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명의 흑인여성이 쏘아올린 평등의 로켓
3명의 흑인여성이 쏘아올린 평등의 로켓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7.03.24 13:58
  • 호수 56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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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히든 피겨스’
▲ 미국의 우주 탐사 계획에 일조한 흑인 여성 3인방의 실화를 그린 이번 작품은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당당하게 극복하는 모습을 담아 큰 감동을 주고 있다. 사진은 영화 속 주인공이 미궁에 빠진 유인 인공위성 궤도를 계산하는 장면.

1960년대 미 항공우주국 우주 탐사 프로젝트 숨은 주역들 다뤄
인종‧성차별 당한 여성들이 실력으로 극복하는 과정 담아 큰 감동

“캐서린 존슨이 계산이 맞다고 확인해주면 그때 출발하겠습니다.”
1962년 2월, 미국 최초의 유인 우주선에 탑승한 존 글렌(1921~2016)은 발사 직전 이렇게 말한다. 당시 최고의 슈퍼컴퓨터가 예측한 착륙지점이 시시각각 변하자 존은 캐서린이 직접 계산해주기를 요청한 것이다. 촌각을 다투는 긴박한 상황에서 ‘임시계약직 계산원’이었던 캐서린은 즉각 궤도를 계산했고 존은 무사히 지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후에도 캐서린은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등 우주 개척에 혁혁한 공을 세운다. 하지만 그의 활약은 오랜 기간 드러나지 않았다. 단지 ‘흑인’이면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미소냉전 시대 미국의 우주 탐사 경쟁의 큰 공을 세웠던 흑인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히든 피겨스’(숨겨진 인물들, Hidden figures) 가 3월 23일 개봉했다. 작품은 우주선의 항로를 계산하는 수학공식을 찾아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캐서린 존슨(타라지 헨슨 분), 미 항공우주국(나사, NASA) 최초의 흑인 여성 간부가 된 도로시 본(옥타비아 스펜서 분), 나사 최초의 흑인 여성 엔지니어 메리 잭슨(자넬 모네 분) 등을 중심으로 흑인과 여성이란 이유로 차별받던 과학자들의 숨겨진 활약상을 다룬다.
1960년대 초반, 미국 남부는 ‘짐 크로법’이 시행 중이었다. 짐 크로법은 ‘공공시설에서 백인과 유색 인종을 분리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법이다. 이로 인해 식당·극장·버스 등 공공시설에서 흑인들은 백인들과 다른 공간을 이용하는 등 차별 대우를 받았다. 심지어 화장실도 흑인전용이 따로 있었다.
이는 나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여성에 대한 차별도 존재했다. 나사에서 근무하는 흑인 여성들은 명문대를 나온 빼어난 수재임에도 불구하고 지하공간에 배정돼 단순 업무만 주어졌고, 회의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우주선 프로젝트에 합류한 캐서린이 처음 백인 전용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청소부로 오인 받는다. 심지어 건물 자체에 흑인전용 화장실이 없어서 용무가 급할 때마다 일거리를 잔뜩 들고 800m나 떨어진 곳에 위치한 흑인 전용 화장실로 달려가야 했다. 도로시 역시 10년간 지각·휴가 한 번 없이 계산원으로 일했으나 승진하지 못하고, 메리는 뛰어난 능력을 지녔음에도 백인남성이 아니라는 이유로 엔지니어직에서 배제된다.
하지만 이들은 좌절하지 않는다. 과격하게 투쟁하지도 않는다. 경쾌하게, 오로지 실력으로 정면 돌파하면서 흑인여성에 대한 인식을 바꿔 나간다. 이로 인해 나사 내부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분다. 우주선 프로젝트를 이끄는 알 해리슨(케빈 코스트너 분)이 나사의 모든 흑인전용 화장실을 철거하면서 서서히 대우가 달라진다.
캐서린은 미국 최초 유인 인공위성의 궤도를 정확하게 계산해내고, 도로시는 처음 도입된 슈퍼컴퓨터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실력을 인정받고, 메리는 법원에 청원을 내 백인 전문학교에 입학하며 새로운 역사를 써나간다.
특히 후반부 간부로 승진한 도로시가 해고 위기에 몰렸던 흑인 여성 전원을 이끌고 슈퍼컴퓨터 관리팀으로 이동하는 장면은 벅찬 감동과 함께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한다.
“남자만 지구를 돌라는 규정도 없어요”라는 캐서린의 당찬 대사로 대표되는 작품의 주제는 단순하면서도 명쾌하다. 현재도 세계에서는 많은 차별들이 존재한다. 미국에서 여전히 많은 흑인들이 백인경찰들에게 과잉진압을 당하고 있고 이슬람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무슬림들은 테러리스트로 취급 받는다. 이는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영화는 이러한 편견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움츠러들지 말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해내면 결국 색안경을 벗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철저한 고증을 통해 탄생한 영화 속 배경도 감동을 높이는데 한몫 했다. 주요 무대가 되는 랭글리 연구 센터의 재현과 존 글렌의 우주선 디자인 등은 나사 수석 역사학자 빌 배리 박사의 자문을 통해 완벽히 담아낼 수 있었다. 제작진들은 빌 배리 박사를 통해 1960년대 랭글리 연구 센터의 구조, 주차장에 주차된 트럭 등을 세밀하게 재현했다. 특히 미국 최초의 우주 궤도 비행 프로젝트의 핵심 중 하나인 존 글렌의 우주선을 위해 철저한 자료 조사는 물론 우주선에 관련된 수십 가지 사항을 확인해 실제와 같은 우주선을 재현해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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