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습관
좋은 습관
  • 신은경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이사장
  • 승인 2017.04.07 13:30
  • 호수 56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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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특별식은 엄마의 손칼국수였다. 엄마는 밀가루를 직접 반죽한 덩어리를 빨래 방망이로 넓적하게 밀었다. 그리고 그 위에 하얀 밀가루를 얇게 발랐다. 마치 화장을 하듯 말랑말랑한 반죽 겉을 밀가루 분을 묻혀 손바닥으로 곱게 쓸었다. 그리고 나선 그걸 차곡차곡 접는다. 반을 접고 또 반을 접고 드디어 현란한 칼질이 시작됐다. 가지런히 썰어진 국수 가락을 서로 달라붙지 않게 훌훌 털어 채반에 올려놓으면 면 준비가 끝난다.
진하게 우려낸 멸치 국물이 하얀 김을 내며 펄펄 끓으면 곱게 분바른 면발들이 쏟아져 들어간다. 밀가루가 익으면서 국물도 걸쭉해진다. 다진 고기와 양파, 호박 볶은 것을 고명으로 얹어 큰 대접에 펄펄 끓는 칼국수가 담겨져 나온다.
별미 특별식을 하는 날엔 나의 두통도 시작됐다. 난 칼국수가 싫었다. 걸쭉한 국물도 싫었고 멸치의 비린 냄새도, 푹 퍼진 국수도 싫었다. 내 맘을 잘 아시는 외할머니는 슬며시 찬밥을 챙겨두셨다. 친할아버지, 고모, 외할머니, 동생들, 온가족이 모두 떠들썩하게 침을 꼴깍 삼키며 앉을 때, 나는 아버지와 가장 먼 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할머니가 살그머니 올려주신 밥공기의 밥을 한 술 뜨기 시작했다. 그 때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왜 너만 따로 밥을 먹느냐. 엄마가 정성껏 만들어주신 칼국수를 먹어야지. 음식은 뭐든 가리지 말고 잘 먹어야 한다.” 나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밥그릇을 내려놓고 억지로 칼국수를 입에 넣었다.
또 하나 아버지의 엄한 규칙 중 하나는 식사 도중엔 물을 먹지 말라는 것이었다. 밥을 먹다가 물을 마시면 대충 씹어 넘기게 되니 소화가 안 된다는 주장이셨다. 어린 우리 남매들은 원래 그런가보다 하며 순종해 아예 습관이 됐지만 어른이 다 되어 아빠를 만난 우리 엄마는 밥상자리가 가시방석이었다고 들었다. 왜냐면 엄마는 물 말아 밥 먹는 걸 좋아하셨고, 국이나 물을 마셔야 밥이 술술 넘어가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엔 밀가루가 그렇게 싫더니, 커가면서 맛있는 밀가루 음식에 맛을 들이기 시작했다. 학교 앞에서 파는 라면이 맛있었고 자장면, 우동의 면발에 중독되다시피 했다. 게다가 갖가지 모양과 풍미로 만들어지는 빵과 과자는 어쩜 그렇게 맛있는지 도저히 피해갈 수 없는 기호품이 됐다. 그런 중에도 식사중 물을 안 마시는 습관은 계속됐다.
물 없이 먹다보니 꼭꼭 씹어 먹어야 음식이 넘어갔고 식사 속도는 자연히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오래된 직장생활에도 그 버릇은 고치지 못했다. 빨리 먹는 사람 앞에서는 공연히 마음이 급해졌고, 조심스런 분 앞에서는 먹다가 숟가락을 놓기도 했다. 그나마 좀 편한 사람 앞에서는 끝까지 오랫동안 양껏 먹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나의 식성이 또 변하기 시작했다. 젊었을 때는 그야말로 돌을 씹어도 소화가 되는 때이니 무엇을 먹어도 상관이 없었는데, 지금은 가능하면 밀가루보다는 밥을 먹을 때가 뱃속이 편하다. 과자와 빵에는 그 전만큼 손이 빨리 가지 않는다. 아직도 곳곳에 널린 갖가지 모양의 과자와 빵들이 눈길을 사로잡지만 내가 먹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식사중 물을 마시지 않는 습관은 아직도 여전하다. 요즘은 방송에서도 밥을 오래 씹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현미 같은 곡물은 아주 많이 씹어 입에서 죽이 되도록 만들어 넘겨야 한다고 들었다. 대충 씹어 넘긴 현미밥은 췌장을 아주 힘들게 하기 때문에 오히려 몸에 이로울 게 없다는 얘기다. 그리고 물은 식사와 식사 사이, 그러니까 아침식사와 점심사이, 점심식사와 저녁사이에 충분히 많이 마셔주라고 한다.
먹는 이야기를 길게 한 것 같다. 결론은 첫째, 사람은 자기가 가지고 태어난 체질이 있다는 것이다. 골고루 먹는 게 좋다고는 하나 어떤 사람은 고기가, 또 어떤 사람은 생선이 맞는 것처럼 뿌리채소가 맞는 사람이 있고, 잎채소가 몸에 좋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과거엔 젊은 혈기로 모든 음식을 먹어치웠다 해도 이제는 가만히 몸의 소리를 들어보면서 무슨 음식이 내게 맞는가를 알아야 할 때다. 또 한 가지는 좋은 습관은 어렸을 때부터 기르고 오래도록 지켜야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다. 다 자란 후에 연습해서는 힘이 배로 든다.
‘백세시대’ 신문이 11주년을 맞았다. 태어났을 때의 체질을 기억할 것이다. 그 목적 또한 잊지 않았을 것이다. 도중에 시류에 휩쓸려 이런저런 변화를 꾀해 보았을지라도 본래의 목적과 본분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때이다. 뿐만 아니라 좋은 습관은 때로 불편해도 정말 좋은 것이라면 오래 지켜나가길 바란다. ‘백세시대’ 신문이 건강하게 오랫동안 이 땅의 시니어들에게 건강한 희망을 주며 따뜻한 동행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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