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 없이 75명의 전우 구한 2차대전 영웅 그려
무기 없이 75명의 전우 구한 2차대전 영웅 그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7.02.17 14:25
  • 호수 5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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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핵소 고지’
▲ 작품은 종교적 신념에 따라 집총을 거부한 채 2차대전에 참여해 75명의 전우를 구한 데스몬드 도스의 실화를 그린다. 2월 27일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등 주요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사진은 영화 속 한 장면.

‘양심적 집총 거부자’로 미군최고훈장 받은 ‘데스몬드 도스’ 실화 다뤄
“이웃을 사랑하라”는 신념 지키며 동료 구하는 주인공 활약 큰 감동

“제가 어떡하길 원하시나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5년 일본 오키나와의 핵소 고지. 미군 의무병 ‘데스몬드 도스’는 나지막이 기도를 드린다. 고지 탈환에 나섰다가 일본군의 위세에 밀려 패색이 짙어지자 지휘관이 퇴각을 명령한 상태. 하지만 전장에는 부상자들의 비명이 난무했다. 여전히 포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도스는 마침내 결단을 내린다. 퇴각 대신 총도 없이 전장으로 뛰어든 것이다. 유일한 무기는 단 한 명이라도 더 구하겠다는 신념뿐이었지만 그는 수많은 동료를 살려내며 전쟁 영웅이 된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2차 세계대전의 영웅 ‘데스몬드 도스’의 실화를 다룬 영화 ‘핵소 고지’가 2월 22일 개봉한다. 배우 멜 깁슨이 10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이 작품은 제89회 아카데미 영화제(한국시간 2월 27일)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주요부문 후보에 올라 기대를 모으고 있다.
작품은 2차 세계대전 중 가장 치열했다는 ‘핵소 고지 전투’에 참전해 총·칼 한 자루 없이 75명의 동료를 구하고 미군 최고의 영예인 ‘명예의 훈장’(Medal of Honor)을 받은 실존 인물 ‘데스몬드 도스’의 이야기를 다룬다. 핵소 고지 전투는 1945년 4월 25일부터 5월 3일까지 일본 오키나와 마에다 고지에서 벌어진 전투를 말한다. 당시 미군은 마에다 고지 절벽을 기어올라 일본군과 싸웠는데 지하통로를 조성한 적의 신출귀몰한 전략에 말려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절벽 모양이 날카로운 톱과 같다고 해서 핵소 고지(Hacksaw Ridge)란 이름이 붙었다.
도스는 종교적인 신념에 따라 비폭력·비무장주의를 고수했고 유탄이 난무하는 전장에서도 끝끝내 집총을 거부했다. 제대 후 수십 년간 영화를 만들자는 제안이 쏟아졌지만 도스는 이를 모두 거절하다가 임종 직전에야 제작을 허락했고 그의 활약은 다시 빛을 보게 됐다.
영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는 ‘양심적 집총 거부자’인 그가 온갖 고초를 당하면서도 전쟁에 참여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후반부는 참혹했던 핵소 고지 전투에서 그의 초인적인 활약을 보여준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동료들을 잃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아버지를 둔 도스(앤드류 가필드 분)는 형제끼리 장난을 치다가 실수로 살인할 뻔한 사건을 겪은 뒤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을 삶의 중요한 이정표로 삼게 된다. 성장 후 우연히 차 사고를 당한 마을 주민을 구한 그는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는 일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 마을 간호사이자 후에 그의 아내가 되는 ‘도로시’를 만나 각종 의료지식을 배운 그는 조국을 지키고자 의무병으로 자원입대를 하게 된다.
우수한 성적으로 훈련을 이어가던 도스는 집총 훈련이 시작되면서 고난에 시달린다. 동료들에게 집단구타를 당하며 따돌림을 받고, 명령 불복종으로 상관의 협박에 시달리다 끝내 재판에 넘겨져 불명예제대와 징역형을 선고받기 직전까지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그의 진심은 통했고 도스는 홀로 무기 없이 전장에 투입된다.
영화는 중반 이후 전쟁의 참혹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총알과 포탄을 맞아 팔다리가 날아가고 목숨이 위태로워진 병사들을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특히 데스몬드의 시선으로 전쟁의 잔인함을 부각시킨다. 그리고 이 폐허의 현장에서 동료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도스의 모습은 큰 감동을 선사한다.
일본군에 쫓겨 후퇴하는 동료들을 뒤로 한 채 홀로 남아 “한 명만 더”, “한 명만 더”를 되뇌며 부상자들을 고지 아래로 내려 보내는 그의 활약은 이제껏 본 적 없는 특별한 전쟁 영웅의 모습을 보여준다. 고통을 호소하는 동료에게 농담을 건네며 지혈을 하고 진통제를 주사하는 초인적인 모습에 “동료가 죽어도 총을 들지 않을 것”이라 비난하던 동료들도 그를 가장 위대한 군인으로 추켜세운다.
작품은 전쟁의 참혹함 외에도 관객들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진다. 도스는 종교적 신념에 따른 ‘양심적 집총 거부자’이지만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또 다른 십계명을 실천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군에 입대한다. 반면 총을 들지 않는 군인을 인정하지 못하는 군대에선 그를 쫓아내려 한다. 이를 통해 영화는 각자의 신념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나약한 개인이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를 묻는다.
또한 도스와 일본군들의 엇갈린 태도 역시 주의를 끈다. ‘천황의 신민’으로서 융단 폭격에도 굴하지 않고 돌격하다가 패색이 짙어지자 할복을 마다 않는 일본군의 모습. 이와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목숨을 걸고 전우의 생명을 살리는 도스의 모습은 긴 여운을 남긴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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