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이 동‧서문명의 뿌리” VS “터무니없는 ‘위서’”
“한민족이 동‧서문명의 뿌리” VS “터무니없는 ‘위서’”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7.02.17 14:24
  • 호수 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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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를 둘러싼 논쟁들 <3> 상고사 다룬 ‘환단고기’ 진위 논란
▲ 한 출판사에서 발간한 다양한 환단고기 관련 서적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행사장에 이 책들이 자주 등장해 관심을 끌곤 한다.

계연수가 1911년 편찬한 책… 고조선 이전 환국‧배달 존재했다고 기록
근대 용어 사용 등 가짜 논쟁 휘말려… 일부 내용 천문학으로 증명되기도

일제강점기 초기인 1911년, 사학자 계연수(미상~1920)는 한반도 전역과 만주를 오가며 여러 문중과 민간에 은밀히 전해내려오던 사서(史書)들을 찾아내 책 한권을 집필한다. 이 책은 신라의 승려 안함로, 고려의 문신 이암 등이 각기 집필한 우리 고대사 다섯 권을 한데 묶어낸 역사서로 고대 역사·신앙·풍습·예술·정치 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1920년 사망한 계연수는 제자인 민족운동가 이유립(1904~1986)에게 다음 경신년(1980)에 책을 공개하라는 유언을 남긴다. 그의 유언대로 고조선 등 상고사를 다룬 ‘환단고기’(桓檀古記)는 1980년대에 공개됐고 국내 사학계를 발칵 뒤집었다.
일본어판으로 먼저 출간된 이 책은 한민족이 동서양의 뿌리라는 파격적인 내용을 담아 나오자마자 주목을 끌었으나 기존학계에선 일찌감치 ‘위서’(僞書)로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최근 국정교과서 논란으로 인해 재조명받고 있다.
지난해 11월 공개된 국정교과서가 집필과정에서 상고사 부문에 환단고기를 다룰 것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이 책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가 높아졌다. 최종적으로는 거론되지 않았지만 공개 이후 3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갑론을박을 일으킬 만큼 책에 대한 진서‧위서 논란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또한 관련 책들이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행사장에 자주 등장해 대중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환단고기는 신라의 승려인 안함로(安含老)와 행적이 확실치 않은 원동중이 쓴 것을 각각 상권과 하권으로 구분해 합친 ‘삼성기’(三聖記), 고려시대 학자 이암이 고조선의 역사를 다룬 ‘단군세기’(檀君世記), 고려말의 학자인 범장이 고구려의 건국 이전을 기록한 북부여기(北夫餘記), 조선 중종 때 학자 이맥이 환국부터 고려시대까지를 망라한 태백일사(太白一史) 등으로 구성됐다.
책은 기존의 통설을 뒤집어 우리 역사를 반만년이 아닌 9000년이라고 말한다. 한민족의 시작을 고조선 건국(BC 2333)이 아닌 환국(BC 7197)으로 보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기원을 ‘삼성조’ 시대로 보고, 이 시대를 환국(BC 7197∼3897), 배달(BC 3897∼2333), 고조선(BC 2333∼238)으로 나누고 있다. 이후 역사는 ‘북부여’→‘고구려’→‘발해’→‘고려’→‘조선’→‘대한민국 임시정부’→‘대한민국’으로 시대를 구분하고 있다.
특히 논란이 되는 부분은 사료가 많이 남아 있지 않아 검증이 어려운 환국과 배달 부분이다. 책은 환국에서 뻗어나간 문화가 동서양의 근간이 돼 4대 문명을 형성했다고 기술하고 중국의 신(神)으로 알려진 태호복희씨, 염제신농씨. 헌원과 치우천황 등이 배달 시대 인물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환국에 이어 등장한 이 부분은 동북공정을 주장하는 중국학자들로부터 고조선의 역사는 터무니없다는 증거로도 사용되면서 주류 사학계를 공분케 했다.
이로 인해 책은 출간 이후부터 터무니없는 내용으로 채워진 위서라는 주장과 실제 사실을 기록한 보존해야 할 진서라는 주장이 계속 대립해왔다.
위서라고 주장하는 쪽은 먼저 출간 과정에 문제를 제기한다. 계연수가 간행한 원본이 한 권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증거로 내민 것. 이를 근거로 위서론자들은 환단고기를 이유립의 창작물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진서론자들은 원본은 분실했지만 1949년 제작한 필사본이 있고 이를 바탕으로 출간된 책이기에 진짜라고 강조한다.
또 위서론자들은 계연수가 ‘수안 계’씨 족보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그가 가공의 인물이라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진서론자들은 수안 계씨 종친회를 내세워 북한 출신 종친들 중 족보에서 누락된 사람이 많고 독립운동을 하다 후손이 끊겨 족보에 오르지 못한 것이라 반박하고 있다.
또한 위서론자들은 자유·평등·인류·세계·원시국가·문화·문명·개화·헌법 등 근대 용어가 쓰인 것을 이유로 ‘환단고기’를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가들이 민족주의를 고양하기 위해 꾸며낸 책이라 주장한다. 이에 대해 진서론자들은 계승되는 가정에서 가필(加筆)과 보정 작업을 거쳐 시대에 맞는 용어를 사용한 것일 뿐 핵심 내용은 진짜라고 맞서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위서론자들은 삼신‧삼신일체·영혼 등 기독교 용어와 유사한 말들이 나오는 것을 바탕으로 국내에 기독교가 들어온 이후에 날조된 책이라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서 진서론자들은 삼신과 삼신일체는 한민족 등장 이후 우리 고유의 언어이며 기독교 용어(삼위일체)와 혼돈하는 것은 상고사를 바르게 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여기에 더해 1993년 당시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 교수가 ‘환단고기’에 기록된, BC 1733년 발생한 오성취루현상(수성‧금성‧화성‧목성‧토성이 일렬로 늘어서는 현상)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증명하면서 논쟁에 불을 붙인다. 이후 진서론자들은 250년에 한 번 나타나는 현상을 당시 지식수준으로 계연수가 알 수 없다며 적극적으로 진서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여전히 양쪽의 주장을 입증할 수 있는 사료가 많지 않아 진위 논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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