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와 소재 가리지 않았던 유럽인들의 ‘스승’
장르와 소재 가리지 않았던 유럽인들의 ‘스승’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7.02.10 15:05
  • 호수 5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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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이응노미술관 ‘돌, 나무, 종이’ 전
▲ 이번 전시에선 프랑스에 파리동양미술학교를 세워 서예·수묵화 등을 가르치며 유럽에 동양미술을 알렸던 이응노 화백이 돌, 나무, 종이 등 다양한 재료를 통해 선보였던 미술 작품들을 소개한다. 사진은 그의 대표작 '마스크'(1965)

57세 때 프랑스 진출… 파리에 동양미술학교 세워 서예‧수묵화 등 전파
종이 부조로 얼굴 표현한 ‘마스크’, 나무조각으로 만든 ‘마천루’ 등 볼만

1964년 프랑스 파리의 세르누쉬미술관 내에 문을 연 파리동양미술학교. 이곳은 유럽에 설립된 최초의 동양미술 교육기관으로 서예와 수묵화·풍경화 등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며 유럽에 동양미술을 알렸다. 이 학교의 설립자 이응노(1904~1989) 화백은 제자들에게 동양화를 기초로 한 창작활동을 이끌어내며 ‘에꼴 드 이응노’(이응노 학파)라 불리는 수천명의 후학을 양성했다. 현재까지도 그의 제자들은 유럽 곳곳에서 활동하며 동양미술과 그의 철학을 알리고 있다.
‘유럽에 동양미술의 아름다움을 알리는데 큰 공헌을 한 이응노 화백의 작품을 재조명하는 ‘돌, 나무, 종이’ 전이 대전 이응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오는 3월 26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에서는 종이, 나무, 섬유, 돌, 세라믹 등 재료의 성질을 잘 활용했던 이 화백의 예술세계를 엿볼 수 있다. 특히 1965년작 ‘마스크’와 1963년 문자 추상 회화 ‘옥중에서’를 대중에게 처음으로 공개한다.
1924년 제3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동양화 ‘청죽’으로 입선하며 화단에 등장한 이 화백은 장르와 소재를 넘나드는 끊임없는 실험을 통해 전통성과 현대성을 함께 아우른 독창적인 창작세계를 구축하며 한국미술사에 새로운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1960년 57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에 진출하면서 더 큰 빛을 발했다. 당시 유럽을 휩쓸던 추상 미술을 받아들여 자신의 방식으로 풀어냈다. 먹이나 물감 이외에 천이나 한지 등의 재료들을 캔버스에 붙여 만든 콜라주 등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인 것이다.
이후 파리 화단의 앵포르멜(추상표현주의 미술, Informel)을 주도했던 폴 파케티 화랑과 전속계약을 맺고 1962년 첫 개인전을 열었고, 1963년 살롱도톤 전에 출품하면서 유럽 화단에 이름을 알렸다. 1965년 제8회 상파울로 비엔날레에서는 명예대상을 받으며 유럽을 넘어 세계 미술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재료별로 4개의 섹션으로 구성해 이 화백이 여러 재료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각 재료의 특징을 어떻게 부각시켰는지를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먼저 1전시실에서는 종이를 이용한 이 화백의 작품을 소개한다. 이 화백은 그림 외에도 종이의 질감을 활용한 작품을 1960년대부터 선보여 왔다. 잡지‧신문‧한지를 구기고 찢어 붙인 뒤 그 위에 살짝 색채를 덧붙였던 ‘종이 콜라주’ 시리즈와 종이의 불규칙하게 찢어진 단면, 구겨진 표면과 굴곡, 눌리거나 접힌 단면 등을 활용한 부조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마스크’ (1965)다. 종이를 풀에 개어 만든 일그러진 얼굴 형태의 부조를 나무판에 붙인 작품으로 인간 내면에 잠재된 격앙된 감정과 공포감을 표현하고 있다.
이 화백은 1980년대 프랑스 국립 세브르 도자공장과의 협업을 통해 접시를 비롯한 많은 세라믹 작품을 남겼다.
2전시실에선 이 당시 그의 손길이 닿은 작품들을 공개한다. 세라믹은 차가운 표면과 매끈한 질감을 가진 딱딱한 물질이지만 불에 굽기 전 작가가 흙으로 빚은 부드러운 형상을 그대로 간직한다. ‘구상’을 비롯한 세라믹 작품에서는 이렇게 탄생한 기하학적 형상의 신비로움을 엿볼 수 있다.
3전시실에서는 1960~70년대 제작한 목조 작품이 내걸렸다. 그는 잘린 나무토막을 그대로 활용하거나, 최소한의 가공으로 목재의 특징을 그대로 활용한 작품을 남겼다. 1974년 제작한 ‘마천루’가 이를 잘 보여준다. 잘게 자른 나무 조각들로 고층빌딩이 줄지어 늘어선 모습을 표현한 이 작품은 나무의 거친 질감을 잘 활용해 도시의 삭막함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공간에서는 돌을 재료로 삼은 작품을 볼 수 있다. 이 화백은 1955년 경주 여행에서 ‘금강역사’ 등 신라시대의 불교조각을 접하고 큰 감명을 받는다. 다루기 힘든 돌을 가지고 토실토실한 살과 따뜻한 체온을 가진 인체를 조각해낸 신라인들의 솜씨에 감명 받은 이 화백은 유럽으로 건너간 후에 본격적으로 석조 작품을 선보인다. 깎거나 쪼아 형상을 만들기보다는 원형을 보전하며 그 표면에 색을 칠하거나 문양을 새겨 넣는 기법을 활용했다. 이중 ‘구성’(1976)을 눈여겨볼 만하다. 돌덩어리에 갑골문자를 새긴 작품으로 고대 비석을 연상시킨다. 최소한의 손길만 가해 오래된 비석에서 풍기는 숭고함이 느껴지게 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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