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주는 세란과 같이 앉으면 세란의 허물인 듯이 심술을 피우고 투정을 부린다
단주는 세란과 같이 앉으면 세란의 허물인 듯이 심술을 피우고 투정을 부린다
  • 글=이효석 그림=이두호 화백
  • 승인 2017.05.08 09:23
  • 호수 56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효석 장편소설 화분 <34>

미란이 연구소를 찾는 때도 있었으나 영훈은 한 주일에 사흘씩 교사의 자격으로 미란들의 집으로 나왔다.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었다. 교칙본은 첫 장으로 다시 돌아가서 정확하고 치밀하게 되풀이되었다. 바른손 연습 왼손 연습 두 손 연습――악보도 스케일에서 시작해서 점점 복잡한 것으로 변해 가고 한 가지 주제에 대해서 여러 가지의 변주법의 생기면서 바른 방법으로 진보는 빨랐다. 영훈은 언제든지 미란의 왼편에 나란히 앉게 되어 손가락을 지도하는 한편 간단한 연습에 대한 반주의 부분을 울릴 때에는 두 사람의 자태는 흡사 듀엣을 타는 한 쌍의 배필같이 보였다. 연습곡의 변호가 높아 감을 따라――미란의 발전이 날로 더함을 따라 두 사람은 더욱 친밀한 것으로 눈에 익어졌다. 제법 멜로디를 가진 곡조면 미란의 멜로디와 영훈의 화음이 합쳐서 귀여운 조그만 음악회를 이루어 세란과 현마는 귀를 기울이고 대청으로 모여들고들 했다. 그런 때 만약 단주가 그 자리에 있다면 그의 처지가 제일 딱했다. 미란과 자기와의 사이에 뛰어든 돌연한 침입자 영훈의 존재를 무심히 바라볼 수는 없었고 자기로도 설명할 수 없는 구름 같은 무거운 덩어리가 피어오르다가 차차 한 줄기의 날카로운 감정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날카로운 것은 스치는 것을 상하게 한다. 그 날카로운 감정은 우선 그의 가슴속을 난도질하기 시작했고 다음으론 주위의 사람들을 다치게 했다. 세란과 같이 앉으면 마치 세란의 허물인 듯이 잠자코 앉아서는 심술을 피우고 투정을 부린다.
“왜 내게 투정이야. 어디서 뺨 맞구 어디서 화풀이한다더라.”
핀잔을 맞아도 헛것이어서 단주는 뿌루퉁해서는 그에게 그 무슨 특권이나 남은 듯이 대꾸한다.
“동경인지 무언지를 간다구들 야단이더니 이런 일 꾸며 놓을려구…….”
“부러 일을 꾸미러 갔나. 결과가 그렇게 된 것이지.”
“나를 따랴구 한 것이 아니구 무어요.”
“아니 결과구 무어구 영훈이가 무얼 어떻다구 벌써부터 이 야단이야.”
한마디 박아놓고는 세란은 여기서 전법을 돌린다.
“도대체 욕심이 많지. 물고기라구 한 손에 둘씩 낚으려구 그러나. 세상에 그런 법이……”
“아니 그럼…….”
단주는 세란과의 기쁨을 아주 잊어버린 듯 새로운 욕망에 대한 욕심으로서 인생의 입문을 뙤어 준 세란의 공이 지금 와서 점점 화되기 시작해감을 느끼게 된다.
“애초에――”
미란이 원이었지 당신이 원은 아니었다는 듯한 말투이다. 선택을 그르쳤다는 듯도한――미란을 얻기 위해서의 준비운동이었지 당신이 마지막 목표는 아니었다는 듯한――그런 말투이다.
“그게 욕심이란 거야. ――목표가 또렷하거든 목표만 보지 한 눈은 왜 파.”
“누가 한눈을…….”
“남의 탈로만 돌리지 말구――한눈을 판 건 판 거지 무어야.”
“남에게 씌울려구.”
“아무튼 허물은 허물이지. 그렇게 쉽게 뺄 수가 있을까봐서…….”
길잡이로만 여겼던 것이 지금 와서는 커다란 책임을 요구해 오면서 무거운 짐으로 보여져 간다. 그런 요량이 아니었던 것이 의외의 결과로 나타났음을 야속하게 여기는 것이나 세란으로 보면 그 단주의 다정한 비위에 불만이 생기며 마음이 안온하지는 않았다.
“사람이 그렇게두 매정하구 뻔질뻔질할까.”
무릎을 꼬집는 바람에 단주는 뜨끔해지면서 몸이 솟는다.
“한 덤불에 진득이 백여 있지 못하구 딸기 찾는 아이같이 이 덤불 저 덤불을 기웃거리자는 셈이지.”
“오해하면 안돼요.”
“그래두 고집이야.”
“아야얏!”
다시 꼬집히고 소리를 치며 허리를 굽히는 것이 마치 항복이나 하는 듯――눈에는 뜻 없는 눈물이 빠지지 고였다. 세란과 마주서면 당하는 재주 없었다. 불만과 투정과 심술로 시작된 장면이 번번이 이렇게 흐지부지한 농으로 끝나고 말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