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음미하는 디카시 산책
환한 나무
안개 벗겨낸 바람
바람 벗겨낸 햇살
햇살 벗겨낸 나무
나무 벗겨낸 시선
최정호(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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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인지 저녁인지 분간할 수 없는 안개 자욱한 강이다. 안개는 모든 것을 지우고 불안을 증폭시킨다. 바람이 불고 이 세계가 흩어지는 풍경 앞에서 제 모습을 지키며 홀로 맞선 나무다. 왼쪽 어깨 위에서부터 해의 기운이 감지된다. 그리고 나무를 바라보고 있는 한 사람. 안개가 만들어낸 풍경이 풍경을 무너뜨리고 이 모든 것을 관통한다. 불안하면서도 불길하고 적막하면서도 어수선한 이 풍경, 연민이라 하자. 가여운 것들을 쓰다듬는 시선이 점차 따뜻한 손길로 바뀌고 마침내 모든 잿빛을 걷어내면 더 없이 환하고 따뜻하고 싱싱한 시간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풍경이 사람으로 피어나고 사람이 있어 한층 따뜻하고 살만한 세상이 되기를. 바람은 바람의 모습으로, 햇살은 햇살의 모습으로, 나무는 나무대로 한데 어우러져 하나의 풍경으로 아름답기를…
글=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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