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마는 밤거리를 헤매면서 미란이 모르는 세상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현마는 밤거리를 헤매면서 미란이 모르는 세상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 글=이효석 그림=이두호 화백
  • 승인 2017.03.17 13:30
  • 호수 56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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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장편소설 화분 <27>

“유쾌하다.……아직두 피아노 생각에 곰시락거리나.”
“혼자만 유쾌하지 나까지 유쾌한가요.”
“누가 술을 먹지 말랬나.”
“술두 그만두구 어서 피아노나 사 내요.”
“그렇게 수월하게 사 줄 줄 알구. ——고맙다는 인사를 톡톡히 받구야 사 줄 걸.”
“절이래두 하죠.”
“절쯤으로 되나.”
마음대로 목판의 찻그릇을 집어 두어 잔이나 식은 차를 따라서 켜고 나더니
“영화에서 왜 가끔 보는——아저씨에게 고맙다는 뜻을 표할 때 어떻게들 하더라.”
뚱딴지같은 소리를 한다.
“그 흉내를 내란 말이죠”
“아무렴.”
“껑층 뛰어오르면서 이마에다 입술을 갖다 대구——그렇게 하란 말이죠.”
“아무렴.”
“그게 청이에요?”
“너무두 적은 청이지.”
미란은 놀랄 것이 없었다. 긴한 듯이 찻집에서 말하기를 주저하던 청이 대체 무슨 청인가 했던 것이 겨우 그 정도의 것이라면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만한 청쯤 못 들을 것 있나요.”
“염량이 그만은 해야지. ——그럼 지금 들어줄 텐구.”
말을 듣고 현마의 얼굴을 바라볼 때 그 불그레한 얼굴에 별안간 구역이 나며 속이 뉘엿거리기 시작했다. 맑은 정신을 가질 때의 그는 부드럽고 정하고 착한 아저씨이던 것이 술이 들어가면 왜 그리도 추하고 무서워 보이는지 새로운 발견에 소름을 쳤다.
“지금은 안돼요. 취하신 얼굴엔 싫어요.”
“세상의 술 취한 아저씨는 인사를 못 받어 보겠네.”
“그러믄요. 술내 나는 얼굴에다 추접스럽잖어요.”
“요 말버릇 봐라.”
현마는 정색하면서 미란의 팔을 잡아 나꾼다.
“승낙한 이상 내 임의거든.”
미란은 겁을 먹으면서 손을 빼려고 애쓴다.
“안 돼요. 내일 아침 맑은 정신 때 해 드릴 게요.”
“이러긴가.”
“인사하는 사람의 맘이지 받는 사람의 맘인가요.”
“어디 보자. 제 청만 제 청이라구 남의 생각은 조금도 안 하구.”
손을 놓는 현마는 적이 불만스런 모양이다. 겸연쩍은지 남은 차를 마셔 버리고는 자리를 일어서는 것을 보면 미란은 미안한 생각도 나서 목소리를 누그려 본다.
“아저씨 대접을 깍듯이 해드리려니까 그렇죠.”
“그만둬.”
투덜투덜 나가는 등 뒤에다 한마디 더 던져 본다.
“내일 아침 잊지 않을 게요. 어서 편히 주무세요.”
그러나 자기 방에 들어가 자러 드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고 방에서 모자를 쓰고 나오더니 복도를 쿵쿵쿵 돌아 다시 밖으로 나가는 모양이었다. 또 술을 먹으러 나가는 것일까——내가 잘못한 것일까——이모저모 생각하면서 차차 잠을 이루어 갈 때 현마는 여관을 나와 밤거리를 헤매면서 미란이 모르는 세상——현마 같은 어른들만이 아는 밤 세상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집을 떠난 지 여러 날 만이었다. 미란과 같이 거동하게 되는 까닭에 하는 수 없는 노릇이었으나 그로서는 오랫동안 깨끗한 청교도의 생활을 하게 된 것을 오늘은 도리어 마음속으로 비웃어도 보며 터무니없는 투정질이나 하듯 화를 내면서 비틀비틀 처음 보는 골목을 뒤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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