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차를 팝니다
꽃차를 팝니다
  •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 승인 2017.02.10 14:18
  • 호수 5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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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학기 대학원 노인복지론 과제로 학생들에게 ‘중장년기 인생전환’의 사례를 조사해서 보고하게 했다. 앞으로 그중 모범적인 사례 몇 개를 소개하고자 한다.
58세의 진순이 씨는 오남매의 장녀로서 낮에는 직장에 다니면서 동생들의 학비와 생활비를 벌고 밤에는 야간학교를 다녔던 소녀였다. 스물세 살에 결혼해 열심히 살았으나 남편의 의류사업이 부진해지고 시어머니의 치매까지 떠안게 되면서 그녀는 커다란 상실감에 빠지게 됐다. 상황은 자꾸 나빠져 가고 건강마저 잃어버릴 지경이던 어느 날 그녀는 불현듯 ‘늦었지만 이제라도 나를 위한 삶을 살아보자’ 라는 결심을 하게 됐다.
예전부터 배움에 목말라 했던 그녀는 51세가 되던 해에 대학에 입학해 사회복지학과 아동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없는 살림에 대학을 다니자니 남편 보기가 미안해서 늦게까지 남편 일을 도우랴, 살림하랴, 숙제하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를 정도였다. 치매를 앓던 시어머니는 집에서 돌봐드리는 게 너무 힘들어져서 노인병원에 입원시키게 됐으나, 회생을 꿈꾸며 남편과 함께 고생하면서 꾸려오던 의류사업은 결국 문을 닫게 되었다.
게다가 소송으로 빚더미까지 안게 되면서 그녀의 남편은 술로 소일하고 건강도 나빠지게 됐다. 서울 생활이 힘들고 달리 대책이 서질 않자 하는 수 없이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으로 낙향하게 됐다. 그 후 생전 해보지 않던 농사 일, 등산객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 일도 해봤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손발이 잘린 듯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 어느 날 밤, 그녀는 인터넷을 뒤지던 중 우연히 남부여성발전센터에서 무료로 실시하는 발효교육을 보게 됐다. 원래 요리에 관심이 좀 있었던지라 발효교육장을 찾아간 그녀는 그 곳에서 꽃차 만드는 법을 교육하는 선생님을 만나게 됐다.
꽃차의 강한 매력에 빠져든 그녀는 그 후 홀린 듯 꽃차에 대해 배우면서 꽃차를 만들어서 집으로 가져오는 날은 더할 수 없이 행복한 순간이 되곤 했다. 꽃은 보기만 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눈으로는 화려함을 즐기고, 코로는 그윽한 향을 즐기며, 입으로는 다양하고 순수한 맛을 즐기고, 몸으로는 자연의 건강함을 만끽하면서, 오감을 통해 꽃차를 느끼고 마시면 몸과 마음이 참으로 편안해지는 것을 느끼게 됐다.
그러나 꽃차 배우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꽃을 재배하는 환경이나 꽃의 생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실수도 많이 했다. 갑작스레 추워진 가을 날씨에 국화꽃이 얼어버리기도 했고, 제초제를 치지 않는 식용 꽃이라 일일이 풀을 뽑고 벌레를 잡아줘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었다. 그런 어려움에 부딪칠 때마다 그녀는 꽃에 대한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게 됐고 어떻게 하면 꽃차의 맛과 향을 더 잘 낼 수 있을까 연구와 실험을 거듭하게 됐다. 오랜 시련을 거친 후 그녀는 꽃차 강의 보조교사가 되어 꽃차 홍보와 시음회에 동참할 수 있게 됐다. 그러다가 가평 인근의 복지관이나 요양원, 혹은 교회에서 어르신들에게 꽃차를 대접하고 꽃차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일이 SNS와 입소문을 타게 됐다. 그녀는 이제 “내 제2의 인생은 꽃과 함께 해도 되겠구나”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드디어 그녀를 꽃처럼 피어날 수 있게 해준 기회가 찾아왔다. 꽃차 스승이 시흥시청에서 주관하는 15주간의 꽃차 강의 기회를 그녀에게 준 것이다. 떨리기도 했지만 아들의 도움을 받아 PPT 영상까지 만들어 강의에 임했다. 첫 강의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몰렸고, 꽃차에 대해 배우고자 하는 열기로 가득 찬 강의실에서 더듬더듬 거리면서 첫 강의를 시작했다. 그녀의 강의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 노트에 받아 적는 사람, 심지어 강의하는 모습을 촬영하는 사람들까지…. 그녀의 강의가 유튜브에 오르게 되고 그것이 촉매가 되어 더 많은 강의 요청이 들어오게 됐다. 여러 사람 앞에 서야 하기 때문에 옷차림이나 외모도 신경 쓰고 두서없이 하던 강의 내용도 점점 다듬어져 갔다.
현재 진순이(가평 꽃차문화원 원장)씨는 1600여 평의 땅에 꽃을 재배하고 인터넷을 통해서 꽃차도 판매하지만 재능기부 차원에서 무료 강의도 하고 있다. 집 옆에 아담한 교육장을 만들어 초등학교와 연계해 부모와 아이가 함께 꽃차와 관련된 체험을 하게 하는데, 이것을 발전시켜 ‘꽃차 아카데미’를 계획하고 있다.
꽃차를 처음 만들 때만 해도 그녀의 남편은 무관심 반, 핀잔 반이었으나 꽃차를 통해 작게나마 수입이 생겨나는 것을 보며 변화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최고의 협력자가 됐다. 당뇨와 고혈압을 앓았던 남편이 이젠 꽃 돌보미로 변해 건강도 좋아졌고 생활에 활력도 생기게 됐으니 꽃차가 그 가정에 꽃만큼이나 아름다운 축복을 가져다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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