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노인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글퍼 마시고 의젓하게 사시기를…”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노인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글퍼 마시고 의젓하게 사시기를…”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7.05.08 09:30
  • 호수 56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첫 장편소설 ‘강화도’ 펴내… 강화도조약 협상 통한 격동의 구한말 조명
조용필 노래에 가사 쓰기도… 퇴직한 베이비부머의 쓸쓸한 심경 담아

국내외에 이름이 알려진 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송호근(61) 서울대 교수. 정치‧경제‧사회를 넘나들며 정교한 분석과 합리적 대안을 제시해온 그가 최근에 첫 장편소설 ‘강화도’(나남)를 펴냈다. 작품은 19세기 강화도를 방어하면서 강화도조약 협상 실무를 맡은 무장 신헌(1811~1884)의 삶을 통해 당시 프랑스‧일본‧미국 등에 겁박된 조선의 운명과 천주교 박해를 내밀하게 그렸다. 송 교수를 만나 소설에서 못 다한 얘기, 사회 갈등 해결 방안 등에 대해 물었다.

-소설 속 주인공 신헌은 어떤 인물인가.
“신헌은 왜양(倭洋)과 사대부의 척사(斥邪) 사이에 끼어 온몸으로 조선의 심장에 창이 깊이 박히지 않도록 한 사람이었어요. 개화파와도 폭넓게 교류했던, 봉건과 근대 사이에 선 경계인이었어요.”
-소설 내용 중 어느 정도가 사실인가.
“신헌이란 인물에 대해 알려진 게 거의 없고 역사학자들도 연구한 게 별로 없더라고요. 그가 김정희‧정약용에게 사사했다지만 무얼 했는지는 몰라요. 신헌의 큰아들이 쓴 행장과 소설의 앞(1장), 뒤(5장)을 빼고는 모두 허구예요. 프랑스인 신부를 잡았다가 풀어준 것도, 다산의 손녀와 이루지 못하는 사랑 얘기도 재미를 위해 넣은 겁니다.”
-소설이 시사하는 점은.
“대선후보들이 사드 문제를 두고 옥신각신하는데 그 문제 보다는 대한민국의 이런 운명이 언제 결정됐고, 기원이 뭐고, 본질은 무언가를 따지고 들어가 봐야 합니다.”

송 교수는 사드 문제에 대해선 “미‧중‧소‧일 4강 구도가 결정됐고 북한과의 타협정치가 결실 없이 끝난 이 시점에 뭐라도 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미국과의 군사동맹으로서 사드를 당연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송 교수는 “4강 사이에 끼인 본질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사드를 받아들이면 보수, 아니면 진보라고 하겠지만 그건 아니다. 140년 전 당시 진보는 문을 열고 받아들여 뭔가 하는 것이고 보수(대원군)는 문을 닫는 쪽이 아니었던가”라고 덧붙였다.
-중국을 어떻게 달래야 하나.
“사드 배치 논의 과정에서 두 가지를 해야 했어요. 미국에 대해 안보를 위해 자리를 내주지만 한편으로는 한반도에 전쟁 가능성도 높아졌으니 우리에게 뭘 줄 수 있는가 요구해 받아내야 했습니다. 그걸 가지고 중국을 달래는 겁니다. ‘한국은 미국과 군사동맹 관계이니 어찌 하지 못한다, 분노하지 말라, 역사적으론 우리와 중국이 한편이니 너희들의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이 표방하는 신 실크로드 전략) 같은 국가적 사업에 우리의 IT나 자동차 등 기술력을 제공하겠다’고 했으면 좋았을 겁니다.”
-시진핑이 ‘한국은 과거 중국의 일부였다’고 했다는 말이 충격적이다.
“시진핑이 역사에 무지해서 그런 겁니다. 조선이 중국의 속방이라는 말은 그전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1884년 강대국들이 조선을 집어삼키려고 하니까 중국이 처음 쓴 말입니다. 중국은 아시아의 중심국가로서 주변국들과 공존‧공생해야 합니다.”

송호근 교수는 경북 출생으로 서울대 사회학과를 나와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춘천 한림대 교수를 거쳐 1994년부터 서울대에서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가수 조용필이 부른 ‘어느 날 귀로’란 곡의 노랫말을 쓰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 ‘칼 만하임의 지식사회학 연구’(1983년), ‘한국,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2006년), ‘그들은 소리 내 울지 않는다’(2013년) 등이 있다.
-사회학은 어떤 학문인가.
“호기심이 많아 어디든지 관심을 갖는 학문으로 인간과 사회를 연구합니다. 인간행동양식과 머릿속에 든 가치관, 이런 게 사회구조하고 어떻게 상응해서 결정되는가를 연구합니다.”
-요즘 관심을 두는 분야는.
“국가가 질서로 포장되면 그 안에 무엇이 모자라고 무엇이 남아넘치는지 잘 몰라요. 결국 사회가 이상한 형태로 발전하는데 우리는 자율적 해결 능력이 다른 나라에 비해 부족해 이런 현상에 잘 대처하지 못합니다. 국가에 대해 요구만 하지 대신에 우리는 무얼 하는지 거기에 대한 생각이 없어요. 어떻게 하면 시민의 자율적 행동이 가능할까, 그걸 고민하고 있어요.”
-시민의 자율적 행동이란 무언가.
“견고한 조선 왕조가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동안 국가는 있지만 시민은 없었어요. 그래서 우리끼리 알아서 해보자, 그런 게 하나도 없습니다. 시민의 핵심은 자율성입니다. 국가 없이도 내가 자율적으로 한다는 거지요. 미국의 예를 들자면 서부시대에 그 사람들은 보안관을 두거나 고용해 마을을 지켰어요. 그게 자치예요. 거기서부터 시민성이 생깁니다.”
-고령화 시대 노인의 사회적 역할이라면.
“그게 참 어려운 일입니다. 누군가 노인을 대신해서 ‘은령’(銀齡)이라는 말을 쓰던데 맘에 듭니다. 저처럼 머리가 허연 사람을 말하지요. 은령자들은 나와 내 가족을 위해 질주해왔어요. 그걸 ‘사익’이라고 한다면 앞으로는 사회를 위해 무얼 해야 하는지 그 틈을 찾아야 합니다.”
송 교수는 노인이 고급지식을 가졌다면 아카데미를 열고, 지식이 없다면 어린이 등하교 시 보호나 치안 등의 일을 맡아하면 좋겠다고 했다.
-젊은이들이 노인을 존경하지 않는다.
“노인세대의 인과응보예요. 베이비부머를 포함해 노인들은 자기 살 궁리만 해왔지 후세대를 위해, 공익을 위해 뭔가 한 게 하나도 없어요. 이른바 공공자금이라고 십시일반 내놓은 것도 없어요. 자기 집 하나 가지려고 아귀다툼하다 집값을 다 올려놓았어요. 그렇게 장벽만 높이 쌓아놓고 청년들에게는 ‘우리도 고생했으니 너희들도 알아서 하라’는 겁니다.”
-국가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보는데.
“노인의 잡(일자리) 보다는 청년의 잡이 더 중요합니다. 저 위에 있는 걸 조금 떼어내 기업이 일자리를 늘려 밑에다 주는 겁니다. 노인에게는 파트 타임을, 청년에게는 정규직을 제공해주어야 해요. 노인에게 모자란 부분은 연금이 받쳐주어야 하고요.”
-사회적 갈등 비용이 300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복지가 해결돼야 갈등이 해소됩니다. 정부가 반값등록금, 육아수당, 고령자 의료서비스 등 이것저것을 해준다고 하지만 그런 것들은 복지기반이 깔린 다음에 시행하는 것들입니다. 복지기반이라고 하면 4대 보험이에요. 실업보험과 연금이 가장 중요합니다. 국민을 먹여 살리는 문제이지요. 그 다음에 완전고용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일자리가 안정된 다음에 각 세대에 필요한 선별적 복지를 투하하는 거지요.”
-보수인지 진보인지 헷갈린다.
“경제는 보수, 사회는 진보, 정치는 중간으로 영역별로 왔다 갔다 합니다. 경제는 시장경제여야 해요. 재벌의 잘못된 점도 비판하지만 기본적인 건 격려해주어야 합니다.”
-조용필에게 노랫말도 써줬다.
“4년 전 자신이 작곡한 곡에다 가사를 붙여달라는 부탁을 받고 처음엔 당황했어요. 가락을 듣다가 퇴직한 베이비부머의 영상이 떠올랐어요. 평생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오는 퇴직자의 쓸쓸한 심정을 그린 겁니다.”

송 교수는 인터뷰 말미에 “젊은 세대가 하는 말이나 행동이 깊이가 없어 보이고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들을 탓하지 말고 격려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즉, 유교적 관습에 얽매인 사회에서 성장한 노인의 눈에는 못마땅한 점이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혹독한 풍파를 헤치고 견뎌온 세대로서 품위와 늠름함을 잃지 말고 뭔가 만들려고 하는 다음세대에게 힘을 실어주었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송 교수는 “설사 사회가 (노인을)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서글퍼하지 말고 의젓하게 이 시대의 어른으로서 살아가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글‧사진=오현주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