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반이 사기” 라고 한 백남준의 미술세계
“예술은 반이 사기” 라고 한 백남준의 미술세계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7.03.17 14:00
  • 호수 56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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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기념관 ‘내일, 세상은 더 아름다울 것이다’ 전
▲ ‘비디오아트의 창시자’인 백남준의 기념관 개관을 기념하기 위해 열리는 이번 전시에에서는 뉴욕 작업실을 재현하는 등 그의 생애를 재조명한다.

성장기 보낸 서울 창신동 집터에 조성… 주민들 도슨트로 참여
유품과 뉴욕 작업실 등 재현… 생애 소개하는 TV세트 인상적

“예술이란 원래 반이 사기다.”
1984년 6월, 35년 만에 고국을 방문한 백남준(1932~2006)이 던진 말이다. 귀국 전 파리와 뉴욕을 연결한 인공위성 프로젝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을 선보여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자리잡은 그는 ‘예술사기론’을 제시해 우월주의의 빠진 서양예술에 경종을 울렸고 ‘진정한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졌다. 이후에도 수많은 작품을 남기며 ‘비디오아트의 창시자’로서 세계 예술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거장 백남준의 삶과 예술 세계를 소개하는 백남준기념관이 그가 성장기를 보낸 서울 종로구 창신동 집터에 문을 열었다. 기념관은 이를 기리기 위해 ‘내일, 세상은 아름다울 것이다’라는 제목의 기념전을 열고 그의 인생을 재조명한다.
기념관의 조성과 운영을 맡은 서울시립미술관은 작년 한 해 동안 리모델링 공사와 콘텐츠 기획을 진행했다. 설계는 ‘현대카드 영등포 사옥’을 디자인해 ‘김종성 건축상’을 수상한 건축가 최욱(54)이 맡았다. 기념관 건물은 28평 남짓한 단층 한옥의 원형이 최대한 보존되도록 리모델링됐고, 내부에는 전시실 외에도 지역주민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작은 카페도 마련했다.
서울 종로구 서린동에서 태어난 백남준은 기념관이 들어선 창신동에서 13년간 살면서 성장기를 보낸다. 그의 부친 백낙승은 해방 후 최대 섬유업체인 태창방직을 경영하던 섬유업계의 대부였고 그의 집안은 당시 종로5가와 동대문 일대 포목상의 절반을 소유할 정도로 부자였다. 이런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백남준은 경기공립중학교(경기고의 전신)에 진학해 피아노와 작곡,성악에 이르는 광범위한 음악수업을 받는 등 어린 시절부터 엘리트 예술인의 길을 걷는다. 도쿄대 미학과로 진학한 후에는 일본 소니에서 생산된 비디오카메라를 이용해 그의 상징과도 같은 비디오아트를 탄생시킨다.
이번 전시는 그의 생애를 ‘백남준 이야기’, ‘백남준 버츄얼뮤지엄’, ‘백남준의 방’, ‘백남준에의 경의’ 등 4부로 구성해 재조명한다.
1부 ‘백남준의 이야기’에서는 그의 말과 글, 지인들의 회고담 등을 엮은 10편의 노트를 통해 그의 예술세계를 살펴본다. 2부에서는 플럭서스 시절 그의 활동상을 소개한다. 변화를 뜻하는 플럭서스는 미국의 조지 마키우나스(1931∼1978)가 1962년 독일에서 조직한 이래 1970년대 뉴욕‧파리‧런던‧스톡홀름‧프라하 등 유럽과 미국, 일본 등지로 퍼져나간 국제적인 전위예술 운동을 말한다. 분할된 대형 스크린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영상을 통해 공개되는 백남준의 말들에선 그의 도전정신을 엿볼 수 있다.
‘백남준의 방’에서는 그의 유품들로 재구성한 뉴욕 소호의 작업실을 볼 수 있다. 이중 다이얼방식 아날로그 TV와 빔프로젝터를 결합한 ‘TV세트’가 인상적이다. 다이얼을 조작하면 스크린에 백남준의 작품과 생애가 소개되는 설치작으로 그의 예술 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 기념관 입구, 중앙정원 등 실내 곳곳에 설치한 조형물도 기념관을 찾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아울러 안내를 지역주민에게 맡겨 기념관의 의미를 더했다. 백남준기념관 주민 도슨트(전문 안내인) 프로그램을 운영해 창신·숭인 지역 주민들을 중심으로 한 지역의 구성원들이 기념관을 방문하는 관람객을 위한 도슨트로 활동한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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