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이십니까, 아니면 ‘꼰대’입니까?
‘어르신’이십니까, 아니면 ‘꼰대’입니까?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7.04.07 14:12
  • 호수 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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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이 노인을 바라보는 두 시선
▲ 최근 젊은이들은 자신과 뜻이 같은 노인은 존경의 의미로 '어르신'이라 칭하고 반대로 소통이 되지 않고 권위만 내세우는 노인은 '꼰대'라 부르며 비하하고 있어 세대갈등을 봉합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해지고 있다. 사진은 멘토로서 어르신의 모습을 보여준 영화 '인턴' 속 로버트 드니로의 모습.

권위만 내세우는 노인에 거친 비판, 상식 있고 관용적인 노인엔 칭송
세대간 이해하려는 노력 중요… 노인들도 젊은이 주장 경청할 필요

#1. 지난달 한 80대 노인이 충남 공주시청을 찾아 익명으로 3000만원을 기부하는 훈훈한 일이 발생했다. 이 노인은 지난해 12월에도 ‘어려운 시민을 위해 써달라’며 3000만원을 기부한 적이 있다. 해당 기사가 보도되자 댓글엔 ‘이 시대의 참 어르신’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2. 지난 4월 초 젊은이들이 많이 이용하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한 노인의 악행을 고발하는 글이 올라왔다. 손녀뻘 되는 여중생에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면서 성추행을 하다 법원의 철퇴를 받은 내용이었다. 이 게시글에는 ‘꼰대’ 등 노인을 비하하는 용어와 함께 거센 비난 댓글이 달렸다.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노인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이 공존하고 있다. 존경할 만한 노인에게는 ‘어르신’이라는 호칭을 붙여주는 반면, 본받고 싶지 않은 노인들은 ‘꼰대’, ‘틀딱’(틀니 딱딱의 준말), ‘노슬아치’(노인과 벼슬아치의 합성어) 등 과격한 용어를 사용하며 비하하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와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이후 민심이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 촛불집회와 노인 세대를 중심으로 한 태극기집회로 양분되면서 이러한 경향도 두드러지고 있다. 젊은이들이 많이 활동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와 각종 뉴스 보도의 댓글을 보면 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젊은이들은 태극기집회에 참여하는 노인들에게 입에 담기도 힘든 비하성 신조어를 남발하는 반면, 자신들과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은 어르신이라 부르며 칭송하고 있다. 모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심지어 ‘노인들의 투표권을 빼앗아야 한다’거나 ‘노인들이 나라를 혼란스럽게 만든 주범’이라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펴고 있다.
전문가들은 노인들에 대한 젊은층의 혐오증세는 현재 사회구조에 대한 분노와 맞물려 있다고 분석한다. 이강원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 소장은 “세대갈등은 사회, 경제, 문화적 구조의 변화과정에서 발생한다”면서 “최근에는 국정농단 사태와 맞물려 젊은 세대가 느끼는 사회에 대한 반감의식이 커진 와중에 노인들을 중심으로 이를 옹호하는 모습을 보이자 비판의식이 더욱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꼰대는 백작의 프랑스어 ‘콩테’(comte)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 백작·공작 등 작위를 받은 친일파들이 스스로를 ‘콩테’라 불렀고, 이를 비웃는 사람들이 일본식 발음으로 ‘꼰대’라 불렀다는 것이다. 주로 기성세대를 속되게 이르는 은어지만 최근에는 노인세대에게 많이 사용되고 있다.
젊은이들로부터 꼰대라 불리는 노인들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개방적인 젊은 세대와 달리 권위적이고 보수적 시각을 가졌다. 나이가 많다는 점을 대부분의 상황에서 앞세우며 자신의 주장만 강조한다. 또 젊은 세대 사이에서 통용되는 ‘기본예절과 상식’을 숙지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대화를 잘 하지도 않지만, 하더라도 소통이 잘 안 돼 끝내 언성을 높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잘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이다. 현재 대중교통은 과거 경로석 대신 노약자석을 운영하고 있다. 노약자는 노인을 비롯해 임신부, 장애인, 환자 등을 포함한다. 문제는 노인들 중 상당수가 여전히 노약자석을 경로석으로 인식해 신체적 불편함을 가진 사람들이 노약자석에 앉았을 때 언성을 높이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얼마 전 한 노인이 임신부가 노약자석에 앉았다는 이유로 배를 걷어찬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기사를 본 젊은이들은 노인들이 변화된 사회 에티켓을 받아들이지 않고 기존의 권리만 강조하는 것을 비판했다. 반면 임신부에게 자리를 내준 노인들의 사연 등 유사 사례에 대해서는 칭송하는 분위기가 주류를 이룬다. 평소 서울 지하철을 이용해 출퇴근을 하는 유동욱(34) 씨는 “간혹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자리를 양보하는 노인들을 보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노인들에 대한 존경심이 생긴다”고 말했다.
또한 젊은이들은 노인의 사회적 명예와 위치와 상관없이 사회를 위해 헌신하거나, 기본적인 상식을 지키고 사는 노인들도 어르신이라 지칭한다. 형편이 어려워 폐지를 줍고 살더라도 소액이라도 기부하면서 나눔을 실천하는 노인들은 칭찬한다. 그러나 자수성가해 부와 권력을 누렸더라도 상식 밖의 행동을 하는 노인들에게는 어김없이 공격을 한다.
노인들이 존경받을 만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무조건 비난하는 행위는 더 큰 사회적 문제로 발전할 수 있다. 실제 지난해 5월 부산에서는 한 남성이 노인이 싫다는 이유로 마구 폭력을 휘두른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노인들이 우리나라 고도성장을 견인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살았지만 IMF를 겪은 데다 최근 불황 여파로 빈곤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자신들의 모습에 분노와 좌절감을 느낀다고 분석한다. 이로 인해 자기합리화를 위해서는 변화된 가치보다 자신들이 쌓아온 가치를 더욱 옹호하는, 변화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 이런 모습이 쉽게 소통할 수 없고 꽉 막힌 이른바 ‘꼰대’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초의수 신라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젊은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노인들의 행동에는 노인 세대 전체의 문화적인 배경이 깔려 있는데 그걸 이해할 시간이 적어 현재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노인혐오와 세대 간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부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강원 갈등해소센터소장은 “세대간 상호소통, 존중의 문화가 정착되도록 정부의 경제적, 문화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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