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기 KBL 총재 “나는 늙었으니까 놀아야지?… 그게 잘못된 생각이에요”
김영기 KBL 총재 “나는 늙었으니까 놀아야지?… 그게 잘못된 생각이에요”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7.04.14 13:23
  • 호수 56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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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60년대 국가 대표 농구선수… KBL 설립하고 두 번째 총재 맡아
세계 배낭여행 다녀와 ‘할배들의 무한질주’ 책 펴내… ‘일과 여행’ 즐겨

78세에 유명 스포츠단체의 수장이 됐고 80세에 세계여행을 다녀왔다. 거침없는 ‘할배의 질주’이다. 김영기(81) KBL(한국프로농구연맹) 총재 얘기다. 김 총재는 전 직장 동료들과 함께 캐나다‧미국‧유럽 등지를 다녀와 ‘할배들의 무한질주’(좋은땅)란 여행 책을 펴냈다. 김 총재는 1950~60년대 ‘한국 농구의 살아 있는 역사’란 말을 들을 정도로 기량이 탁월한 농구선수였다. 4월 초, 서울 신사동 KBL 사옥에서 만나 여행 뒷이야기, 전성기 시절을 들었다.

-KBL은 어떤 단체인가.
“현대‧삼성‧LG‧SK 등 대기업의 구단주들이 운영하는 프로농구단체에요. 1997년 저와 윤세영 SBS미디어그룹 회장이 함께 설립했습니다. 이 건물을 280억원에 구입했는데 지금은 1천억원이 됐어요.”
-고령임에도 두 번째로 총재 직을 맡았다. 비결이라면.
“13년 전 총재직에서 물러난 후 정치인, 언론인 등이 이 자리를 이어갔어요. 그분들이 좋은 점도 있지만 (농구인이 아니라서) 점점 농구와 괴리가 생겼어요. 구단주들이 침체된 프로농구 분위기를 띄워보라며 저를 다시 불러들인 겁니다.”
-프로농구 활성화를 위해 한 일은.
“농구도 연극을 보듯 재미가 있어야 해요. 대중성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과거에는 키 큰 외국선수를 1명만 뛰게 했어요. 키가 크면 모든 게 빠르지 못해요. 농구는 스피드가 생명입니다. 요즘은 193cm 이하의 ‘작은 외국선수’ 한명을 더 뛰게 합니다. 그 선수들은 기량이 뛰어나요. 178cm밖에 안 되는 외국선수가 덩크슛을 하는 모습에 팬들이 열광합니다.”
-여행을 떠나게 된 계기는.
“19세에 국가대표 선수로 세계 대회에 참가했어요. 1950년대 전쟁 직후 외국 나가는 일은 엄청난 특혜였지요. 그렇지만 선수로 나가면 운동만 하고 방안에 틀어박혀 있어 관광을 제대로 못해요. 은퇴 후에 편한 마음으로 다시 찾아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지요.”

그런 소망에 외부 모임이 불을 붙였다. 김영기 총재는 전 직장 동료들과 정기적인 만남을 가져왔다. 백남철(76) 전 KBL 임원, 정영환(75) 전 신보V.Capital 사장, 이병천(72) 전 신보V.Capital 부사장, 김선욱(72) 전 예당엔터테인먼트 부회장, 예월수(72) 전 신보에이드 사장 등이 그들이다. 이들과 서울 마포의 설렁탕집에서 만나 “실버로서 큰일을 저질러보자”고 의기투합한 결과 세계의 절경을 찾아 길을 나선 것이다.

▲ 김영기 총재 일행이 미국 시에라네바다산맥 고산지역에 있는 타호 호수 앞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김 총재 일행은 2004년 5월 캐나다 로키, 2005년 6월 미국 서부 그랜드서클, 2006년 9월 호주 오션코스트, 2010년 4월 하와이, 2012년 9월 투르 드 알프스 그리고 지난해 5월 유레일 배낭여행 등을 차례로 다녀왔다. 직접 운전하며 움직인 거리는 총 2만4400km에 이른다.

김 총재는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하나가 저비쾌유(低費快遊), 비용은 싸게 그러나 재미있게이다. 둘째는 이타준칙(利他準則), 상대방을 배려하고 규칙을 지키는 것. 셋째는 유락산호(遊樂山湖), 여유롭게 자연을 즐기자는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각자 임무도 부여했다. 김 총재가 단장으로 전체적인 운영을 이끌고, 규율과 음식, 기획과 숙박, 수송과 교통, 조사 및 안전, 사진 및 총무 식으로 역할을 나누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라면.
“다 좋은 곳이라 딱히 어디라고 말하기가 어려워요. 하와이를 가면 바다를 보지만 산이 더 좋아요. 트래킹을 하고 호수에서 벌거벗고 수영도 했어요.”
-그래도 노인들에게 추천할만한 코스라면.
“저희들이 다녀온 곳을 가세요.”
-주의할 점이라면.
“특별한 건 없어요. 약을 잘 챙겨가세요. 건강관리가 중요해요. 일행 중에 감기로 고생을 많이 한 이가 있었어요.”
-여행 다녀온 후 사이가 틀어지는데.
“일본인들은 여행을 떠나기 전 치밀하게 준비해 그런 일이 없다고 해요. 우리도 규칙을 정했어요. 식당, 메뉴 문제로 기분 상하지 말자고 아침‧점심은 각자도생입니다. 대신 저녁은 마켓에서 고기나 랍스터를 사다가 함께 요리를 해먹어요. 잠자리도 문제지요. 호텔 방에 침대 하나만 있으면 누가 그 위에서 자겠어요. ‘사다리타기’로 정합니다. 코고는 문제도 심각해요. 떠나기 전 의사에게서 처방 받은 수면제를 반 알씩 나눠 먹어요. 5분 지나면 다들 떨어져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우리는 저비용을 위해 비행기도 몇 번씩 갈아타고 숙소도 가장 싼 곳을 이용했어요. 미국 요세미티공원에서 있었던 일이에요. 빈집을 가라고 해서 키를 받아갖고 나왔는데 무려 17마일이나 떨어진 곳에 있었어요. 서울서 수원만큼 떨어진 거리지요. 오후 5시에 출발해 도착했을 때는 캄캄한 밤이었어요. 더욱 한심한 건 다음날 키를 도로 반납해야 했던 일입니다.”

김영기 총재는 고려대를 나와 제16회 멜버른 올림픽 농구 국가대표(1956년)를 비롯 10여년간 스타 플레이어로 활약했다. 제5회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 대회 국가대표팀 감독 등을 지내다 은퇴 후 중소기업은행 지점장, 대한체육회 부회장, 신용보증기금 전무, 신보창업투자 대표이사 등을 지냈다. 제3대 KBL 총재(2002~2004년)에 이어 2014년부터 제8대 KBL 총재로 있다.

-‘한국 농구의 살아 있는 역사’라고.
“1964년 도쿄올림픽 때 최고득점 세계 2위를 했어요. 다른 선수들 10점하기 힘들었을 때 19점을 했지요. 당시 우리나라엔 프로라는 게 없었어요. 미국 프로농구단에서 오라고 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가지 않았어요.”
-최순실 딸 승마 사건에 대한 생각은.
“그게 5‧16 군사문화가 낳은 적폐 중 하나예요. 운동을 잘해 세계 대회에서 금메달 따 국위선양하면 다른 건 묻지 않는 거지요. 그렇지만 우리 때는 미국처럼 공부도 잘 하고 운동도 잘 했어요. 이 사건이 그릇된 풍토를 바로 잡아주는 계기가 된 셈이에요.”
-공부도 잘 하고 운동도 잘 할 수 있나.
“제 경우는 (배재)고등학교 때 상위 성적의 아이들 중에서 농구 잘 하는 아이를 뽑았어요. 대학시험도 똑같이 치렀어요. 현승종 당시 고려대 교수(98‧전 국무총리)가 제 영어 답안지를 보더니 ‘커닝 하지 않았느냐, 못 믿겠으니 다시 문제를 풀어보라’고 해서 한 번 더 시험을 봤던 일이 있어요(웃음). 고려대 재학 중엔 학점이 미달돼 시합에 나가지 못한 적도 있고요.”
-노인에 대한 생각은.
“제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라는 작품을 좋아합니다. 노인은 늙었다고 낙담하고 그 다음엔 포기를 합니다. 소설에선 그걸 죄악으로 규정해요. 생명이 있는 한은 의무가 있다, 생존할 의무가 있다는 거지요. 사회가 당신을 은퇴시킨 건 그런 제도가 있기 때문이지 삶에서도 은퇴하라는 말은 아니거든요. 나는 늙었으니까 놀아야지 하는 건 크게 잘못된 생각입니다.”
-노인의 바람직한 역할이라면.
“노인이 놀 시간이 없는 고령화 시대가 됐어요. 수명도 늘어나고 건강도 그만큼 따라주니까 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또 떠날 계획은.
“앞으로 알라스카와 뉴질랜드 두 곳을 더 갈 겁니다.”

글‧사진=오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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