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석 정신분석가 “‘이만하면 나도 괜찮은 사람’이란 자존감 가져야 건강에 좋아요”
이무석 정신분석가 “‘이만하면 나도 괜찮은 사람’이란 자존감 가져야 건강에 좋아요”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7.01.13 13:46
  • 호수 5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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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가르치는 의사’… 국내 6명뿐인 국제정신분석가 중 한명
우울증 노인자살 불러… 하루 3명 이상 만나고, 일과표 만들어야

“노인은 자주 ‘나도 이 정도면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말함으로써 스스로 자존감을 높여주어야 한다.”
40여년 인간의 내면세계를 연구‧치료한 이무석 정신분석가(72‧전남대 의대 명예교수)가 하는 말이다. 이 교수는 “노인이 되면 인생을 카운트하게 되며 이때 자신의 인생을 긍정하고 인정해주어야 자존감이 높아지고 따라서 마음의 건강과 행복을 갖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정신과 의사를 교육하는 정신분석가이자 정신분석가를 훈련시키는 교육분석가여서 이 방면의 최고 석학인 셈이다. 전남 광주에서 ‘이무석 정신분석연구소’를 운영 중인 이 교수로부터 우울증 극복 방법과 건강한 정신 등에 대해 들었다.

-‘이무석 정신분석연구소’는 어떤 곳인가.
“정신질환자의 진료‧치료, 정신분석가 교육, 저술 등의 일을 합니다.”
-어떤 이들이 배우러 오는가.
“주로 정신과 의사들이지요. 제가 독자적으로 하는 게 아니고 한국정신분석연구소가 하는 일의 일부를 제가 광주에서 맡아 하는 겁니다.”
-의사가 의사를 가르치는 셈이다.
“그렇습니다. 정신과 의사는 진단과 약을 써서 치료를 하지만 정신분석가는 무의식 세계를 통해 병을 치료합니다. 실제로 공황장애‧우울증‧성격장애 같은 질환의 진짜 원인은 무의식 속에 숨어 있어요.”
-정신분석가가 되는 게 어려운가 보다.
“국내에 15명의 정신분석가가 있고 그 사람들을 훈련시키는 교육분석가(국제정신분석가)는 현재 저를 포함해 6명이에요. 교육분석가가 되려면 영국에 본부를 둔 국제정신분석학회(IPA)의 엄격한 테스트를 거쳐야 합니다. 정신분석가가 되고나서 5년이 경과해야 하고, 수천시간 환자를 눕혀놓고 분석치료도 하고, 외과의가 수술과정을 지도 받듯이 지도감독을 받고 본부의 인터뷰도 통과해야 돼요.”
-정신분석은 어떤 것인가.
“무의식을 연구하는 학문이자 치료법입니다. 인간의 의식은 20%이고 무의식은 70~80%이에요. 모든 병이나 성격의 원인은 무의식 속에 숨어 있어요. 정신분석은 재밌고 신기해요.”
-노인 우울증은 어떤 건가.
“우울증의 원인은 상실감이에요. 누구와 가까워지거나 친해지면 그 사람이 내 안에 자리를 만듭니다. 그 사람이 죽으면 그 자리가 비고 공허감과 허전함을 느낍니다. 기대를 크게 갖는 자식이 그만큼 해주지 않을 때 자식이 떠나간 것 같은 상실감을 느껴요. 그럴 때 확 가라앉아요.”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얼른 마음을 추스러야 합니다. 그것이 상당히 중요해요. 공허함이 크면 잠이 안와요. 초저녁에 한숨 자고 새벽 2,3시에 깨고 나면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해요. 그래서 2~5시 사이에 자살이 가장 많이 발생합니다. 우울증의 초기 증상은 잠이 안 오고 씻는 것도, 먹는 것도 다 귀찮아지는 겁니다. 극복하는 방법은 첫째가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하루에 적어도 3명은 만나야 해요. 그리고 일과표를 짜야 해요. 노인들 치료할 때 ‘수첩이 있느냐’고 물어요. 누구 만나서 어디 가서 뭘 먹고 그런 걸 적어놓아야 해요. 그게 없는 사람은 위험합니다.”
-노인자원봉사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아주 좋아요. 단 억지로 하는 건 안 좋고 자기가 좋아서 해야 합니다.”
-빈곤도 노인 자살의 원인 아닌가.
“상태를 악화시키지요. 공허할 때 돈이라도 있으면 시간도 보내고 누구라도 만나겠지만 돈이 없으면 그게 안 되니까 자존감도 떨어지고 열등감이 심해집니다.”
-자존감이란 무엇인가.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입니다. ‘이 정도면 나도 괜찮은 사람이야’ 이 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마음속에서 ‘뭐가 괜찮아’라는 소리가 들리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입니다.”
-‘자존감’이란 제목의 저서도 냈다.
“누가 나에게 ‘마음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말해달라’고 하면-물론 무리한 요구이지만-저는 그것을 ‘자존감’이라고 할 겁니다. 자존감이 있는 이는 스트레스도 잘 받지 않아요. 치료를 해봐도 자존감이 높은 이는 빨리 좋아집니다.”
-노인이 자존감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노인 스스로가 살아온 인생에 대해 긍정하고 인정해줘야 합니다. 나이가 들면 인생을 카운트합니다. 나는 이루어놓은 게 뭔가. 그때 ‘완벽하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최선을 다해 살아왔어’ 이렇게 말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나는 뭐하면서 살아왔지, 헛살았어’라고 말하는 이가 있습니다. 후자에게는 굉장한 심리적 위기가 옵니다. 자존감이 바닥인 거지요. ‘나도 이 정도면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말을 늘 자신에게 들려주어야 자존감도 높아집니다.”

이무석 교수는 전북 완주군에서 11남매 중 9번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삼례우체국장을 지냈다. 전남대 의대 졸업, 동 대학원 의학박사 학위 취득. 전남대 의대 교수, 한국정신분석학회 회장 역임. ‘자존감’‧‘30년만의 휴식’‧‘내 아이의 자존감’ 등의 저서가 있다.
-정신과 의사가 된 계기는.
“형제가 많은 집안에서 태어나 열등감이 많았어요. 아버지뻘 되는 형님들은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자기 방도 갖고 있었어요. 그런 환경 속에서 커야 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대머리 콤플렉스’가 있었다고.
“한때 그랬지요(웃음). 자식 중 저만 아버지에게 물려받았어요.”
이 교수는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정신분석을 받는 과정에서 이 콤플렉스로부터 해방됐다. 어머니에게 구박 받던 아버지에게도 긍정적인 면이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 벗겨진 이마가 멋져보였다는 것이다.
-정신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은.
“마음관리를 잘 해야 합니다. 다른 말로 정신 에너지의 관리입니다. 차가 움직이려면 휘발유가 있어야 하듯이 뇌도 에너지가 있어야 해요.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것이 빠져나가요. 에너지가 결핍되면 기억력이 떨어지거나 의욕이 없어지고 짜증이 납니다. 마음관리를 잘 하는 사람은 스스로 마음의 대답을 들어요. 예를 들어 ‘그 친구가 네 속을 뒤집어놓았잖아’, ‘아, 그래서 그렇구나’하고 스스로에게 묻고 원인을 알고 나면 에너지가 되돌아옵니다.”
-교회 장로이다. 종교는 노인에게 좋은 건가.
“장로에서 은퇴했어요. 제 은사인 외과의사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어요.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행동이 너무나 달랐다는 얘기입니다. 한 사람은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왜 좋은 약을 주지 않느냐’고 불평하고, 다른 환자는 편안하게 웃으며 사람을 보면 인사하고 그래요. ‘하나님을 믿는 환자는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어 저렇게 편할 수가 있구나’라는 사실을 알고 믿게 됐다고 해요.”
-기억에 남는 노인 환자는.
“택시회사를 경영하던 70대 할머니가 치매 증상을 보여 아들‧며느리와 함께 저를 찾아왔어요. 할머니 회사에 노조가 막 생겼을 때였어요. 산골에서 가난하게 살던 조카를 데려다 공부시키고 일 가르쳐 회사의 요직에 앉혀놨더니 조카가 노조 협상 자리에서 ‘말 함부로 하지 말라’는 식으로 대응해 할머니에게 큰 상처를 주었어요. 은공을 모르는 조카에 대한 울분으로 잠을 못자고 우울증이 온 겁니다. 간단한 검사를 해보니 치매가 아니라 우울증이었어요. 그 사실을 말하는 순간 제 눈과 고개를 드는 할머니의 눈이 서로 마주쳤어요. 그분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고 치료를 해 이제는 회복이 됐고 아들에게 물려줬던 회사도 도로 찾아 잘 운영하고 있답니다.”
글‧사진=오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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