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신년하례식은 어땠을까
조선시대의 신년하례식은 어땠을까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7.01.13 13:40
  • 호수 5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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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자와 문무백관은 왕에게, 왕세자빈과 후‧상궁은 왕비에게 절

최근 신년하례식 몇 곳을 다녀왔다. 하나같이 주빈‧내빈의 인사말, 축사에 이어 시루떡을 자르고 단체기념촬영하고 떡국을 먹는 순으로 진행됐다. 옛날에는 어땠을까. 조선시대에도 신년하례가 있었다. 정조하례(正朝賀禮)라고 한다. 새해가 되면 상급관원들은 왕에게, 중급관원들은 상급관원들에게 하례를 했다. 새해의 시작을 동지로 보아 그날 하례를 행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체로 정조에 했다. 요즘의 음력 설날을 이른다. 그러니까 행여 1월 첫주에 사정상 신년하례의 기회를 놓쳤다면 음력 설 즈음에 조선시대를 핑계대고 해도 늦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하례 날 정전에서는 왕세자와 문무백관이 임금에게 하례를 올렸고, 내전에선 왕세자빈과 내‧외명부의 하례를 받았다. 내명부는 후궁‧상궁을 말하고 외명부는 종친과 관직을 받은 관료들의 부인들을 말한다.
‘동국세시기’에 하례 장면이 기록돼 있다. 대신들은 각자의 집에서 일찍이 제사를 마친 뒤 모든 관원을 데리고 대궐에 나아가 새해 문안을 드린다. 하례의 내용을 사륙문(4자와 6자의 구로 이루어진 문체)으로 지어 기록한 전문(箋文)을 가지고 정전 뜰에 줄을지어 조하(朝賀)를 올린다. 팔도에 파견한 관찰사, 통제사, 병사, 수사, 목사 역시 전문과 방물을 왕에게 바친다.
새해 무렵, 고관대작들은 대문 한쪽에 옻칠을 한 쟁반을 내놓았다. 신년하례객이 세배를 빙자해 청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대면하는 대신 쟁반에 명함을 두고 가게 한 것이다. 신년에 눈도장을 찍기 위해 두고 가는 명함을 새해의 명함이라고 해서 ‘세함’(歲銜)이라고 했다.
조선은 사대교린을 중요하게 생각해 명과 청나라에 사신을 자주 보냈다. 임시로 보내는 사신을 일러 ‘사은사’(謝恩使)라고 했고 황제의 생일에 축하하는 사신은 ‘성절사’(聖節使)라고 했다. 정월 초하루에 황제에게 하례를 드리는 사신이 하정사(賀正使)다. 하정사를 보내지 않고 이른바 망궐하례를 하기도 했는데 이는 명나라 궁궐을 바라보며 거행하는 신년하례이다.
세종대왕은 1433년 1월 1일(세종 15년), 처음으로 아악을 사용하는 회례연을 베풀었다. 왕비였던 소헌왕후도 내전에서 회례연을 베푼 것으로 기록돼 있다. 왕비에게 신년하례를 드리는 것을 ‘중궁정지명부조하의’라고 했다. 내‧외명부들을 위해 베푸는 연회를 ‘중궁정지회명부의’라고 했는데 중궁은 왕비를 말하며 이 연회에서 내‧외명부들은 술을 올리며 왕비의 건강과 장수를 축원했다. 왕비는 자신의 권위를 내‧외명부에 과시하고 내‧외명부간의 화목과 결속을 도모했다. 궁중연회는 참여자에 따라 외연과 내연으로 나뉜다. 외연은 왕이 주관하고 참여자는 남자이며, 내연은 왕비가 주관하고 참여자가 모두 여자이다.
세종과 소헌왕후는 조선조 역대 왕과 왕비 중 가장 금슬이 좋았던 부부로 10명의 왕자와 2명의 공주를 낳았다. 그 중 문종과 세조가 왕위에 올랐다. 소헌왕후는 세종 스스로도 그녀의 부덕과 내조를 칭찬했고 그녀의 죽음이 안타까워 유교가 국시임에도 궁안에 내불당을 지었다. 또, 둘째 아들 수양대군으로 하여금 석가의 일대기를 훈민정음으로 번역한 ‘석보상절’을 편찬하게 해 그녀의 명복을 기원했다.
수년 전에 국립국악원이 신년음악회로 궁중연회를 본 딴 ‘봉래의’(鳳來儀)를 무대에 올린 걸 본 적이 있다. 화려한 예복과 장엄한 궁중음악, 유연한 춤 등 감동적인 무대가 눈에 선하다. ‘용비어천가’를 노래하는 ‘봉래의’는 국가의 평안과 국운의 번영을 바라는 시가로 궁중정재 중 유일하게 당악과 향악이 결합된 조선시대 최고의 작품이다.
왕비는 일상복인 ‘홍원삼’을 입고 내명부의 배례를 받은 후 내명부의 반수(우두머리)로부터 하례 치사를 받는다. 내명부 반수는 “빈첩 강씨 등은 지금 신년을 맞는 절기를 만나서 삼가 왕비 전하께서 시절과 더불어 기쁨을 같이 하기를 비옵나이다”라고 하면 왕비는 “신년을 맞는 경사를 빈(嬪) 등과 더불어 이를 함께 기뻐하노라”라고 답했다.
신년하례식에 바쁘게 참석하면서 국립국악원의 화려한 무대가 다시 또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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