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회피만 할 수는 없다
전쟁을 회피만 할 수는 없다
  •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 승인 2017.05.08 09:20
  • 호수 56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제 며칠 뒤면 대통령 선거 날이다. 그동안 탄핵정국에 이어 대선정국이 심하게 우리 국민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주말마다 촛불과 태극기, 그리고 증오와 선동의 함성이 우리 마음을 불사르고 찢어 놓았다. 맨날 이런 날들이라면 정말 정신 나갈 것 같다. 빨리 이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날들이 지나가고 안정된 마음으로 가정과 생업에 충실하게 복귀해야 하겠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많은 대선 이슈 중 안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경제나 교육은 좀 망가진다 해도 몇 년 노력하면 어느 정도 회복될 수 있겠지만, 만약 안보에 문제가 생겨 전쟁이라도 난다면 그건 참으로 오랫동안 회복되기 어려운 파괴와 피의 죽음 밖에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선 주자들은 그동안 모두 한결같이 “전쟁은 절대 안 돼”라는 주장을 했다. TV 토론에서 북한이 도발수위를 올리고 미국이 이에 대해 군사적 선제타격을 하려고 할 경우에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물음에 이들은 전쟁은 막아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한반도에 군사적 행동은 없어야 한다”, “미국과 중국에 전쟁은 절대 안 된다고 얘기하겠다”, “우리가 군사적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하지만 전쟁은 없어야 한다”, “주변 4강에게 특사를 파견해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설득하겠다”라고 말한 것까지는 봐줄만 했다.
그러나 우리가 전쟁은 안 된다고 해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가? 우리에게 그런 외교력과 군사력이 있는가? 한반도를 놓고 밀고 당기고 하다가 이 나라는 골치 아픈 존재이니까 더 이상 봐줄 필요가 없다고 주변 강대국들이 결정해 버리면 하루아침에 날아가 버리는 존재는 아닐까?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토론을 듣던 중 한 후보가 “북한과 여러 채널을 가동해 미국의 선제타격의 빌미가 될 행동을 즉각 중단하라고 북한을 설득하겠다”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런 순진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 되겠다고 나왔는지 의심이 들었다.
김정일에 이어 김정은이 지금까지 수행해온 과감하고도 무모한 벼랑 끝 전술이 누가 설득한다고 바뀔 수 있단 말인가? 귀순한 태영호 전 영국공사의 주장처럼 핵은 북한의 유일한 생명줄이고 자존심인데 김정은은 체제보장을 위한 확실하고 철저한 담보를 잡기 전에는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걸 모르는가?
차기 대통령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가진 모든 외교력과 군사력을 총동원하여 철통같은 안보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남과 북,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그는 고도의 협상과 타협의 기술로 전쟁을 억제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강하고 단호한 의지이다. “전쟁은 절대 안 된다”가 아니라 “전쟁도 할 수 있다”는 논리와 자신감을 내외에 천명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들도 필요하면 “전쟁이 일어나면 피해를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가질 때 혹시 전쟁이 일어나 큰 손실을 입었다 해도 그것을 만회할 수 있는 저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전쟁을 회피하다가 정작 전쟁이 일어나면 모두 도망다니다가 자멸의 길로 빠질 것이 분명하다. 전쟁에서 상대방에 대한 패배주의는 전장에서 제대로 한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나자빠져 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최근 통일운동에 오랫동안 몸담았던 어느 재미 한국인 학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정말 북한이 남한을 향해 핵을 쏘겠느냐?”라는 천진하고 여유로운 말을 하여 나와 논쟁을 하였다. 통일운동을 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이런 것이라면 그런 통일운동은 위험한 것이다. 북한이 핵을 쏘면 그날로 북한도 망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결코 핵을 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판단이다.
나는 나와 내 가족의 안위를 염려하는 평범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조국의 장래를 걱정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북한은 남한을 향해 핵을 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우리는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과 적대적 관계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국방비를 북한에 비해 30배 이상 쓰고 있는 남한이 북한과의 대결에서 우위를 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남북대화와 남북 평화공존은 쌍방 간 힘의 균형이 있든지, 아니면 적어도 “싸울테면 한번 싸워보자”라는 결의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을 뿐이다.
이번 대통령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하겠지만, 그러나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내 재산의 일부가 파괴되고 나 혹은 내 일가친척이 다치거나 죽더라도 조국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희생을 감수하겠다는 각오를 가질 수 있도록 국민들을 이끌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