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환자, 마을 주민들이 함께 돌본다
치매환자, 마을 주민들이 함께 돌본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7.04.14 10:37
  • 호수 56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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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시범사업으로 주목받는 ‘치매친화마을’… 용인시‧경북도선 이미 시행

경기 용인시 수지구에 거주하는 박종희(58) 씨는 3년 전부터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고 있다. 초기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어머니의 증세가 심해지면서 간호하는 박 씨의 스트레스도 커졌다. 고통을 나눌 형제와 친구도 근처에 살지 않아 혼자서 속앓이를 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달라졌다. 박 씨의 동네가 용인시에서 지정하는 ‘치매행복마을’로 지정되면서 이웃들의 지원을 받게 된 것이다. 어머니의 증세는 좀더 악화됐지만 그는 마음의 짐을 덜면서 웃음을 되찾게 됐다. 박 씨는 “마을 주민들이 치매를 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각종 지원이 뒤따르면서 간호가 한결 쉬워졌다”고 말했다.

▲ 최근 정부가 마을 주민들이 환자를 돌보는 ‘치매안심마을’ 시범마을을 실시하면서 치매친화마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경북도 ‘치매보듬마을’에서 어르신들이 치매예방 프로그램에 참여해 꽃을 들고 있는 모습.사진=경북도 제공

환자가 이전처럼 주민과 어울리며 생활하도록 마을이 적극 지원
인지건강 위한 환경개선… 치매리더가 외출 도와 가족 부담 줄여

복지부가 ‘치매안심마을’ 시범사업 실시를 발표하고 이보다 앞서 경기 용인시가 ‘치매행복마을’을, 경북도가 ‘치매보듬마을’ 등을 조성하면서 일명 ‘치매친화마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치매친화마을은 치매환자가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가족과 이웃의 관심과 돌봄 속에서 일상생활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사업을 말한다. 지자체에서 나서 한국판 ‘호그벡 마을’을 조성한 것이다.
호그벡 마을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근교에 마을처럼 지어진 요양원으로 150여명의 치매 환자가 살고 있다. 환자들은 주변의 도움 없이 혼자서 장을 보고 미용실에 가며 주말에는 교회에도 다닌다. 잔디밭을 산책하거나 분수 주변의 벤치에 앉아 쉬기도 한다. 보통의 마을과 다른 점은 의사·간호사 등 의료진이 마트 계산원·환경미화원·우체부로 변장해 곳곳에 배치돼 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환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면서 주변 의료진으로부터 24시간 보호를 받는다.
현재 세계적인 치매 환자 관리의 추세는 시설 격리보다는 가족·이웃과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대표적으로 독일은 경찰에게 치매 환자들과 의사소통하는 방법과 안전하게 귀가시키는 교육을 하고 은행원, 운전기사, 학교 교직원, 종교단체 종사자 등에게도 직업별 대처 매뉴얼을 만들어 보급한다. 영국도 영국알츠하이머학회와 정부가 나서 2012년부터 ‘치매 친화 공동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자원봉사자가 치매 환자와 1대 1로 동행해 공원이나 상점, 카페를 방문하는 등 평소 활동을 할 수 있게 지원하고, 교통경찰관들도 대중교통 승차권 구매 등을 돕는 도우미 역할을 한다.
치매친화마을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호그벡 마을처럼 밀착 감시로 운영되진 않지만 주기적으로 마을 사람을 대상으로 치매 인식 개선 교육을 해 일종의 치매 도우미를 양성한 후 치매 환자가 있는 가정에 각종 지원을 해 환자와 가족의 짐을 덜어주는 것이다.
2007년 치매예방관리센터를 개소한 용인시는 2014년 전국에서 최초로 처인구 역삼동과 기흥구 기흥동에 치매친화마을을 조성했다. 센터가 큰 틀에서 사업을 전개하고 주민센터가 지원하는 방식으로 꾸려가고 있다.
센터는 주요단체와 협력해 치매 조기검진, 치매환자 가정지원, 주민자치단체 치매예방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만 60세 이상이면 누구나 치매 조기검진을 받게 했는데 검진비도 전액 지원하고 있다. 가장 잘못 알려진 상식이 치매가 불치병이라는 것인데 이로 인해 환자를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 치매는 완치가 불가능한 ‘알츠하이머병’ 환자가 72%로 가장 많지만 10%는 혈관성 치매, 17%는 원인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조기에 치료하면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다. 원인에 따라 10%는 완치가 가능하고 30%는 진행을 억제할 수 있다. 센터는 이러한 올바른 정보를 교육함과 동시에 50~60대 중 치매 의심환자에 대해 지속적인 검진과 관리를 통해 초기에 대응하는 역할을 맡았다.
반면 주민센터는 치매환자의 상태가 악화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동별로 10명씩 ‘치매리더’를 양성해 방문 서비스를 진행한다. 치매리더들은 평소 알고 지낸 이웃 치매 환자 가정을 주 2~3회 방문해 가족 대신 3~4시간씩 환자를 돌봐준다. 특히 환자들과 함께 외출해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이전처럼 일상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도우면서 격리됐던 환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용인시 관계자는 “사업 시작 후 600여명의 치매환자를 발견해 악화되지 않게 돌보고 있다”면서 “지속적인 지원으로 치매 환자와 가족의 부담을 줄여나가겠다”고 말했다.
2015년부터 치매보듬마을이란 이름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경북도 역시 용인시와 비슷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지난해 포항시 장기면 산서리 등 5곳의 마을에서 시범사업을 진행한 경북도는 올해 4억5000만원의 예산을 투입해 대상지역을 15곳으로 확대했다.
치매보듬마을로 선정된 곳은 먼저 치매환자가족과 마을이장, 부녀회장 등으로 ‘치매보듬운영협의회’를 구성해 각종 치매 관련 사업을 주관하도록 했다. 특히 지역 소식통으로 통하는 이장과 부녀회장 중 치매보듬리더를 선발해 체계적인 지원을 맡겼다.
또 마을 내 치매서포터즈 교육을 이수한 상점을 ‘치매보듬가게’로 지정해 고객 및 인근 주민들에게 올바른 치매정보를 제공하고, 치매사업을 홍보하는도록 했다.
마을당 3000만원의 예산을 지원해 마을회관도 개조했다. 주민 교육과 치매 진단은 물론 전문가와 함께 치료 프로그램도 직접 개발해 지원하고 있다. 경북 구미시 원평2동의 경우 마을 제2경로당에 치매 안전환경 개선공사를 진행했고 치매환자가 거주하는 15가구에는 안전용품(미끄럼 방지매트, 안전문고리, 안전바)을 설치했다. 또 원평2동 인근 9개 버스승강장에 치매정보를 표시했고 인근 대학교 학생들과 1촌을 맺어 치매 환자들의 말동무 역할도 맡겼다.
치매보듬마을 선정 후 마을 주민들의 생각은 달라졌다. 지난해 6월 인식조사에서 ‘치매 환자는 실종 위험 때문에 외출을 삼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 주민 비율이 75.5%에 달했지만 5개월 뒤 이뤄진 2차 조사에서는 38.8%로 낮아졌다. ‘치매 환자는 스스로 식사하기, 옷 입기 등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43.6%에서 72.4%로 2배 가까이 늘어난 것도 인상적이다.
윤석임 원평2동 제2경로당 회장은 “치매환자들이 밖으로 나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치매 진행 속도도 늦춰진 것 같다”면서 “치매가 불행이 아닌 극복할 수 있는 질병이란 인식이 자리잡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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