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부모 완벽한 자식은 없다
완벽한 부모 완벽한 자식은 없다
  • 이미정
  • 승인 2007.08.31 16: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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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 불편하면 도움 요청해야”

동작구 상도동에 사는 이모할머니(68)는 주말이면 딸과 사위, 손자들을 집으로 불러 손수 음식을 만들어 먹이는 게 취미다. 젊었을 때부터 음식 솜씨 좋기로 소문나, 이웃들과도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즐겨 나누어 먹었다.

 

나이가 들면서는 출가한 세 딸들을 한 주씩 차례로 불러 여름에는 찬요리를, 겨울에는 따끈한 요리를 준비해 화목을 다졌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할머니의 음식에 변화가 나타났다. 소금을 넣었는데도 간이 안 된 것 같아, 넣고 또 넣어 아주 짠 음식을 만들었다. 설탕을 넣어도 단맛이 느껴지지 않아, 넣고 또 넣다보면 달디 단 음식이 되었다.


처음엔 몰랐다. “엄마, 해파리냉채 맛이 왜 이래?” 큰 딸의 물음에 “그래?”하며 접시에 놓인 냉채를 먹어 봤지만, 별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 “어때서?” 물으려는 찰나, 큰 딸이 “짜고 달지? 당신(남편에게)도 그렇지 않아?”하며 사위에게 동의를 구하자, 이할머니는 “내가 냉채를 무치다가 전화를 받아서 그런가 보다”하고 얼버무렸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자꾸 되풀이 되었다. 둘째 딸 네 식구들과 매운탕을 먹을 때도 그랬고 셋째 딸네 식구들과 샤브샤브를 먹을 때도 그랬다. 어머니의 음식 맛이 계속 이상하자, ‘아닌 맛’을 지적하던 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되었다. 변한 어머니의 미각에 딸들은 매우 당황했다.

칠순을 바라보지만, 어머니가 늙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딸들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음식 맛으로 딸들은 이젠 어머니가 늙었다는 것을 똑똑히 인식하게 되었다. 충격이었다 하지만 딸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내색을 하지 않아, 이할머니는 자신이 미각을 잃고 있는지 알지를 못했다.


관악구 남현동에 사는 박모할아버지(72)는 뇌졸중 후유증으로 거동이 자유롭지 못하다. 화장실 한번을 갈래도 혼자서는 쉽지 않다. 딸이 부축을 해줘야 겨우 화장실에 갔다 나올 수 있다.

 

8년 전 상처를 하고 혼자 지내다가 병이 나면서 딸과 함께 살게 된 박할아버지는 자신이 너무 한심해 한숨만 나온다. 딸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도 제대로 처리 못하는, 무기력해진 자신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기 때문.


박할아버지는 엄한 아버지였다. 남자는 가정을 책임지고, 집안 살림과 아이들 교육은 여자가 책임진다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뚜렷해, 하나 뿐인 딸에게도 잔정 한번을 주지 않았다.

 

딸은 출가시키면 그만 이라는 생각에 아들들에게만 신경을 썼다. 그런데 나이 들어 늙고 병이 들자, 아들들은 자신을 마다하고 출가한 딸이 자신을 모시게 되는 상황이 되자, 자존심이 여간 상한 게 아니었다. 아버지로서의 위엄은 사라지고, 볼품없는 노인으로만 남게 되자, 박할아버지는 인생을 헛산 것 같아 우울하다.


사람들은 부모-자식 간의 관계하면 부모가 자식에게 일방적으로 주는 관계만 생각한다. 부모는 자식을 낳고 기르며 정신적, 물질적으로 보살핀다.


대체로 사람들은 이런 관계만을 생각하는데 나이가 들면 부모-자식 간의 관계가 변하게 된다. 부모가 늙어 기력을 잃게 되면 자식이 부모를 돌봐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가 되면 자식은 기능이 상실되어 가는 부모의 손발이 되어 불편한 점을 커버해주게 된다. 이것이 자연스러운 상태.


그런데 이 세상의 많은 부모-자식들은 이런 변화를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항상 지시하고 감독하며 퍼주기만 하던 부모가 더 이상 주는 존재가 아니고 받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 깜짝 놀라고 당황해 하게 된다.

 

자식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부모도 마찬가지다. 자식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완벽한 부모일수록 더욱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내가 자식들에게 의존을 하다니…’ 자존심이 상해서 선뜻 도와 달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장옥경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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