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에 힘과 용기를 주는 ‘노가바’
백세시대에 힘과 용기를 주는 ‘노가바’
  • 이동순 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
  • 승인 2017.03.10 13:09
  • 호수 56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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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바’를 아십니까? 얼핏 낯설게 느껴지는 이 말은 ‘노래가사 바꿔 부르기’를 줄여서 쓴 것입니다. 그러니까 개사곡과 같은 뜻이지요. 이미 있던 노래에서 악곡은 원래대로 두고 가사만 바꾸어 부르는 현상인데요. 이것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출현했습니다.
전래민요 아리랑이 전국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것도 일종의 개사곡 버전입니다. 구한말 창가(唱歌)란 장르명칭으로 불렀던 노래들도 그 유래를 더듬어보면 유명한 외국곡조를 차용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전문적 경험이 필요한 작곡보다는 개사가 한결 수월했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며 개사곡 만들기는 유행처럼 펼쳐졌고, 이와 더불어 각종 공개행사에서 개사곡은 일상적으로 활용됐습니다.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비판, 풍자, 조롱 등이 노가바의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이 무렵부터 ‘노가바’는 하나의 확고한 문화현상으로 자리를 잡았고, 독립적 용어로 정착이 됐지요.
노가바의 형태는 매우 다양합니다.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기존가사의 패러디(parody) 방식인데 그 특성은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정치적 풍자와 해학, 익살, 모방 따위로 펼쳐졌습니다. 기존 형태나 의미를 그대로 계승하는 방식도 있었고, 완전히 별개가사를 붙여서 부르는 형태들도 있었습니다.
노가바는 이미 예전부터 민중들에게 노가바로 즐겨 활용이 되었는데요. 그 대표적인 사례는 ‘황성옛터’, ‘이별의 부산정거장’, ‘굳세어라 금순아’, ‘비 내리는 호남선’ 등의 옛 가요들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 개사곡 가운데 가장 흔하게 즐겨 불렀던 ‘이별의 부산정거장’(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 남인수 노래, 1953) 노래를 백세시대 노년기 삶의 건강성과 의욕고취로 담아내고 있는 재미있는 노가바 작품 하나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한 시대의 최고 절창(絶唱)이었던지라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이별 슬픈 부산정거장’으로 시작되는 원곡가사는 모르는 분들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이따금 부산역 플랫폼에 서서 열차를 기다리노라면 1950년대 초반, 이곳에서 들리던 증기기관차의 기적소리와 이별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떠나는 자와 보내는 자의 기막힌 이별 때문에 억장이 무너지고 가슴은 갈기갈기 찢어졌을 것입니다. 그 이후로 ‘이별의 부산정거장’ 노래는 대중들의 엄청난 사랑 속에 불후(不朽)의 애창곡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고,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도 노가바 형식으로 다양하게 활용돼 왔습니다.
주로 격동기의 생활고, 가족갈등과 해체, 극심한 경제위기와 취업난, 부패관료에 대한 비판과 풍자 따위의 주제들이 가장 흔했는데요. 오늘 우리가 함께 불러볼 노가바는 부드럽고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언어구사로 노년기 세대들에게 밝고 긍정적인 삶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어서 흥미롭습니다. 노래교실 같은 공간에서 즐겨 활용되는 노가바로 추정이 됩니다.
우리 인생 길지 않아요 명품으로 살아봅시다/ 남은 인생 나의 인생 멋지게 살아봅시다/ 한 많다 신세타령 하지를 말고/ 멋지게 사는 방법 찾아봅시다/ 인생은 즐겁습니다 여기저기 하하 호호호/ 내 나이가 정말 어때서/ 가기 전에 떠나기 전에 멋지게들 살다가보세/ 이래 사나 저래 사나 사는 건 매 한 가진데/ 한 많은 나이 탓은 우리가 왜 해/ 나이는 말 그대로 숫자뿐인데/ 인생은 길지 않아요 멋지게들 살아봅시다/ 우리네 멋진 인생을.
이 노가바 작품에서는 노년기 삶의 질을 고품격으로 향상시키는 근본적인 문제가 먼저 전제가 됩니다. 이와 더불어 소극적, 비관적, 패배주의적 나약한 자세를 버리고 낙관적, 낙천적 자세로 바꿔서 살아가라는 메시지가 가슴에 강렬하게 와 닿습니다. 노년기 삶에서 나이를 의식하지 말고 일부러 젊게 탄력적으로 살아가려는 자세는 얼마나 멋과 우아함이 느껴집니까? 전쟁의 시련 속에서 가족사의 참담한 아픔을 안고 항상 우울과 찌푸린 얼굴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1950년대 당시 서민들이 즐겨 부르던 노가바는 크나큰 위로와 격려, 해소효과를 안겨 주었습니다.
노가바에 젖어드는 순간 우울하고 수심에 가득하던 얼굴은 모두들 즉각 파안대소(破顔大笑)에다 가가대소(呵呵大笑)가 되었지요. 노래가 본디 마음의 상처를 쓰다듬고 본연의 상태로 회복시켜주는 치유(治癒) 기능을 지녔다 하거니와 노래 중에서도 민중들이 노가바 형식으로 즐기던 노래야말로 서민의 진정한 벗이었으며 매우 유용한 삶의 도구였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은 백세시대 식구들을 위해서 특별히 준비한 ‘이별의 부산정거장’ 노가바를 다정한 벗들과 함께 합창으로 크게 불러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힘들게 살아왔던 지난 세월의 가슴 아픈 기억들도 필시 바람 속으로 훨훨 날아가 버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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