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음미하는 디카시 산책
재주
미지근한
겨울 햇볕이 해내는 일
고드름 말리기
한 여름 땡볕은
어림도 없지
박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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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겨울 최고 기온은 영상 15도를 잘 넘지 않는다. 이십 년 전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겨울 평균 기온이 올라갔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다. 특히 남부지방의 경우 겨울 내내 눈 한 번 구경하지 못하고 한 철을 다 보내는 경우도 있다. 별다른 놀이기구도 없던 시절, 대책 없이 흘러내리는 콧물도 아랑곳하지 않고 얼음이 꽝꽝 언 논에서 나무로 만든 얼음썰매를 지치기도 하고, 담장에 매달려 있던 고드름을 뚝뚝 끊어 먹어도 추운 줄 모르고 행복했던 시절이 이젠 까마득하다. 강원도 정선 함백산 근처를 지나다 만난 고드름이 시인의 눈엔 그래서 더 반가웠을 것이다. 등 뒤로 따사롭게 내리쬐는 햇살을 받아 꾸득꾸득 말라가는 한낮의 고드름. 한여름 땡볕은 어림도 없는 일을 미지근한 겨울 햇살은 잘도 해내고 있다. 겨울 햇살이 해내는 일이 어디 이것뿐이랴. 글=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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