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삶의 설계자로 서다
자기 삶의 설계자로 서다
  •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 승인 2017.03.24 11:15
  • 호수 56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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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장‧노년기 인생전환의 두 번째 사례이다. 장석우(56)씨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방황의 시간을 보내다 7년 만에야 전문대학에 입학했다. 졸업 후 필기구 제조업체, 택시 운전사, 미용 보조원 등의 일을 했으나 육체적으로 힘들고 스트레스가 엄청나서 낭떠러지로 밀려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아내와 함께 20년 가까이 미용실도 운영해보았으나 아내가 미용 일로 인해 어깨 통증이 심해 수술을 받으면서 그것도 접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치매에 걸린 모친을 모셔야 하는 상황이 되어 경제적으로나 심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됐다. 아이들이 한창 자라날 때인데 교육은 어떻게 하나, 연로하신 부모님은 어떻게 모셔야 하나, 경제적 어려움과 미래에 대한 불안은 크나 큰 심리적 압박으로 다가와 안정제 없이는 하루도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됐다.
마땅한 일터도, 수입도 없이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 속에서 지내던 그는 우연히 동네 주민센터에서 ‘희망리본 사업’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사업은 저소득층, 미취업 청년층이나 중장년층, 영세 자영업자 등을 대상으로 직업상담, 직업훈련, 취업알선 등을 제공하는 제도이다. 어려운 사람이 일을 통해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는 뜻에서 리본(Re-born)이라는 말을 쓴다.
신청서를 제출하고 초조히 기다리던 2014년 3월, 그는 천만다행으로 SK 산하 ‘행복나래 주식회사’의 물류센터 직원으로 취업할 수 있게 됐다. 행복나래는 ‘사회적 기업을 위한 사회적 기업’을 표방하며 공익적 활동을 하는 회사로, 사회적 기업이나 중소기업 등 약소기업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우선 구매하여 판로를 넓혀주는 회사이다. 그가 일하게 된 용인시에 위치한 물류센터는 이러한 행복나래 사업의 심장부와 같은 곳이다. 다양한 물품들이 입고와 검수, 출고 과정을 거쳐 고객을 찾아가는 장소이다.
처음 그에게 물류센터라는 공간은 낯설기만 했다. 물류센터에서 오가는 1000가지가 넘는 문구류, 기계류, 식품류 등 하나하나 서로 다른 이름과 단위, 품번 등이 혼란스러울 때가 많았다. 물류센터가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직원이 개별적으로 담당하는 업무뿐 아니라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지만 예상되는 위험 요소, 작업에 지장이 될 만한 것들을 너나없이 정리해야만 한다.
비록 쉽지 않았지만, 직원들이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배워나가며 성장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회사의 기업문화 덕분에 이제 그는 어엿한 입사 3년차 직원으로서 안정을 이루게 됐다. 300평이 넘는 작업장의 역동적이고 활기찬 모습은 그에게 늘 의욕과 기운이 솟아나게 한다. 다문화, 탈북, 한부모 등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하모니를 이뤄 성과를 달성해 나간다는 것이 그에게는 너무 멋지고 경이롭다.
성취감이 쌓이자, 다른 동료를 더 잘 도와주고 회사에 더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하는 고민이 그의 몸에 배이게 됐다. 최근 그는 지게차 운전자격증에도 도전했다. 회사의 배려로 업무 틈틈이 자격증 공부를 할 수 있었고, 너른 주차장에서 실기연습도 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무사히 자격증을 취득해 물류센터에서 긴급하게 운반 인력이 필요할 때 신속히 투입될 수 있게 됐다.
현재 그는 그의 내면이 원하는 일, 일터의 동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 그럼으로써 진정한 만족을 찾을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실직한 장년층’이라는 이유로 ‘취약계층’으로 분류돼 정부의 도움으로 취업하게 된 것이 참 다행이었다. 그는 이제 도움을 ‘받는’ 삶에서 다른 사람의 성장을 돕는 ‘베푸는’ 삶으로, 제3의 인생기에 터닝 포인트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돌이켜 보면, 그는 과거에 열심히 살아오긴 했지만, 그의 삶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따뜻한 마음의 교류, 그리고 그의 인생이 다른 사람과 사회에 어떤 영향과 여파를 남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찾아볼 수 없었다. 부모님이나 아이들, 아내를 대할 때에도 죄책감, 책임감, 속박 같은 감정이 느껴졌었다.
그러나 이제는 가족에 대한 자신의 자연스러운 모습,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직장, 그리고 사회에도 기여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터를 만나게 된 것이 너무 감사하다. 이제 그는 은퇴 전에 물류창고장 직위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포부가 생겼다. 아울러 은퇴 이후의 장기적인 목표도 생각해 보는 여유를 갖게 됐다.
최근 그는 군대에서 잠시 배웠던 태권도를 다시 시작했고, 어린이들과 나란히 국기원에서 2단 인증을 받기도 했다. 태권도를 계속 수련해서 은퇴 후에는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한 작은 도장도 열고 싶다는 포부도 키우고 있다. 이제 그의 여생은 주어지는 삶이 아니라 찾아 가는 인생이길, 그가 주인공이자 설계자로서 자신과 타인들을 위한 새로운 길을 열어나가는 시간이길 간절히 희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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