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낙 가천대 의대 명예총장 “조선 초상화에는 500년 역사를 흐르는 선비정신이 담겨 있어요”
이성낙 가천대 의대 명예총장 “조선 초상화에는 500년 역사를 흐르는 선비정신이 담겨 있어요”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7.04.28 13:31
  • 호수 56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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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뮌헨대학원 의학박사… 70대 후반에 미술사학 박사 돼
추사 김정희의 살짝 곰보, 태조 이성계 이마 혹도 숨기지 않아

70 넘은 나이에 생애 두 번째 박사학위를 딴 이성낙(79) 가천대 의대 명예총장. 이 명예총장은 뮌헨대 대학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1975년)한 이후 40여년만에 미술사학 박사가 됐다. 학위 제목은 ‘조선시대 초상화에 나타난 피부 병변’. 그는 최근 한 조찬포럼에서 ‘조선 초상화로 다시 보는 선비정신’이란 제목의 특강을 해 관심을 모았다. 뒤늦게 미술사를 공부하게 된 계기, 박사가 된 이후의 예술 활동 등을 들었다.

-의학과 미술은 생소한 관계다.
“뮌헨대학에서 공부할 때 시간만 나면 미술관, 음악회 등을 찾아다녔어요.”
이 명예총장의 미술에 대한 열정은 전공을 초월할 정도다. 뮌헨대 졸업 직전 의사국시를 이틀 앞두고 파리에서 피카소 기념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중요한 시험이라 몇 번 망설였지만 결국 전시회를 보고야 말았다. 그는 “무박 이틀 기차여행으로 새벽에 돌아와 당일 의사 국가시험을 치르고 합격했지만 참으로 운이 좋았다”고 회고했다.
-미술사를 공부하게 된 계기는.
“1965년 독일에서 세계피부학회 회장을 지낸 교수로부터 ‘예술품에 나타난 피부 증상’이란 특강을 듣고 ‘아, 저렇게도 보는구나’ 란 생각이 들었어요. 이후그쪽에 관심을 갖고 자료를 모았어요.”
-조선시대 초상화는 피부병을 발견할 정도로 정교한가 보다.
“승정원일기에 ‘터럭 하나도 다르게 그리면 다른 사람이 된다’는 기록이 있어요. 조선시대 초상화의 매력은 한마디로 ‘리얼리티’(사실감)예요.”
-어떤 종류의 피부병들이 보이던가.
“곰보자국도 보이고, 여드름, 무모증도 보입니다. 추사 김정희의 초상화에도 살짝 곰보가 있어요. 우의정을 지낸 오명항 선생(1673~1729)은 얼굴이 새카맣게 그려져 있어요. 간경화를 앓고 있다는 거지요. 이런 사실감은 중국이나 일본의 초상화에선 찾아볼 수 없습니다.”
-초상화를 통해 선비정신을 발견한다는 건 무슨 뜻인가.
“우리나라 선비들의 정직함, 최소한 정직하려고 노력하는 자세를 초상화에서 찾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 명예총장은 우연한 기회에 임마뉴엘 페스트라이쉬(이만열) 경희대 교수로부터 우리나라의 선비정신이 일본의 사무라이정신보다 월등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고개가 끄덕여졌다. 임마뉴엘 교수는 2년 전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이란 책을 써 유명해진 이다. 즉, 한자로 볼 때 사무라이정신은 모실 시(侍)인 반면 선비정신은 선비 사(士)라는 얘기다.
-정직함을 그림에서 본다는 말이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옛날에 초상화는 일종의 자기 과시였어요. 프랑스의 루이 14세,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의 초상화를 보면 화려합니다. 중국의 청나라 때 초상화는 그런 과시욕이 더욱 심했지요. 그에 비해 조선은 화려하지 않아요. 그리고 아무나 초상화를 그릴 수 없었습니다. 초상화는 왕의 하사품이었어요.”

그런 이유에서 화가도 최고의 실력자였고 그림도 일정한 수준을 유지했다. (초상화를)영정으로 사용하기 위해 자식들이 예쁘게 잘 그려달라고 부탁을 했을 수도 있겠지만 화가는 그런 말을 듣지 않았다. 쉽게 말해 부정행위가 없다는 뜻이다. 이 명예총장은 “그런 정직함이 바로 선비정신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고 반문했다.
“어진을 그릴 때는 도감이 만들어집니다. 장관급 감독이 전체를 지휘하고 얼굴을 그리는 화가, 옷을 그리는 화가, 자료를 준비하는 이 등이 한 팀을 이루지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자세히 보면 이마의 혹을 발견합니다. 완성된 그림을 보고 만약 태조가 ‘그릴 게 없어서 혹까지 그렸느냐’고 했다면 그 그림은 남아 있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러지를 않았던 거지요. 어느 시대나 나쁜 이도, 좋은 이도 있겠지만 조선 선비들의 마음가짐은 적어도 정직하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정신이 조선 500년 역사에 그대로 흘러왔습니다. 이건 세계 미술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우리만의 자랑스러운 미술사입니다. 2012년 세계피부과학회 때 이런 내용을 강의해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어요.”

이성낙 명예총장은 1975년 귀국해 연세대‧아주대 의대 피부과 교수를 지냈다. 은퇴 후 가천의대 총장직을 4년 간 맡았다. 대한의학회 부회장, 미국 피부과학회 국제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대미술관회 회장직에서 최근 물러났다. 현재 한국미술관회 회장,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로 있다. 대통령 표창, 국민훈장 동백장, 독일 십자공로훈장 등을 받았다.

-독일에서 공부할 때 어려움은.
“남들 다 하는 공부라 특별히 어려운 건 없었어요. 다만 아시아인이 드물어 옷차림이나 행동을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 저에겐 스트레스였어요.”
-피부과 전공의로서 업적이라면.
“업적이라기보다는 교수로서 좋은 제자를 많이 갖게 된 점이 보람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기억에 남는 환자라면.
“50대 때 하루는 여유 있어 보이는 70대 부인이 찾아왔어요. 그 부인이 자기 얼굴에 있는 동전만한 검버섯을 빼고 싶다고 아들, 딸에게 말하자 모두들 주책이라고 핀잔을 주더라는 말을 하며 눈물을 흘렸어요. 레이저가 없던 시절이라 몇 차례 약물치료로 점을 제거해주었더니 아주 행복해하더라고요.”
-노인들의 피부 관리 비결이라면.
“노인성 피부변화는 주름과 검은 점입니다. 주름은 펴기가 힘들지만 점(검버섯)은 쉽게 제거할 수 있어요.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듯이 3년에 한번씩 점을 제거하면 깨끗하고 보기에도 좋습니다. 저도 하고 있어요.”
-100세 시대 노인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친구가 불러내면 귀찮다고 거절하지 말고 기꺼이 응하세요. 저는 분당에 사는데 하루에 두 번씩이나 서울에 나온 적이 있어요.”
이 명예총장은 “나이 들수록 행동하기가 어렵다. 제자들에게 손가락질 받을 행동을 삼가야 한다는 마음의 지침을 갖고 있다”며 “이런 언동을 할 때 제자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를 먼저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제자들은 내 거울이다’”라며 웃었다.
-미술사 박사로서 무슨 일을 하는가.
“재능기부의 하나로 미술관에서 ‘도슨트’(소정의 지식을 갖춘 안내인)를 하고 있어요. 최근에 주한 독일대사 부부의 요청으로 리움미술관을 한바퀴 돌았고 미술애호가들과 함께 버스로 서산 마애삼존불을 보고 왔습니다.”
글‧사진=오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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