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형 환자에게 A형 혈액 수혈… “아직도 이런 일이…”
B형 환자에게 A형 혈액 수혈… “아직도 이런 일이…”
  • 배지영 기자
  • 승인 2017.02.03 13:31
  • 호수 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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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환자 목숨 빼앗는 사고… 수혈관리 문제 없나
▲ 환자에게 다른 혈액형의 혈액을 수혈하는 등의 수혈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어 수혈관리정책에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수혈이 필요한 환자들을 위해 헌혈을 하고 있는 모습.

의료진 2명, 수술 전 혈액 비교해야… 인력 부족 이유로 잘 안 지켜
헌혈금지약물 복용 여부 알기 어려워… 헌혈 전 약리적 검사 필요

지난해 9월 부산의 한 종합병원에서 인공관절수술 중 수혈을 받던 진 모 어르신(77)이 중태에 빠졌다. 혈액을 잘못 수혈 받았기 때문이다. 진 어르신은 B형이었지만 수술 도중 의료진의 실수로 A형 혈액 200cc를 잘못 수혈 받은 것이 원인이었다. 진 어르신은 사고 이후 수차례 전신 투석 등 집중 치료를 받아 상태가 호전되는가 싶었지만 콩팥과 췌장, 대장 등에 다발성 장기 손상을 입어 4개월 뒤 사망했다.
이같은 일이 벌어진 데에는 의료진의 부주의가 컸다. 보통 수술에 사용할 혈액은 냉장고에 따로 보관하는데 진 어르신의 수술 차례에 간호사가 실수로 다른 환자의 혈액을 수술실에 가져갔기 때문이다. 다른 간호사와 마취과 의사, 집도의 등이 수술실에 있었지만 누구도 그 실수를 확인하지 못했다. 결국 2시간가량 걸린 수술이 끝나고 다음 수술을 준비하기 위해 간호사가 혈액 냉장고를 열어 본 후에야 실수를 알아차렸다.
수혈의 기본 원칙은 같은 형의 혈액을 수혈 받는 것이다. 만일 자신의 혈액형과 맞지 않은 혈액을 수혈 받게 되면 적혈구들이 모두 응집돼 적혈구의 덩어리들이 모세혈관을 막아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이것은 의료진이 모를 리 없는 기본 상식이다. 하지만 혹여 실수로 이 기본을 지키지 않는다면 진 어르신처럼 환자는 죽음의 기로에 서게 된다.

◇수혈 전 혈액 비교 필수
보건당국은 이같은 수혈 사고를 막기 위해 지난 2009년 수혈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전국 병원에 배포한 바 있다. 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 혈액관리위원회가 공동으로 제작한 이 가이드라인에는 수혈 여부 결정 방법, 수혈 시 확인사항, 수혈 부작용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 중 수혈 전 확인사항을 살펴보면 혈액양과 색깔, 혈액 용기의 파손 여부는 물론 환자의 이름과 등록번호, 혈액형(ABO, RhD) 등을 의료진 2명이 비교하라고 정하고 있다. 수혈할 땐 환자의 혈액과 혈액 제공자의 혈액이 적합한지를 조사하기 위해 교차시험을 한 후 그 결과가 혈액제제에 붙게 되어 있는데, 의료진 2명이 환자 곁에서 혈액에 적힌 사항과 환자의 정보를 소리내서 비교해야 한다. 예컨대 이번에 발생한 의료사고에서도 “B형 RH+, 진OO 환자 B형 RH+”를 의료진 2명이 소리내 확인했어야만 했다.
유영진 대한수혈대체학회 이사는 “현재 대부분의 대형병원들은 혈액에 환자의 이름 라벨까지도 다 출력해서 부착을 한다”며 “이 외에도 간호사들이 2, 3중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서 안전하게 수혈하게 돼 있는데 이 병원은 이같은 과정을 거치지 않고 수술실에서 수혈을 해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난 걸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사고를 막기 위한 안전망은 더 있다. 수혈을 시작한 이후에는 5~15분간 환자를 관찰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15분 이내엔 최소 한 번 활력징후를 측정해 기록하고, 수혈이 완료될 때까지 환자 상태를 주기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또한 수혈을 마치고 나서 또 한 번 환자의 성명, 혈액형, 혈액번호를 확인하고 의무기록에 수혈경과를 기록해야 한다. 하지만 일선 병원에서는 이 원칙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유 이사는 “수혈 가이드라인을 병원들이 제대로 지킨다면 감염 사태라던가, 주사기 바늘 재사용 등의 문제점을 모두 예방할 수 있는데 이를 따르지 않으면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며 “이같은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평소 매뉴얼을 정확히 지키는 것과 더불어 간호사 등 병원인력 부족 사태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실수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업무량이 많아지고 의료진들 본인이 치료해야 되는 환자 수가 늘어나면 실수를 할 가능성이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환자 안전을 위해서는 의료 인력을 충분히 수급을 할 수 있는 시스템, 그래서 수술을 한다고 하면 수술실에 최소한 몇 명의 간호사나 의사가 있어야 된다는 규정이 좀 더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헌혈금지약물 수혈 받아도 환자는 몰라
헌혈금지약물 복용 여부를 신속히 파악해 환자 수혈을 차단하고, 만일 헌혈금지약물 복용자가 헌혈한 혈액이 수혈됐을 경우 환자에 대한 각별한 안전관리를 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현재 일반적인 헌혈은 만 69세까지 가능하고, 혈소판성분 헌혈과 혈소판혈장성분 헌혈은 만 59세까지로 제한돼 있다.
보건당국은 현재 또는 과거 복용한 약이 수혈자의 태아 기형 등 부작용을 발생시킬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면 ‘헌혈금지약물’로 규정하고 있다. 여드름치료제(이소트레티노인), 전립선비대증치료제(두타스테라이드‧피나스테라이드) 등이 그 예다.
헌혈금지약물 복용 여부는 채혈 전 문진으로 확인하고 있지만, 문진 시 헌혈자가 기억이 안 나거나 제대로 기입하지 않은 경우 적십자사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방부, 질병관리본부 등에서 처방정보를 받아 해당 혈액제제의 출고를 막고 있다.
그러나 이미 사용된 문제 혈액이 언제, 어떤 환자에게 사용됐는지에 대해서 적십자사는 아무런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 이는 의료기관이 알려주지 않기 때문인데, 문제혈액 수혈사실을 환자에게도 통보할 의무가 없어 문제혈액 수혈 환자는 태아 기형이나 B형 간염 발병의 원인을 모른 채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발병에 따른 고통과 비용에 대한 책임을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는 실정이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회장은 “현재 에이즈 환자 혈액의 수혈을 방지하기 위해 핵산증폭검사를 실시하고 있지만, 헌혈금지약물에 대한 검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어 수혈사고의 가능성이 항상 있다”며 “안전한 수혈을 위해서는 헌혈금지약물 주성분에 대한 약리적 검사를 통해 사전적인 점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배지영 기자 jybae@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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