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음미하는 디카시 산책
홍매 서정
사랑 툇마루 다가서면
금방 차려진 칠첩반상
창호지 문 열고 엄니가
활짝 핀 홍매화 얼굴로
반길 듯
정지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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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이 봄이다. 죽은 듯 캄캄하던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고 아무 것도 없을 것 같던 땅에도 다시 꽃들이 올라와 세상이 점점 환해지고 있다. 홍매가 일제히 창을 열어 꽃소식을 날려보낸다. 어찌 황홀하고 아찔하지 않으랴! 꽃들의 붉은 물이 뚝, 뚝, 떨어져 온통 세상을 붉게 물들이고 나면 마침내 내 몸도 덩달아 붉어져 버릴 것만 같다. 환해져서 봄날보다 더 따뜻해질 것만 같다.
홍매 가지 끝이 청매 가지 끝에 가서 닿고 그 가지 끝은 다시 사랑방 장지문에 닿아 엄니가 한 상 가득 따순 밥을 지어놓고 방문을 열면 나는 저 홍매보다 더 붉은 볼을 한 엄니에게로 달려가는 꿈을 꾼다. ‘아가, 밥은 먹고 댕기냐? 사람은 밥심으로 사는겨’ 어머니가 늘 하시는 말씀이 오늘 따라 귀에 쟁쟁하다. 저 한 그루 나무보다 더 뜨거운 한 그릇 밥이 오늘 따라 더 그립다.
글=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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