정년퇴임을 하고 석좌교수로 재직하면서 수천명의 제자를 양성했다.
신 교수는 멋스러우면서도 정감 있는 글씨를 쓰는 서화 작가로도 유명하다. 글자 하나하나가 마치 어깨동무를 한 듯한 그의 독특한 글씨체는 교도소 서예반 활동을 하며 터득한 것이다. 그가 붓으로 쓴 ‘처음처럼’이라는 글귀는 유명 소주 상표로 사용되고 있다.
‘사색’과 ‘인문학’으로 대표되는 그의 철학은 그가 남긴 수많은 저서로 현재까지도 많은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
그의 대표작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긴 수형 생활 속에서 제수, 형수, 부모님에게 보낸 서간을 엮은 책으로 그 한편 한편이 명상록을 읽는 만큼 깊이가 있다. 작은 것에 대한 소중함, 수형 생활 안에서 만난 크고 작은 일들과 단상, 가족에의 소중함 등이 정감어린 필치로 담긴 책은 현대판 고전으로 남았다.
또 1997년 한 해 동안 ‘새로운 세기를 찾아서’라는 화두를 지니고 22개국을 여행한 기록을 책으로 엮은 ‘더불어숲’과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란 부제를 달고 출시된 ‘담론’ 등도 현재까지 꾸준히 팔리며 인문학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1988년 첫 출간된 후 1998년 출소 이후 새로 발견된 메모 노트와 편지글을 더한 증보판이 나왔다. 책은 수감 직후부터 감옥에서 나오기 직전까지 쓴 글을 시간순으로 구성했다. 이러한 구성은 독자로 하여금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저자의 입장을 이해하게 하고, 그의 현실 인식과 사색의 깊이가 나아가는 방향을 함께 따라갈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책에서 돋보이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신 교수의 긍정적이고 따뜻한 시선이다. 교도소를 옮겨야 하는 불행 속에서도 그는 낙관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이번 이사 때 가장 두고 오기 아까웠던 것은 ‘창문’이었습니다. 부드러운 능선과 오뉴월 보리밭 언덕이 내다보이는 창은 우리들의 메마른 시선을 적셔주는 맑은 샘이었습니다.”
또한 육필 원문을 그대로 살려 저자의 심정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긴 시간 동안 수감된 상황에서도 인간성을 포기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자신의 삶과 세상에 대해 성찰을 하도록 이끌어 준다.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은 단지 37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더불어숲
1998년에 1, 2권으로 나뉘어 선보였다가 2003년 합본호로 재출간했다. 세상을 향한 따뜻한 통찰을 담은 글과 그림·사진을 엮어낸 이 책은 초판 출간 이후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신 교수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향해 출항한 곳인 스페인 우엘바에서 시작해 유럽과 남미를 거쳐 중국의 태산에서 여정을 마치기까지 전 세계의 역사 현장을 직접 답사하고 느낀 감회를, 마치 ‘당신에게’ 엽서를 보내듯 편지 형식으로 써내려갔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가 피라미드를 쌓아 불멸과 영생을 도모하였듯이, 오늘 우리들 역시 저마다의 피라미드를 쌓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그 쌓은 것들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 한없이 충실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의 오만과 무지, 그리고 반인간주의를 비판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인간주의’를 제시한다.
“우리는 아직도 ‘잘 자란다’는 의미에 마음을 쏟을 여력이 없습니다. 경쟁과 효율성 등 사람을 해치고 사람과의 관계를 갈라놓는 일의 엄청난 잘못을 미처 돌이켜 볼 겨를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일찍부터 정성을 기울이지 않으면 언제나 후회하게 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담론
교수로 재직한 마지막 해인 2014년 겨울 학기 동안의 강의 녹취록을 정리하고 다듬은 책이다. 1부 ‘고전에서 읽는 세계인식’과 2부 ‘인간 이해와 자기 성찰’로 나누어 총 25편의 글을 수록했는데 동양고전에 대한 독법을 주로 다룬다.
하지만 단지 ‘동양’과 ‘고전’에만 머물지 않고 동서양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고대와 현대를 아우른다. 이성영역인 문사철(文史哲)에만 빠지지 않고, 시서화악(詩書畵樂)이라는 감성영역을 함께 살피며 생각의 폭을 넓히고 있다.
“교묘한 거짓은 졸렬한 성실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화려한 언설과 치장으로 꾸민다고 하더라도 어리석고 졸렬하지만 성실하고 진정성 있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2부에서는 스스로 ‘대학생활’이라고 명명한 감옥생활에서 배운 인간에 대한 이해와 자기성찰을 담고 있다. 신 교수는 마지막 강의에서 죽지 않은 이유와 살아가는 이유를 언급했다. 견디기 쉽지 않은 긴 옥살이에서 자살하지 않은 이유는 ‘햇볕’ 때문이었다. 겨울철 독방에서 만나게 되는 햇볕은 길어야 두 시간이고, 가장 클 때가 신문지 크기였다. 그러나 그 따스함은 자살유혹마저 이길 만큼 강렬했다고 한다. 살아가는 이유는 즉, ‘깨달음’과 ‘공부’였던 것이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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