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가요를 모독하지 마라!
옛 가요를 모독하지 마라!
  • 이동순 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
  • 승인 2017.02.24 14:28
  • 호수 5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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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참 야릇한 일도 겪게 됩니다. 아무 잘못도 없이 뜻밖에 꾸지람이나 질책을 당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이를 일컬어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하지요. 무슨 뚜렷한 잘못을 범하고 호통을 당한다면 그것은 마땅히 수긍해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과연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2017년 1월17일자 한겨레신문 사설을 보다가 소스라쳐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너무도 문화 파괴적이고 오만방자하며 집필자 개인의 치졸한 견해가 바탕이 된 논조(論調)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해당 사설제목은 “이재용 구하기 위해 흘러간 노래 틀고 있나” 입니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에 대한 첫 구속영장이 기각돼 구치소에서 풀려난 것을 두고 한겨레신문에서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현재 구속 재청구로 이재용 부회장은 수감돼 있다)
우리는 여기서 최근의 현실 문제를 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특정인의 석방명분으로 검찰이 상투적 명분과 수법을 쓰고 있다는 문맥속의 비판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여기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왜 비유의 도구로 ‘흘러간 노래’를 동원하고 있는 것입니까? 대체 ‘흘러간 노래’가 무슨 잘못을 그리 크게 했기에 사설의 집필자는 이런 방식의 서술을 하고 있단 말입니까? ‘흘러간 노래’로서는 참으로 억울하고 분통터질 노릇입니다.
필자는 ‘흘러간 노래’가 담겨 있는 고음반을 수집해 채록하고, 그 작품에 담겨 있는 역사성, 문학성, 예술성, 민중생활사적 특성까지 주의 깊게 관찰 분석하며 연구하는 일에 종사하는 대중음악사연구가입니다. 동일한 관심을 갖고 있는 학자들이 모여서 한국대중음악사연구회, 한국고음반연구회 등 학회까지 조직해서 자료수집 및 실증적 연구에 골몰하고 있지요. 이런 일에 종사하는 연구자들에게 이번 한겨레 사설의 논조는 가히 청천벽력이며 문화파괴적 망언이라 하겠습니다.
사설 본문에서는 “더는 낡은 레코드의 노래로 국민을 속이려 해서는 안 된다”고 하며 더 큰 실수를 펼치며, 집필자 개인의 관점빈곤 및 망발까지 드러내고 있네요. 이 사설을 집필한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의 한심하기 짝이 없는 비천한 관점을 우리는 혹독하게 문책하고자 합니다. ‘흘러간 노래’와 ‘낡은 레코드의 노래’가 왜 이렇게 사설집필자 개인의 비천한 관점과 해석으로 마구 유린되어 난도질당해야 합니까?
‘흘러간 노래’는 대개 지난 일제식민통치기와 6·25전쟁 시기를 거쳐 1980년대까지 제작 발표된 SP, 혹은 LP음반과 그에 담긴 가요작품을 일컫는 말입니다. 민족사에서 가장 힘겹고 고통스러웠던 시간을 통과해오는 동안 죽음과도 같은 시간을 묵묵히 견디며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 가장 커다란 힘이 바로 대중가요였던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신문사설의 집필자가 ‘흘러간 노래’와 ‘낡은 레코드의 노래’를 부정적 비유로 동원한 심리적 배경에는 대중가요의 상투성, 진부성, 저급성 따위를 환기시키기 위한 도구적 활용의도가 엿보입니다. 우리는 이런 관점에 대해서도 겸허하게 수용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한 경솔하고 무책임한 가요, 문화적 품격조차 갖추지 않은 가요는 실제로 부박하고 불안정하며 일정한 격조를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서양음악전공자들이나 일부지식인들이 대중음악에 대하여 그것은 저급이며 하등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우월자로서의 모멸적 편견을 갖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는 세월이 흘러 대중문화에 대한 시각이 많이 달라지고 이론적 바탕까지 갖춰서 ‘흘러간 노래’와 ‘낡은 레코드’를 바라보는 인식은 엄청난 변화를 이뤘습니다. 민족문화사의 소중한 자료로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관점은 이미 보편화된 지 오래입니다.
더 이상 ‘흘러간 노래’와 ‘낡은 레코드의 노래’를 모조리 싸잡아 한꺼번에 평가절하 하거나 깔보는 태도는 버려야 할 것입니다. 사설은 신문사의 의견이지 집필자 개인의 견해가 아닙니다. 이 때문에 집필자의 개인적 의도와 주관을 드러내는 것은 결코 있어선 안 될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장애인, 노동자, 농어촌, 도시영세민을 포함한 민중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창간됐다는 한겨레신문이 고난의 세월 속에서 바로 그들 서민대중의 진정한 벗이었던 ‘흘러간 노래’와 ‘낡은 레코드의 노래’를 이렇게 무참히 박살낼 수가 있단 말입니까? 대중문화에 대한 관점의 빈곤을 고스란히 보여준 한겨레신문의 한심한 작태에 대해 우리는 호된 질책과 추궁을 보내며 정중한 사과를 요구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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