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란은 해협을 건너왔다는 같은 족속의 청년에게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미란은 해협을 건너왔다는 같은 족속의 청년에게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 글=이효석 그림=이두호 화백
  • 승인 2017.03.31 13:29
  • 호수 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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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장편소설 화분 <29>

맞은편에서 점원과 피아노의 흥정에 말이 많은 한 사람의 청년이 있었으니 알고 보면 그도 그 같은 베히슈타인 회사의 피아노를 마음에 두고 거래 중인 것이었다. 현마들은 그의 높아지는 어성에 주의를 끌리게 된 것이었으니 그는 무엇인지를 누누이 설명하면서 점원을 설복시키려는 것 같았다. 맨머릿바람의 고수머리며 차면서도 부드러운 얼굴 모습이 한 사람의 아마도 예술가인 듯 범상치 않은 인상이 마음을 끌었다. 장황한 변설을 들으면 그 피아노는 마음에는 드나 값이 과하다는 것이었다. 천오백 원으로만 떨어트려 준다면 당장에라도 현금으로 사겠다는 것, 자기에게는 지금 얼마나 피아노가 필요하다는 것, 장사란 경우를 따라서 적당한 아량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되씹고 곱씹어 말하는 것이다.
“일부러 해협을 건너 이렇게 멀리 온 것이 순전히 피아노를 사자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말하지두 않겠소.”
흥정이 아니라 싸움이었다. 점원이야 어떻게 되었든 자기의 말이 가장 중요한 것이요 하고 싶은 말은 모조리 털어놓는다. 예술가란 저렇게 아이같이 속사정을 털어 말하며 아무 자리에서나 흥분하고 하소연하고 부르짖는 것일까——미란은 그 한 고장에서 왔다는 같은 족속의 청년에게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피아노로부터 든 흥미가 우연한 관계로 그 이상한 청년에게로 옮아간 것이다. 미란뿐이 아니라 이제는 벌써 그 상점안의 모든 시선과 주의가 한갓 그 청년에게로 쏠렸다.
“말씀은 잘 알겠구 그 열정두 고마운 것이긴 하나 저희로서야 장사니까 손님께 못 드린다구 해두 또 다른 손님이 없는 것 아니구——실상은 지금 여기 또 한 분 사자는 분이 계시는 판에……”
점원이 현마들을 가리켰을 때 그 청년의 시선은 이쪽으로 향해졌다. 돌연히 나타난 적수를 바라본 듯 복잡한 표정을 띤 그 눈매를 미란은 흡사 자기를 쏘는 두려운 것으로 여기며 차게 빛나는 눈동자에서 지나간 그 무엇——옳지, 간밤 음악회의 천재소녀의 눈동자를 문득 생각해 내면서 이 역 보통사람 아닌 자칫하면 소녀의 유가 아닐까 하는 추측이 솟았다. 청년은 두렵고 교만한 눈초리를 돌려 이번에는 점원을 노리더니,
“개발에 편자지 아무리 흔한 피아노라구 아무나 가져두 좋은 법인가. 나귀에게 거문고를 주어보지 무슨 꼴이 되나. 예술을 모욕하는 데두 분수가 있지 아무리 상품이라구 예술가에겐 거절하구 객실의 장식품으로 쓸 사람들에게 주어야 옳단 말인가. 내 말이 거짓말이거든 어디 거기 섰는 여류 피아니스트에게 이 당장에서 한 곡조 울려 보라지.”
미란은 얼굴이 새빨개지며 몸이 달았다. 예술가의 날카로운 직각으로 자기의 재주를 첫눈에 뽑아낸 것일까. 얼마나 교만하고 얄미운 모욕인가. 초면의 당장에서 그렇게 주제넘고 대담한 무례가 다시 있을까. 얼마나한 재주를 속에 감추면 그렇게 사람을 욕 줄 수 있을까——속이 꼬이고 불이 치밀면서 그 정체모를 무뢰한을 후려갈기고도 싶고, 아니 그보다도 될 수만 있다면 말썽거리 피아노 앞에 넌짓 앉아서 장기의 한 곡조를 울려 청년의 모욕의 말을 무언중에 꾸짖고도 싶었으나 어쩌랴, 조물주는 지금 자기편을 들고 있지는 않는 것이다. 천재에 대한 탄식으로 순간 오장이 녹을 듯이 타면서 대거리의 말 한마디 없이 전신이 나뭇개비같이 꼿꼿해 있는 동안에 보라는 듯이 피아노 앞에 가 앉은 청년은 어느덧 한 곡조를 울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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