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이웃으로 둔 덕에…”
“대통령을 이웃으로 둔 덕에…”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7.05.12 13:11
  • 호수 56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재인(64)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던 날 밤, 기자는 새벽까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원하던 후보의 당선으로 흥분돼 잠을 잘 수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렇다고 원하지 않은 후보가 돼 그로 인한 허탈과 실망감 때문도 아니다. 그건 순전히 소음 때문이었다.
기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사는 빌라에 산다. 최근 신문‧방송에 연일 보도되는 서대문구 홍은동의 연립주택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지인들은 개표 다음날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와 “청와대 들어가는 거냐”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이 빌라는 엘리베이터가 없어 4층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힘들다. 그래서 노인들은 주로 1층을 선호하거나 힘들다며 이사를 간다. 이 건물은 16년 전 지어진 이후 단 한 번도 외벽의 페인트칠을 하지 않아 지저분해 보인다. 지붕서부터 건물바닥까지 빗물과 먼지가 뒤엉켜 말라붙은 검은 자국들이 실타래처럼 드리워져 있다. 누가 봐도 서민들의 주거공간이다. 88세대가 살며 젊은 부부부터 노인 가족까지 다양하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초, 구기동에서 이곳으로 이사 온 이후 빌라는 졸지에 유명세를 탔다. 대선 내내 방송기자들이 문 대통령의 집 앞을 지키며 일상적인 장면들을 TV에 내보내거나 문 대통령이 집 앞에서 여러 차례 인터뷰를 한 관계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됐다. 인터넷에 ‘문재인 00빌라’를 치면 집 구조부터 전용면적, 국토부 공시가격, 최근의 실거래가격 등이 낱낱이 올라온다. 거주자로선 밝히기 꺼리는 부분이다. 댓글도 다양하다. “문재인이 왜 저런 서민아파트에서 사나” “재산신고액이 18억6000여만원이라며 서민으로 보이려고 저런 곳에서 사는 건 아닐까” “소박한 집에서 사는 문재인, 역시 대통령 잘 뽑았다” “서울에 저렇게 싼 집도 있나” 등등.
한 기자가 문 대통령에게 이곳으로 이사 온 이유를 묻자 “원래 산을 좋아한다. 이 집의 바로 뒤가 백련산이라 산책하기에 아주 좋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일부에선 이곳이 명당자리란 소문을 듣고 왔다는 말도 나온다. 오래전부터 앞으로 홍제천이 흐르고 뒤로 백련산이 있으며 전망이 확 트여 명당의 조건을 갖췄다는 말이 돌았다. 그러나 이 빌라를 포함에 이 골짜기에서만 20여년을 살고 있는 기자로선 그 말에 언뜻 수긍할 수가 없다.
기자가 이 골목을 떠나지 못하는 건 문 대통령이 말했듯이 빌라 뒤의 무성한 소나무 숲 때문이다. 홍제역 부근서부터 명지대 인근까지 이어지는 5km의 산에 소나무 수천 그루가 심어져 있다. 아침 출근길 다람쥐가 발 앞을 가로질러 가고 딱따구리가 경쾌하게 나무껍질을 뚫는 소리가 들린다. 계절 따라 아카시아꽃, 밤꽃, 소나무 향기가 방안까지 흘러들어온다. 빌라 맞은편에는 배드민턴장과 아이들 놀이터가 있고 서대문구청에서 관리해주는 공원과 텃밭도 있다. 주변 환경이 좋은 탓에 주민들 대부분은 이사 갈 생각을 안 한다. 간혹 외지로 나갔다가도 다시 들어온다.
MTB를 타는 자전거족들 사이에서도 이곳은 최고의 트래킹코스로 알려졌다. 한밤중에도 산등성이에 자전거 라이트가 번쩍거린다. 산꼭대기라 일생생활이 불편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다. 2~3분 간격으로 마을버스가 빌라와 홍제 전철역 사이를 부지런히 왕복해서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이 빌라로 이사 온 속내는 밝혀지지 않았다. 서민층의 공감을 구하려던 것인지 아니면 그의 말대로 자연을 좋아해 들어왔는지는 본인 외에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빌라 주민들은 불편함을 참고 산다. 아침마다 대여섯 대의 경호차량과 10여명의 경호원들이 입구를 가로막아 출근길이 정신 사납고 낯선 이들이 두리번거리는 통에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깨진지 오래다.
투표 날 오후부터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던 새벽까지 빌라 앞은 인파와 차량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문재인’을 연호하는 함성 소리가 새벽녘까지 이어졌다. 기자는 대통령을 이웃으로 둔 덕에 혜택(?)을 보기는커녕 밤잠만 설쳤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