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지금 요동 중
미국은 지금 요동 중
  • 엄을순 문화미래 이프 대표
  • 승인 2017.02.03 13:10
  • 호수 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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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미국에 간 김에 오래전 샌프란시스코로 이민을 가서 잘 살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 약속 장소인 스타벅스 커피 전문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얼마나 많이 넣었던지 크림치즈가 밖으로 삐져나와 범벅이 된 베이글을 베어 먹고 있는 낯익고 반가운 얼굴. 바로 그 옆자리엔 웬 멋진 젊은 여자가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딸이었다.
힐러리가 나왔다는 명문여대를 나오고 스탠포드 박사학위까지 받은 후에 모 명문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라는데 그곳에서 태어난 탓인가. 영어를 구사하는 능력도 완벽하고 한국인 치고는 팔다리도 길고 이목구비 또한 큼직큼직해서 미국사람들 틈에 있어도 전혀 낯설게 보이지 않았던 그녀. 그런 그녀도 미국에서 이방인 같은 느낌이 자주 든다고 했다.
방금 전에도, 중년의 한 백인여자가 친한 척을 하며 웃으면서 다가와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하며 묻기에 “바로 윗동네에서 왔어요. 당신은 어느 나라에서 왔는데요?”하며 되물었더니 머쓱해 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이 나라가 이민 온 사람들로 만들어진 국가잖아요. 그런데도 자기(백인)들이 미국 주인인 줄 알아요. 기분 나쁘게”라며 투덜댄다.
과거 미국에서 살던 시절, 나도 그런 차별을 받아본 경험이 많다.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묻기에 코리아라고 하면, 자기도 ‘미스 김’이라는 한국인을 잘 안다면서 ‘크리닝 레이디’(청소도우미)인데 너무 착하고 친절하고 부지런하고 말도 잘 들었다고 한다. 뭐 다 이런 식이다. 생전 처음 본 사람에게 갑자기 그런 말을 듣게 되면 기분 참 묘해진다.
몸이 움츠러들면서 주눅 드는 것이 마치 주인에게 칭찬받는 종업원이 된 느낌이랄까. 가끔은 청소도우미가 세탁소 아줌마, 음식점 종업원 등으로 바뀔 뿐 사전에 기획된 듯한 비아냥거림을 심심치 않게 듣고 살았다.
똑똑한 아시아인들이 많아져서 그런가, 아님 우리의 ‘삼성’과 ‘엘지’가 그들의 ‘월풀’과 ‘GE’를 앞서서 그런가. 배운 것도 가진 것도 별로 없는 백인일수록 아시아인에 대한 질투심은 더욱더 크다.
요즘은 그 질투심이 슬슬 미움으로 변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대선에서 힐러리를 제치고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이유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오래된 빈부격차로 인해 늘어만 가는 미국 중산층과 하층민들. 그들이야말로 ‘America First’(미국우선주의)를 외치던 트럼프를 당선시킨 일등 공신이 아닐까.
트럼프 당선이후 걱정이 많이 들었었다. 그래도 수락연설에서 ‘통합과 미래’를 강조하기에 그나마 한숨 돌리고 있었는데. 웬걸, 드디어 일이 터져버린 것이다. 취임과 동시에 멕시코 국경에 만리장성과도 같은 길고 긴 장벽을 설치하는 행정명령을 시작으로 이민과 난민, 무슬림의 입국 금지, 급기야는 테러위험을 이유로 중동과 북아프리카 7개국 국민에 대해 미국 입국과 비자를 일시 중단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를 거부했던 법무장관 대행을 해임까지 시키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계속 강경대응 중에 있다. ‘비헌법적이고 비미국적이며 부도덕하다’며 세계 각국에 나가있는 외교관들은 연판장을 돌리며 집단행동에 돌입했고, 오바마 전 대통령도 퇴임 후 낸 첫 성명에서 ‘미국의 가치가 위태로워졌다’면서 신념과 종교를 이유로 개인을 차별하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며 가세하고 있다. 심지어는 반 이민조치에 반발해 눈물까지 흘린 야당 원내대표도 있었다.
하지만 이같은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경제에서 안보까지 모든 것을 ‘오로지 미국의 이익’에만 입각해 판단하고 결정하겠다며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있는 트럼프. 사실 미국은 ‘아메리칸 인디언 원주민’을 빼고는 전 세계에서 모여든 다양한 인종들과 그 후손들, 즉 이민자들로 이뤄진 국가이다. 그래서 미국을 흔히들 ‘인종의 Melting Pot(용광로)’라고도 한다. 그러기에 무엇보다도 강력하게 인종차별을 금하고 있었다. 적어도 얼마 전까지는 말이다.
누구든지 와서 뿌리내리고 열심히만 살면 시민권을 받아 당당한 시민이 될 수 있고, 모든 면에서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나라이며 자유와 평등, 기회의 나라.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던 나라. 품이 크고 넓었기에 위대한 나라였던 그 미국이 지금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다. 그나저나. 우리나라는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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