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탕 선거의 비열함을 넘어 한 표의 가치 탐색
진흙탕 선거의 비열함을 넘어 한 표의 가치 탐색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7.04.28 13:37
  • 호수 56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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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특별시민’
▲ ‘장미 대선’을 앞두고 개봉한 영화 ‘특별시민’은 선거전의 추악한 이면을 다루면서 관람객들에게 ‘한 표’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서울시장 3선에 도전하는 주인공 통해 선거전의 추악한 이면 조명
흑색선전, 야합 등 선거에서 등장하는 변수 재현해 사실성 높여

‘장미대선’으로 전국이 선거 분위기에 휩싸인 가운데 지난 4월 26일 한편의 정치영화가 개봉해 관객들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다. 영화 ‘특별시민’ 이야기다.
작품은 최초로 3선에 도전하는 서울시장 변종구의 이야기를 통해 국내 정치계의 추악한 이면을 다루고 있다. 다만 기존 정치영화와는 다르다. 오직 선거에만 집중하고 있다. 복잡한 정치세계가 아닌 온갖 정략과 네거티브가 난무하는, 극중 표현을 빌리자면 ‘똥 속에서 진주를 꺼내는’ 선거 이야기를 다룬 것이다.
작품은 변종구(최민식 분)가 유명 힙합가수와 함께 청춘콘서트를 여는 것으로 시작된다. 어울리지도 않게 젊은이들이 즐겨 입는 펑퍼짐한 옷과 모자를 눌러쓴 그가 가식적으로 내뱉는 랩은 영화가 지향하는 방향을 보여준다. 겉으로는 ‘5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내집 마련, 인간관계를 포기한 청년을 일컫는 말)로 요약되는 젊은이들을 위로하는 척하지만 관객들에겐 이미 그의 연출이 앞으로 보여줄 하나의 거대하고 추악한 쇼로 다가온다.
이후 작품은 본격적으로 선거전에 뛰어든 변종구의 뒤를 쫓는다. 그는 서울시장 3선을 바탕으로 청와대 입성을 노리고자 정치공작의 달인 심혁수(곽도원 분)를 선거대책본부장으로 영입해 우세를 이어나간다. 여기에 젊고 패기 있는 광고인 박경(심은경 분)도 합류해 신선한 캠페인으로 변종구 캠프가 두각을 나타내도록 돕는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사건들로 인해 판세는 혼란에 빠진다. 게다가 상대 후보인 인권변호사 출신의 양진주(라미란 분)가 미국 유학파 아들 스티브 홍(이기홍 분)까지 불러들여 치열한 추격전을 벌이면서 변종구의 3선 도전은 위기에 봉착한다.
작품은 선거 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실제 변수들을 재현해 공감도를 높였다. 지하철 공사장 인근에 거대한 싱크홀이 생겨 다수의 인명피해가 발생하자, 각 후보 진영은 그 책임 소재를 두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다. 세월호 침몰사고, 메르스 사태가 발생하자 이를 선거에 이용한 정치인들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또 후보자는 물론 후보자 주변 인물에게도 고결성을 강조하는, 국내 정치권 단골 소재인 가족 문제도 세세하게 재현한다. 변종구는 부인이 고가의 미술품을 샀다는 의혹을 받고 지지율에 타격을 입는다.
양진주 진영도 마찬가지다. 양진주가 미국 변호사이자 자전적 에세이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유명인인 아들을 유세에 활용하면서 자신의 이혼 문제, 아들의 국적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부분 역시 국내 정치권과 판박이다.
주목할 부분은 마지막까지 각 후보간 주요 정책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점이다. 오로지 상대 후보에 대한 흑색선전, 이슈 조작과 가식적인 이벤트, 야합만이 존재했다. 각종 홍보를 내세워 실시간 검색어 1위를 만드는 모습, 상대의 약점만 물고 늘어지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공약·정책 대결보다는 비방과 흑색선전에만 초점을 둔 극중 후보들의 모습을 보면 자연스레 국내 정치인들이 떠오른다.
이를 통해 작품은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부터 ‘공정선거, 깨끗한 정치인은 과연 존재하나’, ‘누구를 뽑아야 하나’ 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하게 한다. 결국 극장을 나오는 관객에게 영화는 말한다. “투표를 잘하라”고 말이다.
자칫 정치혐오만 더 부추길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호연이 이를 괜찮은 정치영화로 승격시킨다. 특히 변종구를 맡은 최민식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달변가이자 탁월한 리더십과 쇼맨십을 갖춘 변종구는 기존 정치영화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 부패정치인에서 탈피한 캐릭터다. 여러 가면을 능수능란하게 바꿔 쓰는 이 캐릭터는 최민식의 내공 있는 연기를 통해 완성됐다. 최민식은 눈빛, 미세한 표정과 떨림 등 배우로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기술을 사용해 변종구를 표현했다.
또 서울시장 출마 연설 장면을 위해 직접 연설문을 작성하고 TV 토론 장면에서도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즉흥 대사를 소화하는 등 작은 부분까지도 공들였다.
이를 통해 목적 앞에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인 면모부터 때로는 거친 정치판에 지쳐 한숨을 내뱉는 인간 변종구를 다층적으로 선보였다. 표면적으로는 정치인으로서 접근하지만, 인간으로서 갖는 내면의 고충까지 전한다는 점에서 깊이를 달리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선거를 마친 그가 선보이는 표정 연기가 압권이다.
이외에도 캠프의 중책을 맡은 곽도원도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충실히 한다. 코믹한 이미지가 강했던 라미란이 진중한 정치인으로 완벽히 변신했고 유학파 아들역의 ‘할리우드 스타’ 이기홍 역시 강인한 인상을 남겼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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