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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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이기영 시인
  • 승인 2017.02.03 13:13
  • 호수 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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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을 음미하는 디카시 산책

자리

내가
앉았던 자리
누군가의 발자국이
지나간 자리

안태운(수필가)

**

내가 잠시 앉았던 자리에 누군가 와서 발자국을 남겨놓고 가버렸다. 흰 눈이 없었다면 그 사람의 족적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 왔었다는 흔적을 남기도록 눈이 온 것일까. 눈이 와서 누군가 온 것일까. 아슬아슬한 자리에 검은 발자국만 남기고 가버린 사람이 화인처럼 내 심장 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나리면 // 먼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라고 ‘설야’에서 시인은 노래했지만 눈 오는 밤 홀로 걸어갔을 어느 외로운 한 사람을 위해 눈은 저리 환하게 눈부시게 내렸으리라. 눈송이 하나는 너무나 미약해서 금방 녹아버리고 바람에 흩날리지만 쌓이고 쌓이면 딴 세상이 된다. 우리, 저 때 묻지 않은 순백의 세상으로 낱낱의 족적을 남기며 걸어가자. 내가 앉았던 자리에 이제 네가 와 다오.
글=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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